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에 담긴 식혜를 탈탈 털어 넣고 식사를 마치자 ICU 간호사 선생님께서 머리를 감겨주고 양치와 세안을 해주었다.
더 이상 내 기도 속에 삽입된 관으로 인해 입을 벌리지 않아도 되었고 묶여있던 두 손은 자유롭게 움직여하고 싶은 말을 목소리 내어 말하고 내 손으로 내 몸을 만질 수 있다는 아주 사소하고도 커다란 자유가 얼마나 좋던지, 깨끗해진 머리와 더불어 중환자실의 공기마저 상쾌하게 느껴졌다. 앳되어 보이는 아이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모습이 마음에 더 쓰였을까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께서는 내가 잠을 잘 자는지 눈을 뜨고 있는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등 내 상태에 대해서 바깥 중환자 대기실에 계신 어머니께 수시로 전달해 주었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 머리를 사과머리로 묶어 주며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사서 일반병동으로 면회를 와 주겠다 손가락 약속까지 해주었다. 정말 많은 분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의료진을 포함해 나를 걱정해 주고 기도해 준 분들 덕분에 중환자실에서 잘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길병원 암센터 8층 혈액종양내과 4인실로 전실하였고 그곳에서 처음 마주친 환자, 보호자는 내 침실 건너편에 있던 나보다 두 살 어린 친구와 그 친구의 어머니였다. 중환자실에서 보다야 낫겠지만 부모님도 병원생활은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었을 텐데 앞에 계신 어머님께서 부모님께 병원 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용품이나 침대 시트 교체하는 방법부터 보호자 샤워실 이용방법, 식사 신청까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내 머릿속에는 '내가 언제쯤 퇴원을 하지? 퇴원하면 1년 유급을 하고 다시 공부를 하면 될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부모님은 앞으로의 병원생활에 막막했기에 같은 보호자 입장에서 위로해주고 알려주던 그 따뜻한 말과 행동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하신다.
부모님은 병원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거나 집에서 가져와 병실에 짐을 풀며 병동 시스템에 대해 한창 듣고 있었고 나는 침대에 앉아 앞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있던 암환자의 모습과 다르게 그 친구는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햄스터가 음식을 가득 머금고 있는 것처럼 얼굴은 통통하다 못해 빵빵 했다. 간호사 한분이 들어와 그 친구의 체중을 물어보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52kg(기억을 더듬어 대략적인 체중이다.)이라고 말하자 아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마 나 50kg 나왔짆아!'라고 대답하였다. 병원 복을 입어 몸은 보이지 않았지만 겉으로 보기에 70kg은 훨씬 되어 보일 거 같은 얼굴인데 무슨 50kg밖에 되지 않는담 말도 안 돼 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병실 내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금요일 밤 응급실에 들어온 이후, 거울을 본 적이 없어 처음으로 내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은 내 앞자리 그 친구와 별 다를 게 없었다. 안 그래도 젖살이 있어 통통한 내 볼과 작은 내 코는 터질 것처럼 빵빵해진 볼에 묻힌 코는 더욱 작아 보였다. 사춘기 시절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인데 변한 내 모습에 충격을 먹고 부모님께 ' 볼에 살이 쪄서 코가 잡히지 않아요."라고 말하였지만 부모님은 그저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