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삶이었다.
약을 먹고 있음에도 내 머릿속은 아직까지 생각들로 가득 차 있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오늘은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려다 감정에 빠져 그 감정에 더 집중을 하고자 해서
잠시 현재의 내 심정과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침대에 누워 빠진 생각은 이러하였다.
새벽반 성인 강습을 받는 회원님 중 어머니 뻘 정도 되시는 한분이 내게 연락처를 받아가시더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연락이 왔다. 평소에도 나를 잘 챙겨주셨던 회원님이시기에 무언가 주시려고 그러시나 보다 하고 한사코 거절했지만 주소를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수영장으로 가져온다 하셔서 주소를 알려드리니 집으로 이불과 베개 커버를 보내주셨다. 바로 이불과 베개 커버를 사용하여 회원님께 감사인사를 드렸고 그 위에 누워 새 이불의 푹신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며 책을 펼쳐보는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내가 뭐라고 참 이런 걸 주시고 이렇게 생각을 해주실까 돌이켜 보니 지금까지 나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복을 받았구나 삶이 힘들어 놓고 싶은 순간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내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셨고 언제나 그 타이밍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지난 시간 동안의 나는
그리 잘 살지도, 그렇다고 못 살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정말 많은 축복과 사랑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그 축복과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ADHD 때문일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원래 그런 걸까.
내 머릿속은 늘 분주했다.
쉬지 않고 속삭이는 생각들이 넘쳐났고,
때때로 이 쉬지 않는 속삭임에 빠져 우울과 무기력함이
내 삶의 중심을 삼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린 시간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날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내 안의 목소리 중 대부분은 ‘긍정’에 가까웠다.
일상 속, 아이들의 눈을 바라볼 때면
그 까맣고 깊은 눈동자 속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빛이 보이곤 했다.
반면, 어른들의 눈동자에서는
그런 빛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세월이 새긴 주름들위로 그들이 지어주는
미소는 내게 더 깊고 따뜻함을 보여주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자랑스럽게 이렇다 할 인생을 살아온 건 아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기쁨과 감사를 느끼며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런 나의 긍정적인 감정들은
부침개 뒤집듯,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쉽게 뒤집혀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오뚝이처럼
다시 중심을 바로잡는 법을 알고 있다.
그렇게 매번 뒤집히는 감정 속에서도
나는 ‘중심’에 서 있고 싶다.
내가 원하는 바를,
망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그 길 위에서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더라도
나는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