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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Aug 07. 2024

옥수수 밭



  초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한 소녀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소녀가 사는 곳은 미국의 대평원,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밭뿐이고 주위엔 다른 집도 친구도 없었다. 그곳을 지나가는 기차의 기관사와 소녀의 우정을 그린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는데 나는 곡식이 자라는 끝없는 들판과 기적을 울리며 그 속을 달리는 기차와 손을 흔드는 소녀를 상상하며 동화의 풍경 속으로 푹 빠져들곤 했다.


 큰 딸 가족이 공부를 하기 위해 간 곳은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한 작은 도시이다. 그곳에 집을 구했다는 딸의 문자가 왔다.


  "엄마, 집 앞에 옥수수 밭이 있어요. 차를 타고 나가면 끝없이 옥수수 밭이 이어지는 대평원입니다."


  그 문자를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리던 대평원과 그 소녀가 불현듯 되살아났다.


  시카고 공항에서 딸이 사는 샴페인이라는 도시까지 3시간 가까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길 양편에 펼쳐진 평원을 보았다. 딸이 말한 대로 눈에 보이는 풍경은 지평선 저 멀리까지 산은커녕 언덕도 보이지 않는 들판의 연속이었다. 옥수수를 주로 재배하는 농장 풍경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딸네서 한 달 가까이 지내면서 세계 최대농경지대인 미국 중서부 주(州)들을 여행했다. 수확기가 아니라서 황금들녘은 아니었지만 지평선까지 이어진 광대한 초록물결을, 노랗게 핀 유채꽃 바다를 보았다. 때로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넓고 광활한 하늘 아래 밑줄이 그어진 것 같은 검은색의 대지를 보기도 하고, 끝을 가늠할 수 없이 드넓은 들판에 석양이 펼쳐진 장관을 보면서 숨이 막히기도 했다. 비옥한 토지와 농사짓기 좋은 기후를 갖춘, 그야말로 축복의 땅이었다.


  끝없이 넘실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요에 감탄하고 있을 때 문득 딸이 말했다.


  "엄마, 그런데 저기 저 밭에서 나는 옥수수는 사람이 먹지 못한데요. 거의모두 동물의 사료나 에탄올 재료로 쓰인다고 해요."


  농장 대부분이 더 많은 옥수수를 생산하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한 종자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유전자변형 옥수수! 그것으로 사육되는 소! 갑자기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과학 기술의 발전 등 얼핏 보았던 뉴스거리가 머리에 떠오르면서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들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축복의 땅을, 이 풍요로운 자연을 사람들이 망가뜨리고 있구나.' 한숨이 나왔다. 공장식 사육장에서 비참하게 사는 소나 닭들도 떠올랐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풀을 먹고 되새김질을 해야 되는 소가 옥수수 사료를 먹고 갇혀 있으니 살은 빨리 찌지만 병이 날 수밖에 없다. 농장주들은 소가 병들지 않게 하려고 항생제를 먹인다. 우리는 그 소의 고기를 먹는다. 옥수수는 동물과 동물들이 먹는 작물을 땅에서 몰아냈다. 아득히 먼 옛날 처음 옥수수를 키웠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씨 중의 씨, 거룩한 어머니'라고 칭송했던 그 옥수수가 어쩌다 사람에게나 동물들에게 유익을 주기보다 재앙을 더 많이 주는 작물이 되어버린 것일까.


  과학자들은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해 밤새워 연구를 했을 것이다.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씨앗을 만들고 그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러나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이 생태계에 어떤 파급을 가져오고 인류를 병들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거대 기업이 된 종자회사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닐까?


  식량생산량은 늘고 있지만 제3세계의 굶주리는 인구는 역설적으로 더 늘어나고 있단다. 제초제나 해충에 끄떡없이 살아남는 괴물 같은 먹거리를 만들어내면서, 멈출 줄 모르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우리 인간이야말로 점점 괴물로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보다 경제가 우선인 세상이 두렵다.

 

  옥수수를 먹고 자란 소의 고기를 생각 없이 맛있게 먹어 왔는데 그 입맛을 어떻게 바꾸고 먹는 양을 줄일 수 있을까, 채식보다 육식을 더 좋아하는 나는 딜레마에 빠진다.  

   

  딸이 삶은 옥수수를 그릇에 담아 왔다. 두 돌 지난 아기가 잘 먹는 간식이다. 달고 부드럽다. 딸은 유기농 옥수수라고 강조한다.


  나는 내가 본 그 넓은 옥수수 밭에서 사람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옥수수가 생산되고, 소들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꿈을 꾸어본다. 문득 옥수수 밭 어디선가 어릴 적 그 소녀가 사뿐사뿐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강원도 찰옥수수를 먹으며 기억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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