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드에서 온 소식

by 권민정

살아오면서 한 일 중에 잘못한 일, 할 필요도 없었던 일들도 많지만, 그때 그 일은 하길 잘했다는 일들도 더러 있다.


아프리카 차드에서 NGO 활동을 14년째 하고 있는 분의 문자를 받았다. 제법 긴 편지 형식의 글인데 거기에는 기쁨이 담뿍 담겨있었다. 차드는 수도 은자메나를 벗어나면 도로포장이 되어 있지 않고 도로사정이 아주 좋지 않아 오지마을을 가기가 쉽지 않다. 몇 년 만에 찾아가던 시골 마을 우물가에서 사람들이 펌프로 물을 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펌프에서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또 물통에 길어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찼다는 것이다. 우물가에 조그마한 팻말이 있어 보니 7년 전에 판 우물이었다. 거기에서 우리 가족 이름을 보고 반가워 문자 보낸다는 것이었다.


차드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다. 국토의 반이 사막인데 점점 더 사막화되어 가고 아프리카에서도 두 번째로 큰 차드 호수가 있지만 지금은 물이 증발해 1/10로 줄었다. 지구온난화 탓이다. 아프리카의 물 문제는 심각하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1-2시간씩 걸어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데 그 물이 불결하여 여러 병의 원인이 된다. 또 오고 가는 길에 성폭행 등 험한 일도 많이 당한다. 차드의 시골 마을에는 우물이 필요한 곳이 많다. 마을에 우물을 파려면 기계로 땅 속 깊이 파 내려가야 해서 경비가 많이 든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엄두를 낼 수가 없다.


한동안 아프리카 우물 파기 사업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였던 때가 있었다. 우물 한 개를 파면 10년 동안 마을 사람들이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 개 파는데 300만 원 드는데 적지 않은 돈이지만 그 돈이면 어린아이들이 물 항아리를 이고 한두 시간씩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고, 더러운 웅덩이 물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만한 돈이 그렇게 쓰여진다면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사업에 동참하면서도 10년 동안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는 반신반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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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도 그 우물 덕에 마을 사람들이 물 걱정 없이 사는 것을 보고 기뻤던 것이다. 그 문자를 받고 나도 무척 기뻤다. 처음 팠을 때와 같이 깨끗한 물을 먹고 있다니 우물 관리를 잘 해준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아프리카 소식을 듣고 나니 그곳이 그리워졌다. 우리 집에는 나무로 만든 아프리카 지도가 있다. 나라 별로 색칠을 하여 예쁘게 만든 장식품이다.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볼 때마다 선물한 차드 사람들을 생각하며 심각한 기아상태가 호전되기를, 높은 영유아 사망률이 개선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차드는 아프리카의 심장이다. 위로는 리비아, 왼쪽에는 니제르와 카메론, 아래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오른쪽으로는 수단이 있다. 아프리카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해 있지만 오랜 내전과 독재정치로 고통받고 있는 이 나라를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한다.


영화 <라이온 킹>에서 또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본 이후 나는 그곳에 꼭 한번 가고 싶었다.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라이온 킹>의 첫 장면, 저 멀리 지평선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며 야생의 부르짖음과 함께 ‘Circle of Life’ 노래가 들려온다. 또 <아웃 오브 아프리카> 속 아프리카의 초원이 보이고 모차르트의 곡 클라리넷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낙타를 타고 사하라사막을 걷고 싶었고 그 멋진 모래언덕도 보고 싶었다.


두 번째 우물을 팔 때였다. 해마다 방학 때면 그곳에 가는 교수 한분이 같이 갈 것을 권유했다. 한번 가보면 우물 파는 일에 더 마음이 갈 거라는 것이다. 차드에 흔한 수숫대로 숯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는 분이었다. 차드에는 물 다음으로 연료문제가 심각하다. 같이 가자는 권유에 나는 망설였다. 차드의 절반이 사하라사막이니 그곳에 가면 내가 꿈꾸는 사막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캄캄한 사막에서 별을 볼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힘든 일을 하러 가는 그 분과 달리 사막 구경을 먼저 생각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비행기 값에다 좀 더 모으면 내가 꼭 하고 싶은 동물들을 위한 우물도 팔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물들이 물이 없어서 물을 찾아 헤매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였다.


차드에는 우리나라 배우 박용하가 만든 학교가 있다. 박용하가 죽은 후 또 다른 연예인이 큰돈을 기부하며 그 일을 이어서 하고 있다. 그들은 어린아이에게서 희망을 보고 그 일을 한다. 그 돈이 씨알이 되어 나는 5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기를 바란다.


어느 날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가 병원 복도에서 병원 역사가 적힌 글과 사진들을 본 적이 있다. 처음 시작은 참으로 미약했다.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병원은 그 후 미국의 독지가 세브란스 씨의 도움으로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 기초를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불현듯 들었던 생각은 세브란스 씨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에 병원을 세울 돈을 기부했을 때 과연 지금과 같은 병원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안에 선한 천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을 때 누군가 추운 곳에서 울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런 선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요즘 들어 많이 생겼다. 누군가를 도우면서도 이것이 혹시 어리석게도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선인을 가장한 사악한 인간의 소식을 들을 때는 더욱 냉담한 마음이 되어 남을 도운다는 것이 쉽지 않다.


차드에서 온 소식은 참 기쁜 소식이었다. 사람에 대해 희망을 다시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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