아직도 나를 마녀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다. 백설공주라는 동화를 각색해서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여왕이 변신한 마녀역을 맡았다. 선생님은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마녀의 대사를 없앴다. 나는 검은 망토를 둘러쓰고 나타나 백설공주에게 독이 묻은 사과를 건네주고 무대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었다. 무대로 걸어가다가 관중석 맨앞자리에 앉아 있는 엄마의 얼굴이 보여서 무대 앞쪽으로 뛰어갔다. 백설공주가 나를 쫓아와 자그마한 목소리로 사과를 달라고 해서 나는 그 애에게 휙하니 사과를 던졌다. 백설공주는 내가 던진 사과를 받으려다 툭 쳐버렸고 사과는 바닥에 떨어져 관중석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버렸다. 백설공주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고 청승맞은 그 애 때문에 연극 공연은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 사건 때문에 몇 애들은 나를 마녀로 일컫곤 했다.
나는 주머니칼을 마련했다. 어떤 아저씨가 우리 맛나 식당에 놓고 간 물건이었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주머니칼을 집어 얼른 뒷주머니에 찔러 넣곤 딴청을 피웠다. 그 아저씨가 우리 식당으로 다시 돌아와 혹 주머니칼을 보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물었을 때, 나는 모른 척했다. 나는 내 것이 된 주머니칼을 소중한 물건으로 여겼다. 마녀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머니칼보다 더 큰 칼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엄마의 만류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 식당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찌르는 연습을 하다가 엄마에게 들켜 호되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마녀를 찔러 찔러 했다. T.V에서 본 군인들처럼. 그리고 식당에서 빈 그릇을 부엌으로 나르며 악력을 키웠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말했다.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라는 말을 들을 때면 힘이 났다. 나는 확실히 마녀, 또는 마녀 새끼가 아니라 엄마 새끼, 즉 사람이 분명하다.
아빠는 쟁반에 반찬이 담긴 그릇들을 올려놓았고, 엄마는 펄펄 끓고 있는 국을 휘저었다. 나는 식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형광등을 보았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손을 올려 손차양하다가 손가락 사이를 벌려 그 틈새로 형광등을 보았다. 빛을 잡으려고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자 빛이 내 눈앞으로 들이닥쳤다가 뒷걸음쳤다.
“수, 수건 가져와!”
“혀를 깨물지 않게 해요.”
나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한 사내가 드러누워 몸을 격하게 흔들어댔다. 엄마가 주방에서 뛰쳐나와 하얀 수건을 사내의 입에 넣어 틀어막았다. 혀를 씹었는지 아니면 입술을 깨물었는지 하얀 수건이 조금씩 빨간색으로 물들어갔다. ‘빨강’, 내가 칼에 손을 베였을 때 흘러내린 ‘빨강’, 그 색과 똑같다.
일일구에 전화해.
간질 같은데요.
아니에요. 입에 게거품을 물지 않았어요.
거기 팔 좀 주물러요. 근육이 갑자기 경직되었어요!
당신 의사야? 무서워. 귀신 들린 사람같아.
손님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며 구경꾼처럼 사내 주위를 빙 둘러서서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쇼를 구경하는 것처럼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내는 쓰러졌고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이며,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야 할 일만 남았다. 밥을 먹은 다음 이빨을 닦는 것처럼 그 사람이 쓰러진 일은 일과인지 모르므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 마녀가 있는지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녀가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으나 혹시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마녀는 우리 맛나 식당에 없었다.
마녀는 어느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데려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