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커피는 못 참지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기 시작한 후,
4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고 있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늘 대기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진료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꽤 많은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다.
지난 4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내 기분은 어땠는지
부모님이나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혼자 느끼고 말았을
감정들을 되돌아보며 선생님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다.
내 이야기를 듣고 코멘트를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이야기한다는 게 약 이외에도
꽤 큰 위안과 힘이 되더라.
문득, 약을 복용한 이후부터
내 머릿속은 전과는 다른 차원의 공간 같았고
매일 상쾌함과 신선함을 느꼈기에
‘이 상쾌함이 약이 주는 거라면, 약을 먹지 않았을 때의 나는 어땠지?
약을 먹지 않고 내가 받아들이는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약을 끊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다음 주에 뉴욕 여행을 8일 정도 가는데요,
그때 약을 먹지 않고 원래의 제가 여행을 가면 어떨지 느껴봐도 될까요?”
선생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으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여분의 약도 처방해 주셨다.
“여행 중 힘들거나, 복용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그때 드세요.”
여행 중 약을 잠시 중단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어서였지만,
사실 또 다른 이유는 커피 때문이었다.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커피의 산미와 향을 즐겼고
좋은 로스팅을 한다는 카페라면
전주나 강원도까지도 기꺼이 찾아갈 정도로 나는 커피를 좋아했다.
하지만 약을 복용한 이후로는
반년에 한 잔도 마시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약을 먹는 동안에는 커피를 되도록이 아니라, 아예 마시지 말라”라고.
카페인이 약물과 함께 작용하면
과흥분 상태, 수면 부족, 인지 부조화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인들과 카페를 가더라도
페퍼민트처럼 카페인이 없는 차를 마셨고,
정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땐 디카페인으로 대신해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생두기준으로 90% 이상만 카페인을 제거하면
디카페인이라고 표시가 가능하기에 디카페인 커피조차도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던 커피를
완전히 끊게 되었지만
세계 경제의 심장부이자 문화의 교차점인 뉴욕에까지 와서,
커피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유럽의 전통적인 ‘천천히 즐기는 커피 문화’와는 정반대로,
뉴욕은 빠른 리듬과 실용성,
그러면서도 품질과 감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양면적인 커피문화를 가지고 있다.
물론 스타벅스의 1호점은 시애틀,
블루보틀은 오클랜드에서 시작되었지만,
두 브랜드 모두 뉴욕 진출을 통해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뉴욕이라는 무대에서
대중성과 감성을 입은 그들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런 뉴욕 현지인들의 일상과 입맛에 맞춰진 로컬 커피 맛집을,
이번 여행에서 꼭 맛보고 오리라.
다음 편은,
ADHD 약물 없이 생애 첫 미국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