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글

전시에 갔다가 새로운 가족이 생겼어요

by 정인


어린이집 작품전시회


전화벨이 리듬을 타고 울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으니,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손녀가 전시회를 연단다.

2학기 동안 그린 그림과 만들기, 배운 것들을 모아 전시하는 자리란다.

"알았어, 당연히 가야지."

그렇게 대답하고는 오후 4시 30분까지 오라는 말에 맞춰 서둘러 길을 나섰다.

장소는 동네 주민센터 2층 강당.

‘전시회를 이런 데서?’ 싶은 마음으로 조심스레 계단을 올랐다.


이미 많은 학부모가 자리하고 있었고, 무대 위에서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강의를 진행하고 계셨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셨다.


첨단 산업의 눈부신 발전, AI 시대로의 진입.

앞으로는 대학교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대학교수의 자리조차 사라질 수 있다고.

이제는 챗봇에 질문하면 즉각적으로 답을 얻는 시대니까.

하지만, 책은 여전히 읽어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인지 능력, 사고력, 문제 해결력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콜센터마저 사람이 아닌 AI가 응대하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삶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그 말씀이

묘하게 가슴에 남았다.


‘정말 잘 왔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뜻깊은 시간이었고

나 역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각자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더듬더듬 문장을 읽으며, 즐거웠던 일과 힘들었던 기억,

그리고 동네의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앞자리에 앉은 딸은 말없이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감회가 깊었나 보다.


나는 그런 딸을 보며,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졌다.

설명회가 끝난 뒤, 어린이집으로 내려갔다.

손녀는 우리가 깜짝 등장하자 눈이 반짝였다.

"어서 오세요, ○○어린이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껏 배운 인사를 건네며 내 손을 꼭 잡아끌었다

자기가 만든 앨범과 그림, 사진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자랑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참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정말 멋지다!"

칭찬 한마디에 손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전시회를 마친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서 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엄마, 햄스터 좀 맡아 줄 수 있어요?”

손녀를 돌보며 집안일까지 하다 보니, 돌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사실 나에게 햄스터는 조금 무섭다.

쥐처럼 생겨서 만지는 것도 꺼려진다.

전에도 데려가려다 손녀가 작별 인사도 못 했다며 울음을 터뜨려 포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햄스터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우리 집 도토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톱밥을 갈고, 물도 새로 주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지만,

기분이 좋은지 햄스터는 우리 집에서도 잘 적응하는 듯했다.

만지는 건 여전히 무서웠지만,

밥도 주고 물도 갈아 주다 보니 정이 들었다.

처음엔 징그럽고 낯설기만 했던 그 조그만 생명체가,

이제는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들 키우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새로 지어 주었다.

원래 이름은 ‘토준’이었지만, 나는 ‘도토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작고 둥글고, 다람쥐처럼 생긴 모습에 딱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놀랍게도, 도토리는 내가 부르면 반응했다.

나와서 밥도 먹고, 앞발로 세수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직 손녀는 도토리가 우리 집에 있는 걸 모른다.

딸과 통화하며 "햄스터 보여줄까?" 하니,

딸은 좋다며 손녀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주었다.

손녀는 말했다.


“우리 집에도 햄스터 있어. 이름은 토준이야.”


내가 잘 못 알아듣자,


“토끼 할 때 토!” 하며 다시 또박또박 설명해 준다.

도토리를 보여 주자, 손녀는 말한다.

“어? 물병이 우리 집 거랑 똑같아!”

아무리 설명해도, 손녀는 여전히 토준이는 자기 집에 있다고 믿는다.

햄스터를 돌볼 시간도, 여유도 없을 만큼 바쁜 손녀지만

그 마음만은 여전히 토준이 곁에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 작은 생명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

어느새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도토리를 바라보며

그 따뜻한 동행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도토리와 함께하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7화그림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