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비범하게 살아라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를 시청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 친구 Kent와 함께 꿈꾸며 성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빌 게이츠는 친구와 어린 시절 Fortune 지를 함께 보며 세상을 궁금해했고, 미래의 모습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친구는 빌 게이츠의 꿈을 이끄는 중요한 존재였으며, 현재 빌 게이츠가 하고자 하는 일들의 많은 부분이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꿈꾸었던 것들이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꿈을 물었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 주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두운 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쪽배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청소년기에, 친구는 '꿈'이라는 한 단어로 나에게 등대가 되어주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중, 명대사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중고등학생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말했다.
"인생을 비범(독특)하게 살아라,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너희들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인생을 비범하게 살으라는 영화 속 선생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젊은 날의 열정의 불꽃이 되었고, 또한 화려한 연극 속의 독특한 시와 같은 삶을 살고 싶게 했다.
그 후로, 친구와 나는 십 대부터 각자의 길 안에서 서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키를 재듯 확인했다. 열심히 공부한 것부터 괴상한 일에 도전한 이야기까지…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중학교 때 짝꿍으로 시작해서, 각자의 길에서 성장해 갔고 이 사회의 문을 함께 두드리게 되었다.
우리가 친구가 된 후,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어느 날, 친구는 나를 감싸고 있던 껍질을 깨어 주었다.
고등학교 2학년, 친구와의 첫 번째 여행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넌 꿈이 뭐야?
1999년 7월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청량리역에서 정동진행 기차표를 사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국어 선생님께서 '제일 친한 친구와 여행 가기'라는 숙제를 내주신 덕에, 나는 부모님 곁을 잠시 떠나 친구와 첫 번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지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 숙제의 규칙이었고, 모래시계의 유행이 가시지 않은 시기였기에, 우리는 드라마 속의 일출로 유명한 정동진을 선택했다.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뿌듯하고 설레었다.
사진 출처 (구글)
늦은 저녁, 기차는 청량리에서 느릿느릿 정동진으로 향했다.
아직 어린 우리는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설렘과 근심 속에 새우잠을 청했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기쁜 듯 크게 떠드는 아줌마들부터 일이 힘들어 보이는 아저씨들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이야기들이 기차 안에 가득했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기차 안에서의 시간은 마치 꿈속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기차는 정동진에 도착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일출을 맞이했지만, 일출을 보는 것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만큼, 이제 더 이상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적지는 사라졌다.
우리는 무작정 이정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동진에 새벽에 도착했지만, 바닷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터라 여름 해가 중천에 떠오르는 이른 오후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두어 시간쯤 걸었고, 지칠 때쯤 민박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 숙박료가 3만 원인 민박집은 그 가격만큼 매우 좁고 허름했다. 가운데 평상을 중심으로 ㄷ자로 배치된 좁은 방들은 누렇게 변색된 벽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고, 문은 잠기는 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허술했다.
우리는 민박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은 후, 타지에서의 불안함에 더운 여름에도 문을 꼭 닫고 좁은 방에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한숨 자고 나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이 날만큼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어렵게 구한 맥주를 들고 모래사장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시작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우리 둘과 잔잔한 바다만이 남아 있었다. 열여덟 살, 나는 새로 진학한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불안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던 반면, 친구는 이미 주변의 좋은 어른들의 영향으로 대학 진학과 구체적인 인생의 꿈을 갖고 있었다. 친구가 그렇게 확고한 꿈을 가진 것에 나는 내심 부러워했고, 내 현실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 싫어 감추고 싶었다.
새벽이 가까운 시간, 친구가 물었다.
"넌 꿈이 뭐야? 나는 초밥을 만들고 싶어."
친구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대답 대신, 친구의 이야기를 되물었다.
"초밥? 미스터 초밥왕 같은 거?"
친구는 한국 최고의 초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국 최고의 요리사의 제자가 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학 진학은 필요 없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지만,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이를 강하게 반대하셨다고 했다. 친구는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나는 깨달았다. 어린 시절 사고뭉치 죽마고우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곧 입이 얼어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들어주거나 맞장구 쳐주는 일 뿐으로, 질문에 대답하거나 감히 조언 같은 건 입 밖에 낼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친구보다 뒤처지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친구가 저 멀리 앞서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을 멀뚱멀뚱 지켜보고만 있는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발가벗은 듯한 창피함이 몰려왔다.
집으로 돌아와 여름 방학 동안 친구의 질문과 이야기를 곱씹었다.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나에게 미래라는 것은 불투명하고 불안한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짊어져야만 하는 것 같아 좀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의 큰 울림이 있는 질문은, 미래는 희망이 가득하고, 기대해도 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순간, 나의 꿈이 친구를 따라 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