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어차피 사흘 안에 일을 마무리하려면 고만례상회 근처에 있어야 한다. 지소는 가게 평상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어젯밤 잠을 잘 자지 못한 탓이다. 낯선 곳에서 뭔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는데 깨고 보니 계산기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분명 배낭 속에 있어야 할 물건이었다. 지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지소는 일어나 가게의 자물쇠를 풀었다. 유리창이 달린 미닫이문이 삑삑 소리를 내며 굴러가다가 멈추었다. 축축한 냉기가 지소에게 닿았다. 어둑어둑한 내부 윤곽이 선명해질 때까지 지소는 조금 기다렸다. 세제와 비누에서 풍기는 청량하면서도 인공적인 냄새에 익숙해지는 동안 눈은 내부를 관통해갔다. 물건들의 세계, 물건들로 이루어진 소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소는 한 발 내딛어보았다. 계산대처럼 보이는 철제 책상이 앞을 막았는데 가게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넓은 느낌을 주었다. 그 때문인지 계산만 하는 곳이라기에는 뭔가 위엄 있어 보이는 것이, 지소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앉아보지 못한 책상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녹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물건들과 선반, 출입문을 동시에 조망하면서 묵묵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 자존심 강한 늙은 짐승처럼 보였다. 책상에 몸을 기대고 섰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안도했다. 물건들은 얌전했고 선반은 튼실해 보였다. 고만례상회는 안전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출입문을 닫으려는데 가게에 들어오는 남자와 부딪칠 뻔했다. 그는 지소보다 더 놀라면서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손으로 감쌌다. 남자는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옷과 머리에 솔잎과 잡풀들이 붙어 있었다. 그는 지소를 보며, 어? 아…… 라고 내뱉은 뒤 담배요, 디스 아프리카 뭐라고 했다. 지소가 알지 못하는 종류였다. 편의점 전체 매출 중 40%에 육박하는 인기품목인지라 지소는 웬만한 담배를 다 꿰고 있었다. 그새 신상이 나왔나 싶어 담배케이스에서 아프리카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남자가 팔을 쭉 뻗어 담배케이스의 맨 아래 칸에 꽂혀 있는 담배를 꺼내더니 말했다.
“이거, 디스 아프리카 시리즈 중 가장 핫한 거, 몰라.”
몰라…? 이거 지금 반말인가, 너 몇 살이야, 라고 쏘아줄까 하는 사이 남자가 허헛 웃었다.
“그게요, 담배 이름이 몰라거든요. 멘솔 담배인데 필터에 캡슐이 들어있어서 깨물면 과일향이 나죠. 다섯 가지 과일 향이 있는데 랜덤이에요, 말하자면 무작위라고요. 그래서 몰라입니다, 뭐가 걸릴지 모른다, 이런 뜻. 오케이?”
흡연하면 수명이 짧아집니다, 라는 경고 문구를 보면서 그런 건 진즉 말해줬어야지, 라고 지소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과일향이라면 딸기, 오렌지 이런 건가요.”
지소가 물었다.
“그렇죠, 거기에 사과, 라임, 룰라가 더 있어요. 오늘 아침 첫 담배가 라임향이 걸렸지 뭡니까. 그런 날은 기가 막힌 풍경을 찍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 저는 사진관 해요, 사진을 찍습니다. 저기 선착장에서 대교 쪽으로 걸으면 나와요. 반달사진관.”
“사진관이요?”
“네, 언제 한번 놀러오세요.”
요즘에도 사진관을 찾는 사람이 있다니. 모든 사람이 자기 휴대폰으로 온갖 걸 찍는 세상인데 굳이 사진사를 찾을 이유가.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나, 그걸로 생계가 될까, 모르는 일이다.
“사천오백 원입니다.”
지소는 담뱃값을 말하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며 말했다.
“가게 잘 보시겠네요.”
순간 지소는 남자의 말투에서 자신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은밀한 동조의식 혹은 방관자적 태도를 감지했다.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지소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땅 소유주들의 행방을 파악하는 게 지소가 지금 고만례상회에 있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었다. 남자에게 노대기 씨를 아냐고 물어보았으나 그는 모른다고 했다. 파란 대문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자 그가 아는 척을 했다.
“용희 형 할아버지예요.”
“용, 노용희 씨요?”
“형 아세요?”
“노대기 씨 어디 계신가요?”
“아마 어디선가 낚시하고 계실 텐데, 확실히 모르겠어요. 사진관 놀러오세요. 꼭이요.”
청년이 가게를 나갔다. 낚시하는 노인. 미역줄기처럼 미끌거리는 바위 위에 돌처럼 서 있던 한 사람.
“그 양반은 왜 찾아? 에효, 문을 왜 이렇게 늦게 열어?”
짧은 커트머리를 한 노인이 가게로 들어왔다. 지소를 보고 어?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자연스럽게 출입구 오른쪽 벽에 있는 냉장고로 걸어가 요플레와 콩나물을 집었다. 달아놔, 에효, 라고 노인이 말했기 때문에 지소는 적을 것을 찾았다. 계산대 위에는 가운데가 부풀어 오른 검정색 노트가 놓여 있었다. 딱 보아도 외상장부 같았다. 볼펜이 끼워진 페이지를 펼친 다음 날짜를 적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에효노인, 콩나물 오백 원, 요플레 1개, 라고 적었다. 노인은 가게를 나가지 않고 지소 옆에 선 채로 말했다.
“에효, 아침밥 먹기 전에 요플레를 먹어줘야 그나마 염소 똥만큼이라도 나와, 아니면 돌뎅이가 되어서는 애를 먹는다고. 아침 여덟 시가 되어도 가게가 문을 안 열길래 오늘 똥을 못 누면 어쩌나 식은땀이 다 났어, 에효. 우리 같은 늙은이는 똥 눌 힘도 마뜩잖아. 저 위에 사는 복순이 할머니가 열흘간 똥을 못 싸서 응급실 실려 간 거 모르나? 모르겠네, 아직은 몰라, 에효.”
노인의 말이 잠깐 끊긴 사이를 놓치지 않고 지소가 물었다.
“노대기 씨가 윗집 파란대문에 사시는 건 맞죠?”
“대기 양반? 에효, 그이가 살아 있다고 해야 하누 죽었다고 해야 하누.”
“네?”
“산 사람이 산 사람 일을 해야 되는데, 에효, 산 사람이 죽은 사람 일만 해대서 하는 말이우.”
“그게…?”
“내 화장실이 급해서. 에효, 나중에 차분히 이야기하우. 그나저나 가게 잘 보겠구먼.”
노인이 나갔다. 이건 뭔가.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하다니, 귀신이라는 건가 유령이라는 건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가버린 노인의 뒷모습이 휘적거렸다. 청년이나 노인이나 지소를 보고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은 건 김을숙 씨의 외출을 알고 있다는 뜻인가. 왜 하필 지소가 양옥에 들어선 날 김을숙 씨는 집을 떠난 것일까. 방금 전 청년이 했던 말이 들리는 듯했다. 뭐가 걸릴지 몰라서 몰라, 랜덤, 말하자면 무작위.
랜덤이고 무작위라고. 이곳 반달섬까지 오게 된 것도 랜덤, 식당 노인에게 거처를 물었던 것도 랜덤, 주인여자의 집에 거처하게 된 것도 무작위고 가게를 맡은 것도 무작위? 무엇하나 랜덤 아닌 것이 없고 모든 일이 무작위의 연속이라니. 지소는 툴툴댔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것, 갖지 못한 것, 가졌다가 놓쳐버린 것, 거쳐 온 곳, 가지 못한 곳, 만난 사람, 헤어진 사람, 떠나온 이유, 떠밀려온 까닭,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무엇이 달라질까. 왜 하필 내게, 라고 수십 번 되묻던 일이 그저 랜덤이고 무작위였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면 쉬워지는 걸까, 무작위의 영역으로 밀어내는 것이 그렇게 쉬워?
따릉 따르릉 따르릉.
가게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가게를 보는 사람은 어서 전화를 받으라, 소리가 재촉하는 듯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을 텐데 지소는 자기도 모르게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라는 말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수화기 저쪽에서 라면 없어요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이와 어른의 중간 어딘가에서 멈춰버린 듯한 목소리였다. 라면이요, 무슨 라면이요, 지소가 물었다. 복순이 배고파, 할머니 자요, 라면 없어요.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어, 이게 무슨 용건의 전화일까. 아, 배달.
지소는 외상 장부를 펼쳐 라면을 배달한 곳을 찾았다. 안성탕면 한 박스가 주기적으로 배달된 곳은 다름아닌 산24번지. 노대기 씨가 전화할 리는 없고 전도사가 나온 그 집이겠다. 지소는 안성탕면 박스를 들고 파란대문에 들어섰다. 묵묵한 현관에 대고 외쳤다. 라면 배달왔습니다.
문이 열리고 복순이일 것 같은 이가 나왔다. 복순은 손뼉을 치며 와, 라면이다, 배고파, 라면 맛있어, 라고 기뻐했다. 열렬한 감정표현에 지소는 무방비상태가 되었다. 복순이 박스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므로 지소는 박스를 어깨에 맨 채 뒤따라갔다. 얼룩덜룩하게 때가 껴있는 방바닥에 박스를 내려놓았다.
지소가 테이프 끝나는 지점을 찾아 한 번에 쫙 하고 박스를 뜯자 복순이 라면봉지를 뒤적거리며 좋아했다. 할머니는 어디 있나. 반쯤 열린 방문 너머로 작은 몸체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허옇게 센 걸로 보아 할머니가 맞을 듯한데, 벽을 향해 앉아 있는 것이 잔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복순이 떠들썩한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작은 몸체는 미동도 없었다. 설마 저 상태로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지소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괴고 앉아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두 손을 모아 뭔가 뒤적거리듯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손에 든 걸 옆으로 두었다. 손은 쉴 새 없이 떨렸지만 뒤죽박죽은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었으나 지소는 알 수 없었고 손에 든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걸었지만 할머니는 지소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소가 모르는 어떤 일에 대단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지소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눈처럼 희어, 눈이 온 것처럼 희어. 천지가 전부 다…… 환한 미소를 배반하듯 눈동자는 초점 없이 흔들렸다. 노인은 눈앞의 지소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눈동자를 오래 보고 있기 힘들어 지소는 일어섰다.
싱크대를 뒤져 냄비를 찾았으나 없었다. 라면 면발이 눌러붙은 채 개수대에 처박힌 냄비를 대충 씻어 물을 받아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았다. 박스에서 라면을 한 봉지 꺼내려다가 다시 한 봉지를 더 집었고,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또 한 봉지를 집었다. 냄비에 물을 부어 적정한 양으로 맞추고 냉장고를 뒤져 김치를 찾았다.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던 것이 냉장고에 있는 거라고는 김치통 하나와 요플레 두 개, 깨진 틈으로 흰자가 흘러나오다 굳어버린 계란 한 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생수통이 전부였다.
물이 끓었다. 면발과 스프를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할머니, 라면 드세요, 지소가 말해도 노인은 기척이 없었다. 복순이 노인의 귀에 대고 아주 큰소리로 라면, 라면, 이라고 말했다. 노인은 곤히 자다 깬 사람처럼 응? 라면? 이라고 벌컥하고서 지소를 쳐다보았다. 아까와 다르게 노인은 눈앞의 지소를 보고 있었다.
“댁은 뉘신데 우리집에서 뭣이냐, 라면을 끓였소?”
“저는, 그러니까, 지적재조사, 아니 가게 보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어? 아…… 라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천천히 돌아앉았다. 개다리소반에 냄비를 놓고 밥그릇을 챙겨 노인 앞에 놓았다. 지소가 그릇에 라면을 나눠 덜기도 전에 복순이 젓가락을 냄비 속에 집어넣고 면발을 집었다. 복순은 라면, 뜨거워, 후후, 라고 쉴 새 없이 말하면서 라면을 흡입했다. 지소는 면발을 뒤적여 적당히 식혀가며 먹었다. 노인은 젓가락 사이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면발을 손으로 받아 입으로 넣었다.
알맞은 점심. 급히 끓인 이 라면은 세 사람에게 그랬다. 냄비 하나 덜렁 놓인 상을 둘러싸고 오늘 허락된 유일한 음식인 것처럼 집중했다. 반달섬에 와서 처음으로 지소의 마음이 흡족했다. 그럴 기회는 결코 없겠지만 라면을 발명한 이를 격하게 껴안아주고 싶었다. 인간이 발명한 것 중 최고의 것을 뽑으라면 지소는 주저 없이 라면, 이라고 대답할 용의가 있었다. 혼자 라면을 끓어먹는 거야 이골이 나 있었고 라면 한 박스로 한 달을 살았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끓일 때마다 마음이 급해지고 먹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식품은 라면 말고 없었다. 물을 끓여 봉지 속의 내용물을 넣으면 되는 조리과정, 냄비와 그릇만 씻으면 되는 뒤처리, 하루에 두 번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일관된 맛, 배가 쉽게 꺼지지 않는 허기충족의 지속시간까지, 값이 아깝지 않는 몇 안 되는 물건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지만 라면의 가장 큰 미덕은 따로 있었다. 혼자 먹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아주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고작 라면을 먹으니 성찬 앞에서 혼자인 것보다 낫다. 꼴랑 라면이니 둘은 오히려 부담된다. 겨우 라면이니 빨리 해치우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라면이 없었다면 삶은 훨씬 더 초라하고 배고팠을 것이다. 냄비 채 국물을 들이마시는 복순을 바라보며 지소는 그런 생각을 했다.
“뭣이냐, 설거지는 놔두구려, 정신 차리면 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소.”
지소는 설거지를 하고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혹시 구이순 씨를 아시는지요?”
“누구?”
지소는 고만례상회의 주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어도식당 주인 분이 구이순 씨인가요?”
“응? 뭣이냐, 그이가 맞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네?”
“뭣이냐, 그이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게 무슨…?”
초점 없는 눈은 노인이 다시 까마득한 세계로 가버렸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지소는 난감해진 마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바닥에 펼쳐진 복순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 어두워 또렷하지 않았지만 풀더미인 듯한 초록색의 한 가운데 검은 동그라미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이 구멍처럼 보였다.
“동굴이야, 구멍 아냐.”
복순이 말했다.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입으로 튀어나왔나. 지소는 스케치북을 들어 자세히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뒤편으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바람에 나부끼는 풀 무더기 가운데 시커멓고 동그란 공간이 벙 뚫려 있었다. 복순의 말대로 동굴로 보면 동굴이지만, 지소는 여전히 그것이 동굴이라기보다 허공에 뚫린 구멍처럼 느껴졌다. 공백인 것이다. 하얀 짐승의 검은 목구멍이 떠올랐다. 숨이 가빠지려 했다. 지소는 눈을 감았다. 별 거 아니다, 그냥 숨을 내쉬면 된다, 내쉬고 들이쉬면 된다, 어렵지 않아, 할 수 있어. 휴. 스흡, 휴. 얼마동안 그렇게 하자 호흡이 조금씩 깊어졌다. 그것이 다가오려다 멈추었다는 걸 지소는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앞의 동굴, 저건 그냥 그림이다, 하면서 눈을 돌리려는데 동굴 속에서 뭔가 어른거리는 게 느껴졌다. 검은 것 속에 더 검은 뭔가가 있었고 그것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피곤한 탓이다. 지소는 일어섰다. 복순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이 너무 기이해서 지소는 손에 든 스케치북을 놓쳤다.
“구이순.”
복순의 입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구이순 씨를 알아요? 어디 있어요?”
복순은 바닥의 그림을 가리켰다. 구이순. 소중한 이를 떠올리듯 복순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축축했다.
“여기 가면 만날 수 있어요? 복순이 그린 이곳, 어디예요?”
복순이 지소를 바라보았다. 기쁜 듯 슬픈 듯 알 수 없는 얼굴을 바라보며 지소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같은 계산식에 자꾸만 다른 답을 내어놓는 계산기를 앞에 둔 느낌이었다. 복순의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와, 라면 끓여줘.”
복순은 방바닥에 앉아 스케치북의 다음 장을 넘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소는 일어섰다. 현기증이 났지만 서둘러 복순의 집을 나왔다.
*
지소가 기억하는 첫 증상은 출근하는 지하철 전동칸 안에서였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보통의 출근길이었다. 오전 일곱시 이십 분에 지하철역에 도착했고 거대한 인파가 몰랐다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파도에 밀려 전동칸에 들어섰다. 이 열차를 놓치면 지각하게 되어 있어 다행이다 안도하는 순간 지소는 보았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검은 머리의 홍수. 사방에 온통 검은색의 머리, 앞에도 그 앞에도 옆에도 그 너머에도 뒤에도 더 뒤에도. 머리 스타일이 모두 같지 않고 색깔도 조금 다를 테지만, 그 순간 지소의 눈에 보이는 건 지독히 검은, 순수하게 검은, 그래서 불길할 수밖에 없는 머리. 가슴에서 무언가 강렬하게 파열하는 느낌이 들었다. 산산조각. 뭔가 내장을 훑고 올라오는 듯 구토감을 느꼈지만 정작 숨을 토해내지도 들이쉬지도 못했다. 검은 머리들은 언제든 덤벼들 태세를 갖추고서 지소가 그곳에 몸을 들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하면 돌진해버릴 그것들의 표적이 되었다는 생각은 온몸이 얼어붙는 극심한 공포로 이어졌다. 그곳에 있다가는 일초도 견디지 못하고 숨이 끊어질 것 같았고 그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으로 가득 찬 전동칸 안에서 출입문에 다가서기는커녕 서 있는 자리에서 몸을 돌리는 동작조차 불가능했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했다.
암흑과 고통. 그 이후를 기억해내는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지소에게 여전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열차가 출발하고 다음 역에 도착해 출입문이 열릴 때까지의 그 시간은 지소의 인생에서 가장 긴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검은 암흑뿐이었고 몸을 돌릴 수도 숨을 토해낼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으나 언제 그 정지상태가 해제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둘 셋을 기다리며 침탈할 틈을 노리는 그것들에 둘러싸인 채 지소는 암흑을 통과해갔다. 이 혼돈과 산란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소의 내부인지 외부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지소의 내부와 외부가 한꺼번에 붕괴되고 있다는 감촉. 견디는 것 말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없는 고통이라는 괴물, 그 속에서 오히려 뚜렷해지는 살아있음의 가혹한 감각. 지소는 점점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붙잡고 단단하고 굳건한 열차의 바퀴를 생각했다. 바퀴가 굴러간다, 앞으로 나아간다, 영원할 것 같은 이 순간도 끝이 있다, 끝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 순간을 통과했고 탈출했다.
지소는 탈출자였고 생존자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통과의 동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디로 통할지 알 수 없고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탈출구 없는 곳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것이 지소라는 작은 점을 향해 압박해오는 느낌이 수시로 습격했다. 그럴 때면 지소는 다시 탈출자의 순간을 살아야 했다. 바퀴를 생각하면서, 숨 쉬는 법을 기억해내면서.
국토 최남단으로 출장 온 두달 동안 지소에게 증상은 찾아오지 않았다. 다행한 일이었고 순조롭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복순의 그림을 보는 순간 호흡이 가빠지려 했다. 왜. 반달섬에서는 왜.
지소는 고만례상회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열이 식으면서 그러는지 조금 싸늘한 느낌도 들었다. 노대기 씨는 어디에 있는가, 구이순 씨는 누구인가. 이 동네 사람들은 왜 알 듯 모를 듯한 말들만 늘어놓는 건가. 이러다 오늘 하루를 소득 없이 보내게 생겼다. 아직 토지소유주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내일이면 일이 진척되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김을숙 씨의 약속대로 사흘 후면 구이순 씨를 만나게 될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지소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뒤돌아 책상으로 걸어올 때 대각선으로 마주한 벽에 난 쪽문이 보였다. 선반과 쌓여 있는 물건들로 인해 출입문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문으로 다가갔다. 확 열어젖히지 못하고 그 앞에 섰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게에 딸린 방일 것 같았다. 옛날 가게들은 그런 구조였으니까. 그렇다면 누군가의 사적 공간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가게를 보려면 가게 안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 들어 지소는 과감하게 문을 열었다.
잠깐 망설였던 것이 민망해질 정도로 용도가 분명한 그곳은 휴게방 겸 창고였다. 벽 쪽으로 초록색의 패브릭 소파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 연두색 담요와 베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소파 앞 탁자 위에는 두꺼운 책 한 권과 라디오가, 소파 옆 싱크대에는 전기포트가 놓여 있었다. 벽에 난 작은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방의 물건들은 모두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며 햇볕을 쐬고 있었다. 마치 웬만해서는 소리를 내지 않는 얌전한 초식동물들 같았다.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로 닳은 소파에 앉는 순간 몸이 훅 가라앉는 바람에 놀랐으나 그 푹신함은 곧 익숙해졌다. 햇살을 받으며 소파에 앉아 있으니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 이렇게 앉아 있었던 것처럼 지소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말랑해졌다.
“아이가 있다.”
“그런가, 아이가 있나.”
“동굴 속에 아이가 있다.”
“그랬나, 동굴 속에 아이가 있었나.”
지소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동굴 속에 아이가 있다는 말의 어느 구석이 그렇게 슬픈 건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뱉지 못하고 삼켜버린 비명이 오랫동안 봉인되었다가 헐거운 틈으로 새나오는 것을 듣는 느낌이랄까. 절박하지만 수줍고 희미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뭔가에 지소의 마음이 가닿았고 이내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중심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울려거든 엉엉 울어.”
또렷하게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지소는 깜짝 놀랐다. 그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지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눈동자와 부딪쳤다. 으악.
“깜짝이야, 뭔 목청이 그렇게 커, 이번에는 젊은 사람이구먼.”
“뭐, 뭡니까, 할머니.”
서럽게 흐느끼고 난 여운이 가시지 않아 지소는 더듬거렸다. 눈앞의 노인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지소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동굴 가봤어?”
“네? 동굴이요?”
“동굴 속에 아이가 있다.”
꿈결에 들었던 목소리가 이 노인의 것이었다. 슬픈 어조이기는커녕 명랑하고 발랄했다. 우리집에 비숑이 있다, 라고 말하는 아이처럼 그랬다. 그런 말을 듣고 뜬금없이 흐느끼는 사람이 된 꼴이었다. 제정신이 아니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노인이 지소 옆자리에 앉았다. 그 몸체가 어찌나 가벼운지 노인이 앉은 소파 자리는 밑으로 전혀 꺼지지 않았다. 노인은 눈이 부시도록 완벽한 백발이었고 원래가 작은 몸체인데 허리까지 심하게 굽어 있었다.
“우유 줘, 작은 걸로. 나는 우유가 참 맛나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여기? 점방이잖어.”
“아니요, 이 방이요.”
“여기? 점방이라고.”
“할머니 누구세요?”
“나는 우유가 참 맛나다.”
지소는 방을 나왔다. 가게 앞 평상에 서너 명의 노인들이 앉아 있었고 막걸리병과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평상 위에 앉아 있던 에효노인이 아는 척을 했다.
“달아놔, 막걸리 두 병이야.”
“옆에 새우깡은 뭔데요?”
“에효, 이것도 달아놔.”
옆 노인이 에효노인에게 물었다.
“손녀가 외상값 갚아줬어?”
“말이라고, 에효, 우리 손녀가 용돈도 주고 외상값도 갚아주지.”
용돈 주는 손녀가 최고 효자라는 말을 뒤로 하고 지소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소파로 걸어갔다. 노인은 얌전히 앉아 벽에 걸린 풍경을 보고 있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유채꽃밭을 찍은 사진이었다. 원래 달력이었던 것을 하단의 날짜만 잘라낸 듯 삐뚤했다. 바다는 파랗고 유채꽃은 노랗다, 저 둘만 있어도 세상은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 저 둘만 있어서 평화로운 것일지도.
노인에게 우유를 건넸다. 노인이 우유는 받지 않고 말했다. 주둥이 뜯어줘야지. 지소가 종이팩의 입구를 찢어서 양쪽으로 벌린 다음 우유를 건네주자 노인이 다시 말했다. 빨대도 꽂아주고. 귀찮은 노인네. 지소는 빨대를 찾아 노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노인은 조심스럽게 우유를 들고 빨대를 빨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처럼 다리를 흔들거리며 꿀꺽하는 소리를 내면서 우유를 마셨다. 지소는 계산대로 돌아와 장부를 펼쳤다. 백발노인, 2백미리 우유 하나, 라고 쓰면서 노인이 한 말에 대해 생각했다.
동굴 속 아이. 아이가 있다니.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아이라는 단어가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건 아직 크지 않은 어린아이를 뜻하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이미 훌쩍 늙어버린 노인 자신을 지칭하는 주름진 언어처럼 느껴졌다. 지소는 노인의 나이를 대충이라도 가늠해봤다. 여든? 아흔? 백살? 알 수 없었다. 등과 목이 거의 수평이 되어버릴 정도로 굽은 허리와 완벽한 백발, 그에 걸맞은 것인지 걸맞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는 또랑또랑한 목소리, 나는 우유가 참 맛나다, 라는 순진무구한 말투까지, 노인의 모습과 목소리, 말투가 서로를 배반하면서도 기이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노인의 백발과 굽은 허리는 나이를 알려준다기보다 노인을 시간과 무관한 존재로 표백하는 것 같았다.
가게 유리창 너머 주홍빛이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지소는 시계를 보았다. 이런, 벌써 여섯 시가 다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저녁은 온다. 중천에 떠 있던 태양도 서쪽 하늘로 지고 반나절이 지나면 또 반나절이 오는 법이다, 누구도 시간과 무관하게 표백되어버릴 수 없다, 노인의 주름은 그걸 말해주는 거 아닌가.
일군의 노인들은 여전히 평상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우유가 맛나다는 노인은 왜 저들과 어울리지 않는 걸까. 쪽방을 내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소파 위에도, 절반쯤 접힌 자바라 커튼 뒤에도, 노인은 없었다. 빨대가 꽂힌 우유팩만 방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상하다, 노인이 나갔다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데. 아닌가, 평상의 노인들을 신경쓰는 동안 그 작은 몸체가 빠져나가는 걸 못 보았을까. 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소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수상한 바람이 방안 어디선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한 병만 더 먹자는 노인과 그만 가자는 노인의 실랑이가 끝나고 노인들이 일어섰다. 에효노인이 지소에게 말했다.
“이거 챙겨가우.”
“네?”
“고기를 잡아다 뒀잖우, 에효.”
“누가요?”
지소가 물었다.
“누구긴 누구야.”
“죽기 살기로 낚시하는 사람이 이 섬에 또 있나.”
“노대기 씨죠?”
지소가 물었다. 노인들은 맞다 틀리다 대답이 없었다. 한 병만 더 마시자던 노인이 평상 밑에서 어망을 꺼냈다. 순간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물을 튀겼다. 팔뚝만하게 컸고 검회색 비늘이 번들거려 꽤 무서웠다.
“파도가 거친데 저 큰 걸 어찌 잡았누?”
“낚시 솜씨는 최고 아닌가.”
“저이가 저걸 어찌 손질하누?”
“준희네가 가져가소.”
“뭔 소리 하는 게야, 저 물고기가 뭔지 몰라서 그러는 게야?”
“괜히 하는 소리지 뭐.”
“먹을 이도 없는데 저렇게 잡기만 하면 뭐하누?”
“저거라도 해야 그나마 조용하잖우.”
노인들은 노대기 씨임이 분명한 사람에 대해 지소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지소는 뭘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물고기를 주고 간 건가? 먹으라고? 검회색 비늘이 번들거리는 살아있는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낸 다음, 불에 굽든 탕을 끓이든 하라고? 난데없는 물고기 앞에서 지소는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가게를 떠나는 노인들에게 물었다.
“노대기 씨 지금 어디 있어요?”
“집으로 갔어.”
누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파란 대문이요?”
“파란 건지 시커먼 건지.”
지소는 배낭을 챙겼다. 어망 속에서 펄떡거리는 고기를 보고 잠시 고민하다 쪽방에 두었다. 서둘러 고만례상회를 나왔다. 바람이 거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