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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l 31. 2024

대기업 이직 후 2년.. 비 맞아도 괜찮아

호구여도 괜찮아 #29

장대비가 쏟아진다.


평소부터 가지고 싶었던 자전거를 중고로 6만 원을 주고 거래를 하게 됐다. 집에 자전거를 타고 가려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서, 눈앞을 가릴 정도로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로 옆에 위치한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동네의 작은 카페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그 카페는 마치 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카페 앞에 다다르자, 꼬리를 흔들며 나를 경계하는 골든 트리버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카페에 들어가려고 하니, 큰 소리로 '컹컹'하고 짖는다. 나를 보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것은, 본래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트리버가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왔다. 낯선 이의 냄새를 맡으려는 듯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오는 트리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꼬리를 더욱 세차게 흔들며, 주인 곁으로 돌아가 나를 보며 앉았다.


나는 리는 비를 볼 수 있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에 더위를 식히니, 차가운 씁쓸함이 입안에 퍼지며 정신이 맑아졌다. 피아노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빗방울들이 마치 리듬을 타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트리버가 내 발밑으로 오더니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트리버의 눈빛을 보며, 순간의 평화를 느꼈다. 그리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았다. 그토록 바라던 대기업 마케팅 팀에 입사한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이제는 자가용 출근보다 회사의 출퇴근 버스가 익숙하고, 올해는 성과급이 작다는 불평을 자연스레 할 만큼,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십 년을 넘게 살아오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는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에도 공짜는 없다.


나는 지난 이 년 동안 시험 무대에 올라야 했고,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무게를 어깨 위에 짊어지버텨내야 했다. 또한 만화 원피스처럼 '진정한 동료'로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동안 나의 '겸손'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정함'이 유리하다는 것배웠다.


입사 후 몇 개월이 지나, Covid-19 중에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제2의 고향으로 아주 오랜만에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장기간 격리를 해야 했기에, 걱정반 기대반으로 출장길에 올랐다. 우리는 베이징의 변두리 모텔로 격리 장소를 배정받았고, 이 주 동안 정해진 식사와 함께 핵산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밥은 학생 때 먹던 그 맛이 아니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모텔에서 팔 굽혀 펴기도 하고, 밀린 넷플릭스도 보고 있으니 격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게 느껴지기도 했다.


베이징에서 삼 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못 갔던 학교도 가보고 학생 때와는 많이 달라진 베이징을 체감했다. 중국은 2000년부터 24년간 인당 GDP가 13배나 성장한 유일한 나라였다. 중국인 소득과 문화 수준은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었기에, 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한국에도 몇 개 없는 초고층 빌딩이 줄지어 있는 베이징을 보며, 내가 변한 만큼 베이징 또한 변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 수 있었다. 특히 사옥이 있는 베이징 중심부의 휘황찬란한 야경과 마천루 중국의 괄목상대한 발전을 느끼게 해 줬고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출장 복귀 후에도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추위가 계속 됐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은근한 텃세와, 관계의 진입 장벽에 가로막혀 혼자서 속앓이를 많이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하지만, 시련 앞에서 나는 한 없이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짊어진 짐을 올려둔 어깨가 너무 아파서,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을 때면,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왔던 장면을 떠올렸다. 드라마에서 펜싱 감독님은 펜싱을 그만두고 다른 것에 도전하려는 제자게 혹독한 조건을 내걸고, 그것을 만족시킬 때까지 펜싱을 계속하라고 한다. 제자는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감독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펜싱을 그만고, 새로운 도전 앞에 설 수 있게 되어 기뻐한다.


그때 감독님은 제자에게 말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中]

어떻게 얻어 냈는지 절대 잊지 마라.

힘들 때마다 생각해라, 그 시작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나도 그랬다. 어려웠던 시작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곳에 왔는지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세상 일 야속하게도 끝이 없다. 세상에 그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없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으며, 운 좋게 성취하더라, 그 뒤를 잇는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매일 이른 새벽에 별을 보며 나가고, 늦은 저녁 별을 보며 돌아온다. 특히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에는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할 엄두가 나지 않지만, 부족한 체력을 기르려면, 삼십 분이라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가족들이 모두 잠이 들면, 그제야 고개를 꾸벅꾸벅 거리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 넘었고, 비록 글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내일을 위해서 잠자리로 들어 한다.


사는 것이 너무 정신없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히 답을 알지 못한다. 그저 이렇게 열심히 살아나가는 것이 아내에게, 아들에게, 부모님께, 그리고 이제는 하늘에 있는 친구에게, 언젠쉴 새 없이 떠들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하늘에서 비가 그쳤다.


어느새, 장대 같던 비는 그치고 해가 뜨고 있다.


유학을 하며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살던 개미집, 악마개가 쥐를 잡아먹던 회사, 연봉 수백 만원을 받지 못해 눈물짓던 시절, 유산을 하고 펑펑 울었던 신혼집의 작은 소파, 권모술수 부장의 해괴망측한 짓들, 그리고 타이타닉의 해적들까지 이제는 모두 지나간 일이 되었다.


장대 비는 비구름을 몰아내고 맑은 하늘을 만든다.

비가 그치고 구름 뒤로 해가 떴다. 주말 오후, 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비가 올지 모른다.

하늘에서 혹시 비가 다시 내리면  수 없겠지만, 옷이 좀 젖더라도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웅덩이가 있다면 피하고, 피할 수 없는 웅덩이는 속도를 낮춰서 건너야겠다.

집에는 아내와 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비를 맞아도 좋다. 돌아갈 곳이 있는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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