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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May 15. 2024

넌 꿈이 뭐야?

호구여도 괜찮아 #2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를 시청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 친구 Kent와 함께 꿈꾸며 성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Kent는 매우 똑똑했고 다양한 꿈을 품고 있었어요. 우리는 늘 5-6년 후의 계획을 세우며 언젠가 함께 대단한 일을 이룰 거라고 생각했죠." 

빌 게이츠는 친구 Kent와 어린 시절 Fortune지를 돌려 보며 세상을 궁금해했고, 미래의 자신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Kent는 빌 게이츠의 꿈을 이끄는 중요한 존재였으며, 현재 빌 게이츠가 하고자 하는 많은 일들이 바로 Kent와 함께 꿈꾸었던 것들이라고 말한다.


넷플리스 '인사이드 빌게이츠 중'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내게 꿈을 물었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두운 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쪽배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나의 청소년기에, '꿈'이라는 한 단어로 등대가 되어준 친구였다. 고등학교 2학년, 친구와의 첫 번째 여행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넌 꿈이 뭐야?


1999년 7월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청량리역에서 정동진행 기차표를 사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국어 선생님께서 '제일 친한 친구와 여행 가기'라는 숙제를 내주신 덕에, 나는 부모님 곁을 잠시 떠나 친구와 첫 번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지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 숙제의 규칙이었기에, 우리는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을 선택했다. 당시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최고의 낭만 중 하나였기에, 출발 전부터 이미 어른이 된 것처럼 뿌듯하고 설레었다.




늦은 저녁, 기차는 청량리에서 느릿느릿 정동진으로 향했다. 

아직 어린 우리 둘은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설렘과 근심 속에 새우잠을 청했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기쁜 듯 크게 떠드는 아줌마들부터 일이 힘들어 보이는 아저씨들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이야기들이 기차 안에 가득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정동진에 도착했다. 기대하던 일출을 마주했지만, 일출을 보는 것이 우리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었기에 이제 더 이상 계획도, 정해진 목적지도 없었다.


우리는 무작정 이정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동진에 새벽에 도착했지만, 바닷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터라 여름 해가 중천에 떠오르는 이른 오후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두어 시간쯤 걸어 지칠 즈음에야 민박집에 도착했다. 하루 숙박료가 3만 원인 민박집은 가격에 비해 매우 좁고 허름했다. 가운데 평상을 중심으로 ㄷ자로 배치된 좁은 방들은 누렇게 변색된 벽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고, 문은 잠길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허술했다. 우리는 민박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나서, 타지에서의 불안함에 문을 잠그고 좁은 방에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한숨 자고 나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이 날만큼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어렵게 구한 맥주를 들고 모래사장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어느새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우리 둘과 잔잔한 바다만이 있었다. 

열여덟 살, 나는 새로 진학한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불안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던 반면, 친구는 주변의 좋은 어른들의 영향으로 이미 대학 진학과 구체적인 인생의 꿈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친구가 내심 부러웠고, 상대적으로 초라한 내 현실은 굳이 말하거나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두운 저녁 혹은 새벽이 가까운 시간, 친구가 물었다.

"넌 꿈이 뭐야? 나는 초밥을 만들고 싶어."

평소 성적이 좋아 명문대 진학이 확실했던 친구의 의외의 질문에 나는 당황해 대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이야기를 되물었다.

"초밥? 미스터 초밥왕 같은 거?"

나는 말없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한국 최고의 초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강남에 있는 한국 최고 요리사의 제자가 될 계획이라고, 대학 진학은 불필요하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요리사 진로를 반대하신다며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어린 시절 사고뭉치 죽마고우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입이 얼어버렸다. 들어주고 맞장구 쳐줄 뿐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가지고 있지도 않은 내 꿈 이야기 같은 건 말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전교회장이었고, 중학교 때도 공부든 운동이든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이제는 멀리 앞서가고 있는 것을 보며 스스로 발가벗은 듯한 창피함이 내게 몰려왔다.


미래는 나에게 불투명하고 불안한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짊어져야만 하는 것 같아 좀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가 한 큰 울림이 있는 질문은, 미래를 희망이 가득하고, 기대해도 되는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친구의 질문은 마치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무엇인가를 깨워주는 마법의 말이었다. 그 순간, 나의 꿈이 친구를 따라 피어나기 시작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였다. 

빌 게이츠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Kent처럼, 친구는 십수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에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은, 한 줄기 빛을 내려주는 등대와 같이 나의 청년기를 비추어주고 의미 있게 해 주었다. 비록 혼자 어른이 된 나는 친구와 더 이상 꿈을 함께할 수도, 이야기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도 없으나, 이야기의 시작만은 친구와 함께이고 싶었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참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친구가 이 세상에 있던 마지막 해에도, 함께 고민했고 답을 찾고자 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 대답을 찾았고 친구에게 알려주고 싶다. 

'사람의 삶은 이야기다. 그리고 힘든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일수록 더욱 가치 있다.' 

나는 부모가 준 돈으로 5성 호텔에서 수십만 원의 뷔페를 먹었다는 지루한 이야기 보다, 어느 추운 겨울 전철역에서 아내와 눈물 젖은 빵을 삼켰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만약 힘든 역경을 이겨냈다면 그것은 훈장이 될 것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다른 이야기들은 각자의 책장에서 위인전이 될 것이다. 나는 나의 담백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또한 언젠가 다시 만날 친구에게 그가 듣고 싶어 할 어른이 된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청소년이 꾸는 꿈은 아름답고 위험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젊은 날의 가치관이 형성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비록 이제는 나이가 들어 'Carpe diem'이 마치 불건전한 선동 문구처럼 위험하게 보이지만,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있다'는 말은 젊은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선생님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눈을 보며 말했다.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여러분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나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학생이 된 듯, 화려한 연극 속의 시가 되고 싶었다.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를 가장 매료시킨 문장이다. 나는 이 말에 반했고 심취했으며 이십 대의 많은 선택들의 기준이 되었다. 영어 원작에서는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로 표현되어, 평범한 삶이 아닌, 비범한 삶을 만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평범한 사람과 다르게 독특하게 살고 싶어, 친구는 초밥왕, 나는 중국통으로 길을 정하였다. 유학 중 방학이 되어 한국에 돌아올 때면, 친구와 나는 각자의 길 안에서 서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키를 재듯,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한 것부터 괴상한 도전을 한 이야기까지 늘어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름 모를 해변서 어린 시절 꿈꾸었던 모습에 점점 가까워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십 대 후반이 되어 사회의 문 앞에 선 우리에게 입영 통지서처럼 예고 없이 성적표가 도착했다. 우리에게 연봉은 얼마인지 물었고, 그곳은 대기업인지, 무슨 차를 타는지 등을 물었다. 누구도 우리가 어떤 꿈을 꾸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우리는 적표 앞에서 잠시 멈춰 서야 했다. 우리는 스스로 정한 길을 갔고 그 길 안에서 젊은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으나, 사회는 정답이 정해진 시험지를 확인하려는 듯, 마음대로 채점한 성적표를 내밀며 기분 나쁜 미소를 보였다. 대한민국 최고가 되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사회가 나누어 준 성적표에 좌절했고 우리의 선택이 맞았는지 서로가 묻지 않았으나 스스로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 中, 매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인생을 살아보니 이십 대 후반은 열매를 맺는 순간이 아니라 자신의 작은 나무를 아끼고 믿어줘야 하는 시기였다. 비교를 좋아하는 우리 사회는 존중을 배워야겠으나, 젊은 우리는 인내력을 가졌어야 했다. 우리 사회가 사회 초년생에게 내어주는 자리는 호구(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뿐으로, 설사 꿈꾸던 자리와 모습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호구를 자처해서라도 생존에 도전했어야 했다. 범굴의 호랑이와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러보니, 넉넉하진 않아도 가수 장기하처럼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됐다. 아마 초밥왕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술자리보다 TV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는 이제 내 옆에 함께하지 못한다. 


빌 게이츠가 불의의 사고로 Kent를 잃었다고 하자 사회자가 묻는다.

"Did it make you wanna throw up your hands and just quit?" 

빌 게이츠는 답한다.

"I'am gonna do these things Kent and I talked about, but... I'll do it without Kent"

친구는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나는 계속 살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만나면 지금의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웃으며 말해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내일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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