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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Jul 10. 2024

내가 꿈꾸는 세상


 올해도 밸런타인데이에 우리 집에는 한 보따리의 초콜릿이 배달되었다. 딸들이 아빠에게 보낸 것이다.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한 초콜릿, 일부러 잘 사지는 않지만 참 좋아하는 간식이다. 그런데 초콜릿이 반갑지 않다. 초콜릿을 보내지 말라고 이미 말을 했건만, 딸들은 밸런타인데이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얼마 전에 TV에서 한 영상을 보았다. 까마귀처럼 까맣고 가느다란 발목을 가진 아이들이 농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무거운 칼이나 전기톱을 들고 높은 나무를 오르내리며 온종일 중노동을 한다. 초콜릿 원료가 되는 카카오는 생산 농장이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 최대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에 어린이 노동자가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은 터무니없이 싼 값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구타까지 당한다. 카카오 농장의 심각한 수준의 불법 아동노동 착취는 ILO에서도 인지하고 개선하려고 하나 코로나 시기에 아동노동은 더욱 늘었다고 한다.


  카카오 농장의 비참한 노동 현장을 보면서 한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의 한 남자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날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손과 발이 잘려 죽은 다섯 살 난 딸의 손과 발을 아버지가 보고 있는 사진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 있었던 일이 아니다. 19C 말에서 20C 초까지 아프리카 땅 콩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가 홀로코스트에서 히틀러가 죽인 600만 명의 유대인보다 훨씬 많은, 천만 명의 콩고인을 죽였다. 그는 콩고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원주민들을 착취해 벨기에의 부를 이룩했다. 강제로 재배하게 한 카카오는 사실상 공짜로 무더기로 쓸어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벨기에의 초콜릿 가공 산업은 카카오 수탈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서구 제국주의 유럽의 유색인종에 대한 착취와 수탈, 악행은 도저히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악마적이다. 왜 이렇게 서구는 유색인종의 목숨을 짐승보다 못하게 다루었을까? 서구의 제국주의적 착취를 비난했으며, 노예무역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철학자 칸트까지도 한때는 아프리카 흑인에게는 본래 어리석음을 넘어서는 그 어떤 감정도 없으며 그들은 매질로 다루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인종차별적인 편견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토마스 모어는 초기 자본주의 병폐를 몸소 체험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인 『유토피아』를 썼는데 그가 그리는 이상향은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였다.


  힘이 있으면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억압하고 지배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세상이다. 힘없는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고 버려지는 슬픔은 백 년 전에도 이 시대에도, 어디에서나 있다. 부모에게 학대받다가 온몸이 멍투성이로 목숨까지 잃는 아이들이 있다.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이 있다.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현장에서 노동하다가 죽음에까지 이르는 노동자들이 있다. 학대로 우는 아이, 목숨을 끊는 청소년, 사고로 죽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이면 좋겠다. 힘없는 생명들의 슬픈 이야기가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울음, 슬픔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만큼 서러운 게 없을 테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서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면서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 속수무책 속에서 존재는 더욱 왜소해지지만 나는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다. 힘센 존재와 약한 존재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평화롭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은 힘없는 생명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생명에 대한 연민이 이 세상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어도 그게 답인 것 같다.


  초콜릿을 먹으면서 아무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카카오 농장에서 노예처럼 노동하는 어린아이들이 사라지고, 공정한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생산한 초콜릿을 먹고 싶다.



        -  그린에세이2024년 7,8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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