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긴 육아의 시간 언저리에..

오래도 걸렸다.

나에게도 직업, 일이 생겼다.


연말부터 알아보고 준비한 일이 시작됐다.

올 3월12일 나는 사업자를 냈고, 속옷 매장을 시작하게 됐다.


10년간 오로지 육아와 살림에 시간을 다 했다.

그 시간동안 많이도 헤맸다.


내가 헤매며 보냈던 그 긴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다. 결혼 후 세 차례 이어달리기를 하듯 2016년, 2017년, 2019년 늘 숨가쁘게 새로운 시작과 함께 장거리달리기를 계속해서 했다. 장거리는 커녕 단거리도 뛰어보지 못한 내게 육아는 숨막히는 길고도 긴 레이스였다.

그 레이스에서는 나 혼자만 잘 달리면 되는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잘 해내고 싶었다. 늘 그랬듯 누구에게도(가까운 가족 내 엄마에게조차) 손내밀지 않고 혼자 해내어 나 혼자 다 했노라고, 누구 도움없이 아등바등대며 이렇게나 잘 키웠다고 떵떵거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왜냐면 나는 육아와 살림.. 집안일 외에는 나의 일이 없었고, 임신을 하며 반 권고사직(임신 후 일하기 어려운 상담 서비스직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사정을 봐주기 보다는 퇴사를 권했다)으로 경제활동이 없는 탓에 동갑내기인 남편의 경제활동으로 벌어오는 돈 앞에 자격지심과 무너진 자존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도 잘 나가고 싶었는데, 나도 제대로 시작선에서 연봉이 올라가고 직급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아쉬움 투성이었다.


그 아쉬움은 동갑내기 남편도 아직 철부지 서른이었기에 출산도 육아도 공감하지 못했고, 남편의 사회활동들과 인간관계로 갓난쟁이 육아초기에 잦은 다툼이 있었다. 그 잦은 다툼 속에서 서로 생채기내며 할퀴었는데, 남편은 지나치는 편이라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산후우울증이 더욱 심해졌고 반복된 출산으로 5년이란 시간동안 갓난아기를 돌보며 반복되면서 생긴 수면장애는 나를 더 우울하고 부정적이게 만들었다.

인간에게 잠은 정말 중요하다. 어떤2교대3교대도 육아 앞에 속수무책임을 엄마들은 안다.


반복되고 길어진 산후우울증은 우울증과 불안증을 키웠고, 나는 나로 서려는 마음과 사회에서 뒤쳐져 보잘 것 없어졌다는 마음이 늘 상충했다.


나를 나로 , 엄마로 인정할 수 없었다.


긴 레이스를 뛰는 동안 마음을 돌보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상처에 약을 발라주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어느 날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과도 일도 마른 손 안의 모래알처럼 부질없이 흩어졌고, 나는 그 때마다 모자른 나를 책하고 초라하게 여겼다.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늘 나랑 이게 맞나? 맞을까? 갈팡질팡.. 나는 뭘해야할까 고민하며 작년에는 요리자격증을 따기 위해 온 시간을 바쁘게 쪼개쓰며 학원에도 다니고, 같이 해보자는 사람들과 지원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내게 결과는 별로였다.

요리자격증을 땄고 지원사업도 마무리 됐지만, 내게 남은게 없는 것 같았다.


사람도 일도 내 능력치도 환경(일년의 반이상은 타지역에 나가있는 남편없이 한 10년을 혼자 아이들을 돌보던)도 한참 모자르다는 생각에 참 서글펐고, 초라했다.


나는 외동이다. 그래서 형제자매가 늘 부러웠다.

결혼하고 보니 더욱 그랬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하늘의 뜻인지 나에겐 세 아이가 생겼고, 아이들을 보면 잘 낳았다 싶다가도 대부분 외동인 엄마들을 보면 부러웠다. 아이 하나에도 시간이 많이 쓰이는데 나는 해도해도 아무리 분할해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아이들을 챙기고 돌보며 내가 무언갈 하기란 여전히 어려웠다.

뭘 하나 하더라도 여전히 밥을 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갖은 집안일 모두를 도맡아 해야했고, 나는 그게 너무 버거웠다.



그게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죄스럽고 미안했다. ..


돌이켜보면 모든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지만 내내 발버둥치며 무언갈 하러 다니던 내가 지금은 참 대견하다.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친정엄마에게 온전히 육아와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여전히 운동선수로 긴 합숙이 시작됐기 때문에 도움없이는 나는 벌려놓은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처음 일을 벌려놓은 걸 들은 엄마는 반대하셨지만, 우리집에 와 주무시면서 아이들을 케어해주신다. 많이 다투던 모녀관계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다.


감사하게도 내가 아이들과 집안일로부터 한발자국, 아니 열발자국정도는 뒤로 물러나 내 일에 힘쓰도록 도와주시니 좋을 수 밖에..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 매장에 나가 12시간이고 15시간이고 일을 하는게 편하다고 느낀다. 잠이 모자라도 괜찮았다.


준비하는 내내 무급으로 일을 배울 것을 자초해 집안일을 다 하면서 매장에 매일 나가 일을 하고 밤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3월 . 나의 사업장으로 일이 시작됐다.


나의 일.

나의 공간.


아직 갚아야 할 빚도 해결되지 않은 자본도 태산이지만, 열심히 해나갈거다.


10년이라는 긴 육아의 쳇바퀴같은 레이스를 뛰며 터득했나보다.


그냥 하면 된다고.


그냥 하다보면 다 된다.

어느정도는 시간이 해결해주고, 또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된다고.



또 다른 장거리 레이스가 시작됐다.

불경기불경기 이런 불경기에 시작했지만, 해나갈 것이다. 예감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안 좋을 때 시작하면 좋을 날이 꼭 올 거라는..


여러가지로 어렵지만 즐겁다.


힘이 난다.



나는 매일 속옷 브랜드 매장으로 출근한다. 화장실이 내부에 없어 공영화장실에 가야하기 때문에 소변도 참고 참다 매장을 잠그고 가고, 식사도 하루 한끼 먹는 날이 부지기수지만 괜찮다.

밤늦게 퇴근하지만 괜찮다.



'잘 되기만 하면 돼.'

'조금씩 쌓이기만 하면 돼.'

이러면서!


오래도 걸렸다. 내 이름 석자로 일을 하는데에.

내이름으로 시작하는데 셀 수없는 돈이 필요했고, 다 빚이지만 내가 다 만들어 낼 거다.


나는 전보단 꽤 단단해졌고, 또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니까.


할 수 있다.


나이만 먹는 어른말고 진짜 어른이 되는게 나의 목표인데, 되어가는 중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고 또 별이 뜬다.


매일 다른 하늘 아래에 나도 매일 달라진다.



40부터 다른 삶이 시작된다고 나는 40부터 대박이라고 아주 노래를 불렀는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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