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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May 15. 2024

호구(虎口) 속의, 나와 당신

호구여도 괜찮아 #1

호구 속의, 나와 당신

호구,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른다.


새벽 여섯 시, 자명종이 울리면 나는 가족들이 깰까 봐 재빨리 일어나 휴대폰 알람을 끈다.

출근 시간이다. 아침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이른 시각, 출근 준비는 20분이면 끝난다. 집을 나서기 전, 깊이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갈까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문을 여는 소리에 아이가 깰까 걱정되어 발걸음을 돌려 집을 나선다.


오늘도 어김없이 슬리퍼를 신은 학생이 같은 시간, 같은 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탄다. 학생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허겁지겁 양말을 신기 시작한다. 왜 매일 이렇게 엘리베이터에서 양말을 신는 걸까? 언젠가는 물어보고 싶지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는 벌써 1층에 닿는다.


아파트를 나서면 아직 새벽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어두운 길과 신선한 공기가 나를 반긴다.

새벽에 일어나긴 힘들어도, 이 순간만큼은 하루를 이르게 시작 것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맞은편 건물 꼭대기에 걸린 전자 시계가 내가 뛰지 않으면 늦는다고 재촉한다. '뛰자!' 숨이 가빠올 때쯤, 내일은 휴대폰 알람을 5분 더 일찍 맞추자고 다짐하지만, 정작 시계 시간을 앞당겨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삑!" 첫 버스에 사원증을 대고 자리에 앉으면, 나도 어엿한 대기업 직장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다음 버스는 5분 후에도 있지만, 성실한 직장인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나는 기어코 첫 차를 고집하게 된다.


오늘도 무사히 내 몫을 다하고, 가능하다면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사무실 책상 앞에 조용히 앉는다. 나는 국내 최대 기업에 40대에 입사한 늦깎이 경력 사원이다.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나는 참으로 많은 길을 돌고 돌고 또 돌아왔다.





(40대 + 문과 + 중국 유학생 + 편입 + 첫 직장 소기업) x 호구 속의 몸부림 = 국내 최대기업 합격

평범한 40대 문과 직장인. 특히, 이십여 년 전 황무지와 중국유학 나는, 특유의 호구 전략으로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 이 사회는 나에게 호구, 즉 범의 아가리와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 곁을 떠나 이십 대를 중국에서 보냈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15년이 넘었다. 이제는 불편함과 불안함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아이처럼 마음 편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15년의 시간 동안, 사회 속 '호랑이'를 자처하는 이들은 나를 흔들고, 가스라이팅으로 꼭두각시로 만들려 했다. 나는 그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고 기세등등한 척, 독한 척, 때로는 바보인 척하며 버텼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들은 나를 더욱 자극하며 즐거워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 굴에는 진짜 호랑이보다, 호랑이인 척하는 고양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그들은 몸과 그림자를 크게 부풀려 나를 위협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는 것을 말이다.


. 나는 이 사회에서 호구, 즉 '밥'이자 ' 봉'이었다.

사회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의 나는, 범굴 안에 들어온 진짜 호구였다. 누군가 이용하면 이용당했고, 도발 앞에선 무너졌으며, 가스라이팅에 눈물 흘리면서도, '열정 페이'가 청춘 드라마인 줄 알고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피아식별이 가능해지고, 호랑이와 고양이의 그림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나는 여전히 자발적 호구가 되어야만 했다.


모르는 일을 배우기 위해, 기술을 익히기 위해,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나는 사람들에게 '만만한 밥'이 되어 줘야 했다. '밥'이 되어야 일을 배울 수 있었고, '봉'이 되어야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상대편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싼 상황을 호구라고 한다. (이미지 출처 : MoonAh)


. 이 사회가 나에게 허락한 자리는 호구, 즉 바둑판 위에서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그 속뿐이었다.

바둑에서 호구 안에 돌을 두는 것은 상대에게 돌을 헌납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게임에서는 호구 짓을 피하려면 그 자리만 피해 수를 두면 된다. 설령 패배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고작 패배를 인정한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설사 눈에 뻔히 보이는 '호구'일지라도, 그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외통수에 응해야 다.


나도 사회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거나, 보다 안전한 곳에 나라는 돌을 올려 두고 싶었다. 그러나 40대, 어문계열 전공, 중국 유학생 출신, 편입생, 첫 직장 소기업이라는 조건을 가진 나에게, 우리 사회가 허락한 자리는 언제나 호구뿐이었다. 설사 나의 선택이 누가 보든 명백 '호구로 가는 길'일지라도, 그 외통수를 피할 수 없었고, 호구 안에서 몸부림치는 삶이라도 살아야 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국을 빼놓고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중국은 나에게 야생마였고, 어두운 밤바다였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해, 나는 중국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올림픽이 폐막한 이듬해 졸업하게 되었다.


20대의 중국은 야생마 같았다.

때로는 혼자서는 갈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기도 했고, 때로는 절경에서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기도 했다.


30대의 중국은 어두운 밤바다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고

때때로 밀려오는 감당할 수 없이 거센 파도에 가끔은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지금은 대기업 출퇴근 버스 안에서 처음부터 이 안정감을 누려온 듯 창 밖을 무심하게 쳐다보지만, 나의 20대와 30대는 좌절과 절망, 초라함과 수모의 연속이었다. 소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남들의 무관심 속에서 홀로 정한 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호구 속에서 발버둥 치며 하루하루를 견다.


나를 구하는 나
자기 스스로를 구하는 해리포터 (출처 : 해리포터)


[영화 해리포터 3 아즈카반의 죄수 中]

해리포터는 과거의 죽음의 문턱에 있는 자기 자신을 보며

"바로 저기 있어, 곧 보일 거야"라며 자신을 구해줄 누군가(아버지)를 끝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현명한 헤르미온느는,

"해리, 잘 들어 아무도 안 와"라며 해리포터가 자기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고 다.

해리포터는 끝내 익스펙토 패트로눔이라는 마법으로 자기 자신을 구해낸다.


사회생활을 하며 오랜 시간 토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했다. 어딘가에는 뛰어난 누군가의 정의와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영화 속의 해리포터처럼, 가시밭 위에 있는 나의 고통이 커져가도 어디선가 더 뛰어나고 지혜로운 누군가 결국은 '짠'하고 나타나 해결책을 시해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 곤경 속의 나를 구해주는 것뿐이었다.


스무 살에 부모님 곁을 떠나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열다섯 명이 일하는 소기업부터 국내 최대 기업의 마케팅팀에 이르기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모두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 길에서 마땅히 지불해야 할 열정과 노력이 오히려 기뻤고, 어려움이 닥쳐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사회는 원래부터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것이었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보다,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차마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부끄러웠던 초라함과 수치심은 나의 이야기 속에서 별미 소스가 되어,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위로와 용기로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초라하고 비루함, 그리고 그 안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아가는

나의 이야기가 이 글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전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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