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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은 왜 이럴까

정신건강의학과 예약까지

by 선옥

여자친구와의 이별 이후, 커다란 공허함이 찾아왔다.
당연하게 주고받던 아침 인사는 더 이상 없었고,
그날의 감정과 하루를 공유할 사람도 사라졌다.

내가 먼저 선택한 이별이었지만, 정작 나는 그 이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삶의 중심을 잃었고, 일조차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별의 여운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나는 나라는 사람의 ‘본질’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왜 나는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내가 그렇게 부족한 사람일까?

이별로 인한 상실감은 점차 우울감으로 번져갔고,
나는 이 감정을 더 이상 그냥 두어선 안 되겠다고 느꼈다.


나는 우선, 내가 느끼는 증상들과
평소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지적했던 ‘이상한’ 부분들을 검색해보았다.
그 결과 가장 많이 접하게 된 단어가 바로 ADHD였다.

ADHD관련 정보를 끊임없이 찾다 보니

전문의들의 공통된 조언은 하나였다.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병원에 내원해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라.”

요즘은 쇼츠나 릴스를 통해
누구나 "나는 집중이 안 돼", "나도 ADHD 아닐까?"라는 말을 쉽게 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 검사 결과, ADHD가 아닌 경우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라리 내가 ADHD였으면 하고 바랐다.
지금껏 나를 힘들게 했던 불안함, 어딘가 부족했던 사회성, 반복되는 실수들
그 모든 것에 이유가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그냥 내가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또다시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할까?


십여 년 전만 해도, ‘정신과’라는 단어는
‘미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오해에 휩싸여 있었다.
2012년 2월 3일, 이명박 정부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의료법상 '정신과'의 명칭을 ‘정신건강의학과’로 공식 변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낙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은 범죄자, 위험인물, 혹은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과거에는 정신과 진료기록으로 인해 군 입대, 취업, 보험 가입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최근 들어 사회적인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2024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인식은
2022년 83.2%에서 2024년 90.5%로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더 위험하다"는 인식도 64.6%나 유지되고 있으며,
정신질환자 중 실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고작 12%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20%), 미국(43%)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그만큼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는 사람을 주변에서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가면 어떤 검사를 받는지,
상담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약을 처방받으면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막막했다.

그래서 우선, 집 근처 병원부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서 1시간 거리의 병원들까지 포함해
모든 곳에서 돌아온 답은 같았다.

“예약이 다 차서 진료는 한 달 뒤에나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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