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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Apr 17. 2024

오늘은 배가 불러서

 오전 10시 반 무렵이면 종종 찾아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다. 같이 복지관 수업을 들은 후 오시는 듯했다. 오시면 늘 주문하는 건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하나. 그리고 컵 하나를 더 받아서 두 분이서 알콩달콩 나눠드셨다. 되도록 1인 1음료를 권장하고 있지만, 이렇게 한 사람 당 한 메뉴를 시켜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했다.


 어느 날은 다른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네 분이 함께 오셨다. 그리고는 새로 오신 할머니가 "오늘은 배가 불러서 그런데 조금만 주문해도 될까요? 다음엔 꼭 많이 주문할게."라고 말씀하셨다. 마침 다른 손님도 안 계셔서 자리가 넉넉했기 때문에 그러셔도 된다고 대신 다음엔 꼭 많이 주문해 달라고 말하며 주문을 받았다.


 음료 2잔에 케이크 하나. 그래도 한 사람만 주문하지 않은 것이니 그럴 수 있지 생각했다. 그런데 뜨거운 물 한 잔을 달라고 하시더니 비치해 둔 물컵을 가지고 와 커피를 세 잔으로 나누어드셨다. '커피가 진하고 양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 자주 오시기도 하고 다음엔 더 많이 주문한다고 하셨으니 괜찮아.' 생각하며 지나갔다.


 며칠 뒤, 네 분은 또다시 찾아오셨다. 오늘은 약속한 대로 많이 주문해 주시려나 했는데, 주문은 지난번과 같았다. 케이크 하나와 음료 두 잔. 메뉴를 가져다 드리니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할아버지 한 분. 전화를 마치자 책방으로 들어오시는 새로운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주문대를 들리지 않고 바로 친구들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으셨다.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은 지난번처럼 또 따뜻한 물 한 컵을 달라고 하셨다.


 "이거 나눠먹게 접시도 하나 챙겨줘요." 음료를 만들고 있던 나에게 할머니가 다시 와서 말씀하고 가셨다. 외부음식 반입 금지라는 말씀을 드리기도 전에 이미 손에 들려있던 에이스 봉지는 뜯겨있었다. 주문하신 음료와 디저트를 가져다 드리며, 접시는 따로 드릴 수 없다고 했다. 이미 뜯어버린 에이스를 드시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럼 이걸 어디에 나눠 먹으라고. 아, 여기 쟁반에 그냥 꺼내 먹으면 되겠다." 돌아서는 내 등 뒤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건 컵 일곱 개와 접시 하나. 그리고 여기저기 흩뿌려진 에이스 가루들과 봉지들. 분명 주문한 건 음료 두 잔과 케이크 하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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