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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님이, 선생님들 중 제일이야!

할아버지 회원님

by 선옥 Mar 18. 2025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 10분 동안, 수영장 샤워실에 앉아 있으면 다양한 목소리들을 마주하게 된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어제 강습에 못 나왔어."
 "요즘은 직장 상사보다 사춘기 아들 녀석이 더 어려워."
 "마라톤 준비하느라 두 달 동안 술을 끊었지."

회원님들의 대화에 직접 끼지는 않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라디오 DJ가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더 생생하게 각자의 사연이 전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 대화에 집중하게 되고,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내 회원님이 아니더라도 마주치는 모든 회원님들께 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분이 있었다. 수영장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 회원님이었다.


 매일 아침 6시 50분이 되면, 군밤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와 장갑까지 단단히 챙긴 채로 등이 살짝 굽은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신다. 그 모습이 어찌나 정겹던지. 

나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님들도 할아버지께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다.

"오늘도 자전거 타고 오셨어요?"
 누군가의 따뜻한 물음에, 별다른 말씀 없이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는 할아버지.
 그 모습만으로도 "걱정해 줘서 고맙네."라는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부지런한 할아버지의 모습도, 말 없이 오가는 온정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따뜻해진다.


 강습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올 때와 마찬가지로 군밤모자와 마스크를 단단히 챙긴 채 탈의실을 나서려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늘 그렇듯 나는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다. 하지만 그 한마디 속에는 "어르신,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할아버지는 늘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셨고, 그 손짓에서 넘치는 따뜻함을 받은 나는 다시금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그런데 그 순간, 탈의실을 나서던 할아버지가 다시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오시더니,

"강사님이 선생님들 중 제일이야." 하며 엄지를 척 내미셨다. 나는 순간 ‘수업을 잘 가르친다는 뜻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그걸 눈치채신 할아버지는 웃으며 덧붙이셨다.

"아니, 강사님이 여기 선생님들 중에서 인물이 제일 좋다니까~"

아마 웃으며 인사를 드린 내 모습을 좋게 봐주신 거겠지.
 

나는 그저 웃으며 인사를 건넨 것뿐인데, 일부러 다시 돌아와 엄지를 들어 보이며 건네신 한마디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순수함은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어른이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무게만큼 마음도 단단해지지만, 그 속에서도 남아 있는 따뜻한 순수함은 어쩌면 더 깊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계절에도 이런 순간들이 불빛처럼 곳곳에 켜져 있어서

우리는 매서운 겨울도 견디고, 다시 봄을 맞이할 힘이 생기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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