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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다, 내 머릿속이 이렇게 시끄러웠는지

잠들기 전 한 알, 다음 날 아침 한 알

by 선옥

약을 처방받은 날 밤,
잠들기 전 스트라테라(아토목세틴)를 한 알 복용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콘서타(메틸페니데이트) 한 알을 삼켰다.


스트라테라는 당장에 큰 변화를 못 느꼈지만,
콘서타는 분명 달랐다.

복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또렷이 떠졌다.
머리는 맑고, 몸은 가벼웠다.


평소 나는 잠이 매우 많은 편으로,
몇 시간을 자든, 어떻게 자든 나는 다음날 눈을 뜨는 게 너무 힘들었고
어떤 알람이든 소용없이 출근시간에 임박해서야 겨우 눈을 떴다.


어딜 가나 버스를 타면 몇 정거장 가지 못해 잠이 들었고,
오랜 시간을 자도 피로는 늘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도 잠들지 않았고,
출근길 내내 몸과 마음이 가볍고 생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변화는 ‘머릿속’이었다.

마치 시력이 나쁜 사람이 처음 안경을 썼을 때처럼.
자신이 잘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온 삶.

그동안 나는 그런 흐릿한 시야로 세상을 봐왔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내 머릿속은 항상 어지럽고 시끄러웠다.
잡생각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이런 줄로만 알았다.

당연하게도 '나'의 기본값이라 여겼다.


그랬던 나의 머리는 콘서타를 먹은 뒤,
마치 주파수를 제대로 맞춘 라디오처럼
조용해졌고, 고요해졌다.

이보다 선명하고 활기찬 하루를 맞이했던 적이 없었다.


직장뿐 아니라 개인적인 일에서도
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던 나는
일을 하기에 앞서 머릿속이 복잡해

현실에 놓인 일들조차 정리가 어려웠고,

그 혼란 속에 현실의 일처리는 자꾸 미뤄졌다.


그렇게 쌓인 일들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채
거대한 쓰레기산처럼 방치되어 왔다.


약이 내 현실을 마법처럼 바꾸진 않았지만,
의식은 달라졌다.
차분했고, 또렷했고, 명료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떤 일부터 정리해야 할지
머릿속에 처음으로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안에 떠들던
수많은 ‘나’들의 목소리를 볼 수가 있었다.

“첫날만에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니.”

정말 그랬다.


지금까지 나는,
세상의 절반 이상이 누려온 ‘평범함’조차
갖지 못하고 살아왔던 걸까?


그동안 나를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이라 여겨왔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감정에 벅차올랐다.


‘내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내가 모자란 게 아니었구나.’

단지 내 뇌가, 조금 달랐던 것뿐이었구나.

스스로를 미워했던 지난날들이
처음으로 다르게 보였다.

앞으로 나의 ADHD 삶이, 여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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