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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줄 알았는데, ADHD였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선 ADHD에게 이런걸 검사합니다.

by 선옥

어디를 가든 한 달은 기다려야 했기에,
나는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병원을 찾기로 했다.

집에서 가까울 것.
성인 ADHD 진료가 가능할 것.
그리고, 선생님이 친절하다는 후기.

그 조건에 맞는 병원을 찾아 예약을 잡았다.

진료를 받기 전까지,

나는 부모님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거의 알리지 않았다.

내가 ADHD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적으로 비칠까 봐서였다.

그렇게 예약일이 다가왔고,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했던 나였지만
‘정신건강의학과’라는 과에 직접 진료를 받으러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번째 절차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1:1 면담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
학창시절이나 어린 시절의 증상,
일상생활, 대인관계, 직장생활에서의 문제 등
다양한 항목을 차분히 물어보았다.

나는 숨기지 않고 다 이야기했다.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인한 감정,
나 자신이 싫고 고치고 싶어 하는 부분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던 나의 특징들까지.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다 들어주신 뒤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ADHD가 의심되네요.
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추가적인 검사를 진행해 볼게요."


진료실을 나와
나는 검사실로 이동했다.

작은 방 안, 모니터 앞에 앉아
주의집중력검사(CAT)를 진행했다.

검사의 형식은 단순했다.
모니터에 도형이 뜨거나,
이어폰을 통해 소리가 들리면
제시된 조건에 따라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총 30분가량 진행된 검사.
초반에는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건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패턴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조건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속도도 현저히 느려졌다.

검사를 마친 뒤 잠시 대기했고,
이윽고 진료실로 다시 들어갔다.

선생님은 내 검사 결과지를 펼치며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ADHD 평가용 CAT 검사(Cognitive Attention Test)는
총 6가지 항목으로
주의력과 실행기능의 여러 측면을 살펴봅니다.

현재 송수영님은
반응 속도와 정확도(시각/청각), 선택적 주의력,
자극 구별 능력, 충동 억제, 집중력 유지
이 네 가지는 일반인보다 높은 편이에요.


하지만,
동시처리 능력과 인지의 유연성,
정보 유지 및 실행기억 부분에서는
일반인보다 현저히 낮은 그래프가 나타납니다.


즉,
감각 입력에 따라 주의력 차이는 크지 않지만,
복잡한 지시를 동시에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고
한쪽 자극에만 반응해 실수가 잦은 경향이 있어요.

특히나

한 번에 여러 상황이 벌어질 경우
멘붕 상태처럼 압도당하는 모습으로 보여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지난 날, 나의 모습들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유독 실수가 많았고,
설명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금세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말을 다 듣고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곤 했다.

여러 상황이 한꺼번에 터질 땐,
머릿속이 하얘졌고, 숨이 가빠질 정도로 정신이 정지됐다.

예를 들어,
일을 하다가 과거의 실수가 다시 떠오르면
나는 지금의 일과 과거의 실수,
그 둘 다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하지만 결국
현재의 일도, 과거의 실수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 내게
질책이라도 하면
나는 더 깊은 혼란에 빠져
버벅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해

스스로를 비관적인 사람으로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말을 이으셨다.


“현재로서는 성인 ADHD로 보입니다.
우선은 체중에 맞춰
최소 용량의 약부터 복용해보시죠.”


선생님은 내게 처방해 주신

두 가지 약을 차분히 설명해주셨다.


첫 번째는
메틸페니데이트 계열,
대표적으로 ‘콘서타’라는 약이 있다.

이 약은 중추신경을 직접 자극해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특징으로
작용 시간은 12시정도로

주로 주의력 부족, 과잉행동, 충동 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이나 수험생에게 많이 처방된다고 했다.

약물이 맞지 않거나 복용 초반에는

식욕 저하, 심박수 증가, 불면 등이 있을수 있어
주로 아침에 복용하는 약이었다.


두 번째는
아토목세틴 계열,
대표적으로 ‘스트라테라’라는 약이다.

이 약은 중추신경계를 직접 자극하지 않아
도파민은 건들지 않고
노르에피네프린의 재흡수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해

서서히 작용하는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2~4주가 걸리며
작용 시간이 최대 24시간까지 이어질 수 있어
틱이나 불안, 수면장애가 있는 주로 성인 환자에게 더 적합하다고 하셨다.


그 당시 나는 수험생활을 준비 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선생님은 두 약을 모두 절반 용량으로 처방해주셨다.

콘서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트라테라는 잠들기 전에 한 알.

이렇게 복용해보되,
식욕 저하나 수면 장애 같은 부작용이 느껴질 경우에는
즉시 다시 병원을 방문하라고 당부하셨다.

선생님은 2주치의 약을 건네시며,

2주 뒤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다.


‘단지 내가 게으른 게 아니었구나.’

‘남들보다 멍청한 것도 아니었구나.’

단지 내 뇌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뿐.

그리고
약물의 도움을 받아
그 방식에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약을 먹으면,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앞으로의 내 모습을
하나하나 잘 관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약을 처방받고 병원을 나서는 길,
기분은 한결 가벼워졌고

기대되는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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