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부터 혼자서 뽀로로 노래를 부르며 잘 놀고 있던 네 살 된 손자 준이가 느닷없이 나에게 묻는다.
"…, 할머니는 작가가 되고 싶어."
" 작가? 그게 뭔데요 할머니."
"음, 우리 준이가 재미있게 보는 동화나 잘 부르는 동요 같은 것, 글 짓는 사람이지."
"할머니도 이렇게 노래해 봐요. '나는 나는 커서 훌륭한 작가가 될 테야/ 야 정말 신나겠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어/뽀롱뽀롱 야!'"
네 살 아이와 같이 노래하고, 같이 춤추고, 같이 걷고, 같이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미국에서 2년 넘게 살다가 잠시 우리 집에 다니러 온 아이는 미국 가기 전 아기 때 돌봐 준 기억이 남아있는지 나와 놀기를 좋아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반드시 차를 타야 하는 곳에서 살다가, 집 바로 뒤에 놀이터가 있고 걸어서 마트도 가고 문방구, 서점도 갈 수 있는 할머니 집을 아이는 무척 좋아한다. 이 삼 십분 걷는 가까운 곳에는 우리는 손잡고 걸어 다닌다. 모든 것이 경이로운 세상을 사는 아이는 길을 가면서도 그냥 걷는 법이 없다. 개미도, 작은 깃털도, 나뭇잎도 잘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준이가 붉게 물든 나뭇잎 하나를 줍는다.
"할머니, 얘는 왜 이렇게 빨개요? 다른 친구들은 아직 저렇게 초록인데…."
아직 다른 잎들은 초록인 채 나무에 달려 있는데 무엇이 급했는지 그 나뭇잎은 벌써 단풍이 들어 땅에 떨어져 있다.
"글쎄, 왜 그럴까?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곰곰 생각하다 나는 아이를 위해 동시가 쓰고 싶어졌다. 성장해서 언젠가는 할머니의 수필을 읽겠지만 한참 훗날의 일이다. 할머니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노래했으니 아이가 좋아할 만한 글을 지어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 <저요, 저요>는 그래서 지었다.
길에 단풍잎 하나 떨어져 있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을 줍습니다.
친구들은 아직 초록인 채 나무에 달려있는데
얘는 왜 이렇게 빨리 물들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단풍은 나와 닮은 꼴입니다.
선생님이 우리 반 친구들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나 질문을 할 때
나는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저요, 저요!" 합니다.
하나님이 초록 나무를 보며
"누구를 제일 먼저 붉게 칠해줄까?" 하고 물었을 때
얘가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었나 봐요.
"저요, 저요!" 하며.
- <저요, 저요>
분수를 보면 고래가 밑에서 물을 뿜는 것 같고, 해가 바다로 지는 것을 보면서 '해님이 더워서 수영하러 갔나 보다'라고 말하는 아이와 같이 보는 세상은 참 새롭다. 혼자 양말을 신다가 자신의 발을 유심히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