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글

시루메

by 정인








눈이 내린 고향집 주렴산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

주렴산 시루봉이라고 하는 산 아랫마을 하나가 있다.

이 마을은 동네가 시루메이다 시루처럼 생기었다 해 시루메이다.

어릴 적 동네는 버스도 없고, 집마다 우물이 없어 개울에 가서 물을 떠다 먹었다.

물지게를 등에 지거나, 아낙들은 머리에 똬리 해서 물동이를 이고 다니기도 했다.

시냇물은 항상 흐르고 있었다. 마르지도 않고 주렴산 줄기 따라 물이 내려왔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농부였다. 밭농사. 논농사다. 밭은 고구마, 주로 겨울 양식 간식이었다.

쌀은 추수에 내다 팔아 자식 학비로 쓰고, 생활비로 썼다.

마을은 바닷가도 가까웠다.

때론 바닷가 가서 바지락조개. 굴을 채취해서 먹기도 했다. 채취해 온 바지락조개는 담쟁이넝쿨 타고 주렁주렁 열린 애호박 따서 반죽해 칼국수 수제비를 해서 먹었다.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옛 맛을 못 잊어 칼국수를 사 먹으면 그 맛이 안 난다.


개울가에 동네 아낙들은 빨래를 머리에 이고 와 바닥에 팽개치듯 던진다.

빨래는 개울물에 젖시어 방망이로 힘껏 두들겨 때린다.

찌들었던 흙먼지와 한 서린 시집살이가 개울물과 같이 퍼져나간다.

금세 빨래는 뽀얗게 방망이 맞아 변해갔다.

신기하게도 그때는 비누가 지금처럼 좋은 것은 아니어도 빨래는 뽀얗게 빨아졌던 것 같다.

오염되지 않은 냇가는 미꾸라지, 다슬기도 많았다. 먹기보다는 잡고 놀았다.


동네 아낙들이 모이는 장소는 개울이었다.

냇가에 앉아 누구누구 댁 하면서 동네 이야기 소식을 전한다.

지금 말하면 카페처럼 말이다. 시집살이와 고된 일에 지쳐 토해냈던 말소리는

개울물과 함께 깨끗이 씻겨 나갔다.

시부모님 똥 기저귀 빨래하시던 아랫집 아줌마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시부모님이 아파 움직이지 못해 수발을 다 들어주셨다.

지금은 요양원이 있어 그렇듯 고생은 안 하셨을 텐데.....


마을 동네는 지금도 시루메(증산리) 자리하고 있다.

그 시절 누구누구 댁하고 부르던 아낙네들은 하나둘씩 별이 되어 사라졌다.

이렇듯 덧없이 빨리 흘러가는가? 그 시절 그때의 아낙들이 지금 글 쓰는 이도 후손이 되어 늙어 가고 있다.

그때의 아낙들 이야기하면서 개울가의 추억을 회상해 본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 한세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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