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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Aug 10. 2024

초라해도 괜찮아, 버티고 있다면 이기고 있는 거야!

호구여도 괜찮아 #30

모든 것의 시작, 베이징으로


베이징으로 향하는 출장길에 오르며, 머릿속엔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중국은 내게 언제나 도전이었다. 베이징에서의 첫 입학식, 하얼빈에서의 혼란스러웠던 편입, 칭다오에서 마주한 좌절, 그리고 난창에서의 끈질긴 도전까지,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겪어온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다시, 그 모든 시작의 땅인 베이징에 발을 디뎠다.


베이징 공항을 나서는 순간, 마치 건식 사우나에 들어선 듯, 타오르는 태양이 내 피부를 뜨겁게 달굴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의 베이징은 예상과 달랐다. 습기 머금은 공기가 마치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듯 코끝을 간질이며 나를 감쌌다. 예전엔 분명하게 구분됐던 베이징의 건조한 더위와 남방의 습한 더위가 이제는 서로 뒤섞여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베이징도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처럼 많이 변했나 보다.


현지 법인에서 준비해 준 차를 타고 베이징 시내로 들어가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며 빠르게 지나가는 베이징 시내의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지난날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유학 시절의 기억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되살아 나며, 기분 좋은 추억 나를 잠시 설레게 했다. 그 시절의 베이징은 나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고, 때로는 쓰디쓴 기억으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그 덕분에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 되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며, 마치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하듯 성장해 왔다. 하지만 아직 두 날개 중 한쪽이 작아서 제대로 날지 못하는 나비처럼, 여전히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아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사회 초년생에게 냉혹한 현실


세상은 나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이십 대 후반부터 사십 대 초반까지, 수 년의 시간은  서러웠으며 억울고 초라다. 중국에서 유학을 했다는 이유로, 도피 유학생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마주해야 했고, 변변치 못한 회사를 다닌다는 생각에 부모님과 아내에게 늘 미안했다. 때로는 권모술수를 앞세우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서라도 일을 배워야 했다. 


이 사회의 높은 진입 장벽에 가로막혀 을 잃고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초라하고 루한 모습을 아내에게 보일 수 없어, 늦은 밤 터벅터벅 길거리를 헤매다가, 억지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을 때 집으로 돌아갔다. 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일들도 결과가 따라와 주지 않고, 대학 졸업하고 중소기업을 다녔다는 이유, 수십 번의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다. 



도저히 나 자신을 증명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장 회사 삼십 대전략기획팀장이 되었다. 그러나 십 년을 넘는 노력으로 도착한 타이타닉의 조타실에서는 평생 마주한 적 없는 해적들을 만나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동안 자세히 표현할 수 없었지만 전 직장은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인 KBS, MBC, JTBC 등에서 '타이타닉의 침몰' 사건으로 요하게 보도되었다. 


영화 '타이타닉'은 어느새 '캐리비안 해적'으로 장르와 배우들이 바뀌었고, 나는 해적선 조타실 구석에서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목숨을 보전해야 했다. 내가 젊음을 받혔던 타이타닉 호는, 결국 상장 7년 만에 상폐되는 파국을 맞았고, 주주들을 포함한 직원들 모두 유무형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다.


'난 무엇을 해도 안 되는 놈이구나'

라는 생각이 사실은 수백 번 들었, 세상이 원망스러웠으며, 최선을 다한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십 년을 넘게 땅속에서 기다린 매미처럼, 나에게도 하늘로 날아오를 기회가 찾아왔다. 비록 마흔이 넘은 지금, 직장인으로서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대부분 이루었고, 순수했던 젊은 시절의 열정도 거의 다 바닥났지만, 나에게는 매미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있었다.


매미는 땅속에서 꿈꿨던 하늘을 향해 반드시 날아올라야 하고,

있는 힘껏 울어 자신의 목소리를 우렁차게 메아리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나에게 작은 매미가 되어 이렇게 외치고 싶다.


"초라해도 괜찮아!

지금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면, 이미 이기고 있는 거야!"





작은 촛불하나


호구처럼 무릎꿇어야 했고,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굽실대야 했으며,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 때마다 절망감을 마음속 깊이 감춰야 다. 가장으로서 오늘을 온전히 살아기 위해서는, 나의 가치관과 인성 그리고 편안함이 우선이 될 수 없었다. 


이른 새벽 출근하고 늦은 저녁 들어오는 삶이 일상이 되고, 몇 달을 중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더라도, 아내에게 한 푼이라도 더 보낼 때의 뿌듯함으로 십수 년을 살았다.


호랑이 입 속(호구)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도, 바둑의 외통수(호구)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더라도, 봉(호구)이나 밥(호구) 같은 존재가 되어서라도 오늘 하루를 버텨내는 삶.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록 마흔이 넘은 지금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야 하며, 늦은 저녁 고객 접대를 마치고 새벽에 일어나서 회의록을 정리할 때는 삶이 버겁지만, 전쟁터 같은 이곳이 내가 살아가는 곳이며, 지금의 이 시간이 내가 사랑해야 할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렇게 삶의 무게를 직접 어깨에 짊어져본 후에야,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작은 촛불이 되어,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차갑게 식은 마음에 잠시라도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오뚝이는 밑을 무겁게 하여 아무렇게나 굴려도 오뚝오뚝하고 일어선다. 우리가 오뚝이처럼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살면서 겪었던 서러움과 실패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아, 오뚝이 밑의 중심추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우리는 오늘의 실패로 눈물 흘리지만, 그 실패는 내일의 우리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렇기에 제 나는 실수하고 실패했던 어제의 나를 용서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다.




집에 돌아왔다.


저녁 여덟 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스는 기다렸다는 듯 둘러 출발다. 아마 기사님도 집에 있는 자식들 생각에 마음이 급하셨겠지. 한 달이나 중국에 있었고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으며, 새벽 여섯 시에 출발해서 저녁 아홉 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으니, 강행군이었던 이번 출장 일정을 잘 이겨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그렇기에 오늘은  돌아오는 발걸음이 특히 가볍다.


'삑삑 삑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마자 '후다다닥' 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책을 읽다가 아빠를 보려고 달려오는 소리다. 아들은 문을 활짝 열고는 내 앞에서 쭈그려 앉아, 혓바닥을 내밀고 강아지 흉내를 내며 빙글빙글 돈다.


나는 얼른 신발을 벗어던지고 아들을 꼭 안아준다. "반겨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시간이 흘러, 늦은 저녁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새근새근 잠든 천사 같은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진다.


나에게는 작은 행운들과 깊은 행복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는 그 행과 행이 나에게만 머무르지 않도록, 모든 이에게 조금씩 나누어 줘야겠다.









그동안 '호구여도 괜찮아'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기획한 일이 한 권의 책로 탄생하기까지,

부족한 글 솜씨를 만회하기 위해 수백 번을 다시 쓰고 수정했습니다.


호구여도 괜찮아의 구상 기획


글을 쓸 수 있게 지원하고 응원해 준 가족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시며, 댓글로 공감해 주신 독자분들,

그리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브런치 스토리까지...

저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또 많은 분들과 공감할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또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고 로하게 되어서 행복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 가정에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Liu 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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