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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웅식 Sep 09. 2024

마녀를 주머니칼로 찌르다(3)


 오토바이의 쓰임새는 여러 가지다. 배달용도, 스트레스 해소용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는 용도이다. 아빠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의 힘으로 걸을 때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빠는 나에게 오토바이 헬멧을 씌운 다음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뒷좌석에서 아빠의 허리를 꽉 부여잡았다. 부르릉 소리가 나면서 시동이 걸렸다. 오토바이가 질주했고 우리 앞에 있던 건물들이 뒤편으로 사라졌다. 골목과 골목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다 곧게 뻗어 있는 도로를 타고 달렸다. 대학에 들어서자 수위 아저씨가 목례를 건넸고, 아빠는 고갯짓으로 답례했다.

 경사가 약간 가파른 아스팔트길로 올라갈 즈음 휠체어가 보였다. 학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휠체어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휠체어를 타고 이곳을 넘기에는 힘이 들 것 같다. 나는 하모니카를 입에 갖다대는 상상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모니카로 연주해서 휠체어를 타고 가는 학생에게 뒤에서 밀어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하모니카에 숨을 불어넣으면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와 사람들을 감싸 안을 것이다. 주머니칼로 마녀를 찌르면 하모니카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왕관처럼 생긴 건물 앞에 오토바이가 멈췄다. 아빠와 나는 오토바이에서 내렸고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자판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대학생들이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가 우리를 보자 자판기 옆쪽으로 물러섰다. 아빠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자판기에 집어넣었다.

 “은비야, 뭐 먹을래?”

 “아.”

 “코코아?”

 “이.”

 “먹기 싫으면 아,니,요, 라고 하는 거야.”

 “아.”

 ‘아, 에 이, 우,’같은 한 마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말을 하지 못하다가 한 마디 말을 입밖으로 쏟아낼 수 있게 된 것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빠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며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공을 쥔 사내가 있는 힘껏 몸을 띄워 테니스 라켓을 휘둘렀다. 공이 날아가다가 땅에 튕겨올라가 상대방의 라켓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노란 풍선을 들고 장애인 이동권을 보호하라고 소리쳤다. 휠체어를 탄 학생들과 타지 않은 학생들의 행렬이 노란 빛을 뿜어대었다. 꽃을 찾아 날아가는 노란 나비가 떠올랐다. 아빠는 노란 풍선에 적혀 있는 글자를 나에게 읽어주었다.

 “저기, 장애라는 두 글자 있지. 한자인데, 길 장, 사랑 애야. 장애는 길게 사랑한다는, ……길게 사랑해야 한다는 ……”

 “에.”

 아빠는 종이컵을 납작하게 해서 쓰레기통에 넣은 후 오토바이를 탔다. 나도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다음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타 헬멧을 썼다. 오토바이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바람이 쉭쉭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때렸다. 아빠의 등에 헬멧 쓴 얼굴을 갖다 대고 두 손으로 아빠의 허리를 감았다. 

 지하로 뻗어있는 터널을 달리면 항상 내 마음은 날아올랐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마음이 붕떠서 위로 올라갔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용솟음쳤다. 

바람을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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