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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Apr 24. 2024

걸어가는 사람

두 장의 사진

                 

  죽음을 항상 기억하며 사는 사람의 죽기 전의 사진은 특별한 데가 있다. 문을 향해 뚜벅뚜벅,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   

   

  한 남자가 혼자 비를 맞으면서 길을 건너고 있다. 그가 우의 대용으로 입고 있는 코트는 머리를 덮기 위해서 훌쩍 들어 올려진 상태이다. 빗속을 걸어가는 남자, 그는 어디로 가는가. 이 한 장의 사진은 조각가 자코메티가 세상을 떠나기 9개월 전 생시의 모습을 촬영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작품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주일 뒤에 파리 마치지에 실렸다. 우산 하나 쓰지 않고 외투로 비를 피하며, 정면을 응시하며 걷는 모습에서 ‘영혼’에서부터 ‘육 적인’ 것까지 해탈해 버린 듯한 구도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여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전쟁이 남긴 폐허와 상흔, 허무와 불안을 딛고 인간 본연의 실존과 마주하며 뚜벅뚜벅 걷는 인간 형상, 더 이상 걷어낼 게 없는, 철사처럼 가늘고 긴 인간 형상을 만들어 <걸어가는 사람>을 조각한 자코메티는 말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젊은 시절 사람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던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이 너무 허망하고 덧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인간이 산다’는 의미와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평생을 통해 성찰한 인생과 삶에 대한 해석, <걸어가는 사람>처럼 부스러질 것 같은 연약함을 가졌지만, 부스러지지 않게 단단히 굳은 의지를 다져서 미래를 향해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기에 이 순간이 보석처럼 소중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일 거다. 그에게는 영원히 살아있는 조각을 만드는 것이 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죽음’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자코메티 작품 전시회장에서 그의 작품 못지않게 구도자적인 모습의 사진이 크게 마음에 와닿았다.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이어령 선생의 모습이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자택에서 두 손을 탁자에 올린 채 깍지 끼고 의자에 앉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품위 있게 빗어 넘긴 백발, 호기심의 우물이 찰랑대는 검은 눈동자, 좀 살이 찐 듯했던 예전의 얼굴이 아니다. 평소의 선생 얼굴과 다른, 골상이 다 드러난 바짝 마른 모습이다. 이렇게 마른 모습,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놀라게 될 듯한 사진이다. 나라면 보여주고 싶지 않을 얼굴일 텐데 그는 전문사진사를 불러 사진으로 남겼다. 빼빼 마른 얼굴이지만 그의 눈빛은 형형하다. 그리고 평소의 그답게 여전히 말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나에게 깊은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평생 죽음을 기억하며 축제 속에 죽음이 있고 가장 찬란한 대낮 속에 죽음이 있다며 메멘토 모리를 평생의 화두로 사셨던 분이다. 대부분 사람은 했던 말과 죽음을 앞두고 하는 행동과는 다르다. 그러나 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정말로 굳은 의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암 선고를 받았지만, 하루 6시간 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보내기보다 그 시간에 글을 더 쓰겠다고 하였다. 젊은 시절 지성으로 한국인의 정신을 이끌었다면 말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깨달음으로 우리를 숙고하게 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을 때도 또 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꽃이 보인다. 암 선고를 받고 내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역설적으로 가장 농밀하게 산다.”라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우물을 파는 자라고 한 선생은 단지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파지는 않았고 미지에 대한 목마름, 도전이었다고 한다. 이제 그 마지막 우물인 죽음에 도달한 것이고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모든 게 선물이었다고 말한다. 인생은 선물이었다는 선생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크게 와닿는다.


  내가 이어령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이 학과 수업은 하지 않고 우리에게 아주 좋은 글이 있다며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는 수필 한 편을 낭송해 주었다. 그해 발표된 수필집을 읽고 국어 선생님은 너무 감동을 받아 무척 흥분상태였는데 그 감동이 우리에게도 오롯이 전해졌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과, 다시 어둡고 색채가 죽어 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고 하였다. 이어령 선생이 젊은 시절에 쓴 이 글은 죽음을 말하고 있다.


  내가 다닌 대학이 선생이 재직한 곳이라 같은 과는 아니지만 나는 선생의 글을 읽고 강연을 찾아 듣곤 했다. 선생은 우리와 같이 호흡하며 같은 시대를 살며 무딘 감성을 깨웠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선생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더 큰 감동이었다. ‘죽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봐야겠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또렷하게 30분 정도 응시하면서 ‘죽음마저 관찰하는 듯했다.’ 한다. 손주들과 영상통화 후 가족예배를 드렸고 그 이후 숨이 점점 옅어지면서 하늘로 떠났다. 선생은 먼저 세상을 떠난, 그가 사랑했던 딸을 만나러, 딸이 있는 세계로 한 발을 씩씩하게 내딛고 걸어가신 것이다.             

                        

《태사문학》 제3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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