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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행 14시간 비행기, 오히려 좋아

혼자 보는 나만의 시간

by 선옥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뉴욕처럼 비행시간이 긴 장거리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까지는 직항으로 약 14시간. 이코노미석으로 가는 여정이라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오히려 이 긴 비행시간이 나에게는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뉴욕행으로 탑승하게 된 항공기는 대한항공 A380 기종. ‘비만 돌고래’, 줄여서 ‘비돌이’라는 귀여운 별명이 붙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로, 2층 전체가 비즈니스 클래스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인 만큼 기내에 라운지가 포함된 특별한 여객이다. (이코노미 승객은 이용하지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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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비행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좁은 좌석에 오랜 시간 앉아만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비돌이는 1층 뒤쪽 화장실 앞이 꽤 넓은 공간으로 확보되어 있어, 몸이 뻐근할 때면 그곳으로 가 스트레칭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며 뻐근함을 풀어 줄 수가 있었다.


그렇다 해서 14시간 비행이 결코 편하다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이 시간을 오히려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장거리 국제선에서는 대부분 유료 Wi-Fi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일반 승객 입장에서는 굳이 비용을 들여가며 이용할 필요가 없기에 자연스레 데이터, 문자, 전화가 모두 끊긴다.


그 결과,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강제 모바일 디톡스’ 상태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립된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고, 복잡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머릿속을 말끔히 비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일정 조율, 예약, 짐 싸기, 일 처리까지 병행하느라 정신없는 상태로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과 병행하며 여행을 준비했기에 출국 직전까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비행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는 현실의 걱정을 내려놓고, 모든 생각의 방향을 나 자신에게로 집중할 수 있었다. 탑승 후, 가족과 지인들에게 짧은 안부 메시지를 남긴 뒤 바로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였고, 그 순간부터 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14시간 동안 무엇을 해도 괜찮았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밀린 잠을 자도, 아니면 일기장을 펼쳐 생각을 정리해도 좋았다. 누구의 방해도 없었고,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것'만으로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고된 여정일 수 있는 이 긴 비행이, 내게는 여행의 설렘과 행복을 출국과 동시에 선물해 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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