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공복, 진짜 효과 있나 해보기
티켓을 승무원께 건넨 뒤,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평소라면 창가 자리를 택했겠지만, 14시간이라는 긴 비행 동안은 일어나 스트레칭도 하고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하기에 이번엔 복도 쪽으로 선택해 좌석을 배정받았다.
장거리 비행 선배님들의 조언을 얻기 위해 유튜브를 켜서 장거리 비행 필수탬 영상을 찾아보며 기내에서 사용할 물건들을 몇 가지 챙겼다.
우선 잠옷처럼 편안한 옷과 건조한 기내를 위한 수분팩, 비행기에서도 나름의 숙면을 위한 목쿠션과 안대, 자고 일어나서 샤워는 못하지만 간단하게 양치라도 할 일회용 칫솔과 책을 읽거나 생각 정리 하기 위한 태블릿, 대한항공 기내에서 제공해 주는 슬리퍼와 영화 몇 편.
이렇게 든든한 비행여행 준비물들로 무장한 나는 비행기에 몸을 편안하게 맡겼고, 무사히 이륙한 비행기는 안정적으로 대기권 상부로 순항하였다. 이내 승무원들은 기내식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임을 보였고 내 좌석의 담당 승무원이 오셔서 특별 기내식을 신청한 게 맞는지 확인을 하였다.
특별기내식. 이번 비행여행에서 기대된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기내식이었다. 나는 사전에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특별기내식으로 첫 번째 식사는 해산물식, 두 번째 식사는 저지방식을 신청하였는데 그 이유는 해산물식으로 나오는 생선 스테이크 혹은 오징어를 좋아하였고, 간혹 저지방식에서 안심스테이크가 나오기도 하고 특별기내식은 일반식사보다 더 빨리 나오기도 하고 특별 기내식을 한번 먹고 다른 승객들이 먹지 않아 남는 일반 기내식이 있다면 한번 더 먹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번 첫 번째 기내식으로 나올 해산물 식을 나는 승무원님께 지금 주지 말고 좀 이따 두 번째 기내식에 같이 달라 부탁드렸다.
특별기내식을 신청할 만큼 기내식을 좋아하고 두 번 먹을 정도로 잘 먹는 내가 기내식은 물론 중간에 나오는 간식까지 모두 먹지 않은 이유는 바로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시차 적응을 위해 수면 패턴을 바꾼 게 아니라 식사를 건너뛴 이유는 KBS1에서 방영한 '숙면의 과학'의 내용 중 하버드의대교수인 패트릭 풀러(Patrick Fuller)가 시차 적응에 실험한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내용은 A와 B 두 명의 성인 남성을 놓고, A는 수면은 자유로운 대신 16시간 동안 물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먹지 않다가 도착한 현지에서 아침날 첫끼를 먹는 것이었고 B는 식사도 수면도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A는 시차에 불편함을 전혀 겪지 않고 좋은 컨디션이었지만 B는 며칠 동안 시차에 적응을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위 실험을 알기 전 나는 비행기에서 최대한 자고, 도착 후 피곤해도 버티다가 밤에 잠들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잠이 아닌, 식사로 시차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꽤 흥미로워 이번 장거리 비행에서 직접 경험하며 느껴 볼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 탑승 4시간 전 아침을 아주 든든히 먹은 채로 첫 번째 기내식은 받지 않았다. 다른 승객들이 기내식을 먹는 동안 나는 안대를 쓰고 잠을 잤다. 잠든 지 2시간 정도가 지났고 기내에는 더 이상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도 나지 않았고 안대 너머로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승객은 가져온 태블릿으로 원하는 영상을 시청하였고 어떤 승객은 비행기에서 틀어주는 영상을 보거나 잠을 자는 등 저마다 하고픈 일들을 하고 있었다.
잠도 잘 잤고 비행시간이 꽤 남았으니깐 생각을 글로 정리도 하고 책도 읽을 겸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좌석 앞 선반을 내려 태블릿을 사용하려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할머님 승객 한분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팬과 노트를 꺼내 글을 쓰는데 집중하며 정성껏 적어 내려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글을 저렇게도 정성껏 적어 내려 가시는 걸까?
인천에서 뉴욕 가는 장거리 노선은 젊은 사람한테도 쉽지 않은 여정인데 저 연세에 어떤 이유로 뉴욕을 가시는 걸까? 뉴욕에 자식은 걸까? 미국으로 이민 갔는데 잠시 고향에 돌아오셨던 걸까? 그럼 할머니도 영어를 잘하시는 걸까?
어떤 연유로 뉴욕행 비행기를 타셨을까. 그 연세에 장거리 비행을 견딜 수 있는 체력도, 익숙한 듯 노트와 펜을 꺼내 글을 쓰는 모습도 모두 내겐 마음 깊숙한 곳에서 존경심이 일어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