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살아보는 2층집
영국에 도착해 제일 신났던 건 우리가 2층집에 살게 된다는 거였다. 평생 15평짜리 아파트에서 살았으니, 영화에서만 보던 계단 있는 집에 산다는 건 꿈만 같았다.
몇 달 일찍 영국에 미리 와서 우리가 살 준비를 해 두셨던 아빠는 우리가 다니게 될 한인교회 목사님이 살던 집을 계약하셨다. 영국 생활을 마친 목사님 가정이 한국에 들어가면서 그 집에 우리가 들어가게 됐는데, 단지 2층이란 이유로 신나 했던 나와 동생과는 달리 그 집은 엄마에게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 요소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도착해 보니 집 상태는 엉망이었다. 너무나도 낡은 카펫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커튼, 가구는 둘째치고 이 목사님 가정은 뒷정리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몸만 달랑 집에서 나와 한국으로 귀국하신 거였다. 집에는 그 가정이 사용하던 물건들로 가득했고 심지어 쓰레기도 버리지 않아 과자 봉지 같은 것들이 이방 저 방에서 튀어나왔다. 엄마는 어떻게 목사님 사모님이란 사람들이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냐며 분개했다.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이민짐을 풀어야 하는데 2층집 그 많은 쓰레기부터 정리해야 했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덕분에 그런 집을 구해온 아빠도 참으로 욕 많이 먹었다.
어리고 철없던 난 그런 엄마의 분노에 전혀 동감하지 못했고, 동생과 1층 2층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평생 처음 살아보는 동화 같은 이 '큰'집을 구경하는데 바빴다. 화장실도 두 개, 거실도 두 개. 부엌에 딸린 오븐도, 식료품을 보관할 수 있는 팬트리도 내 눈엔 너무 고급져 보였다. 큰 마당도, 그 중앙에 있는 높은 나무도.
마당에 사과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린 또 '우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바로 우리 집 앞에서 사과를 따 먹을 수 있다니! (애석하게도, 이 사과나무 열매는 푸석푸석한 데다 너무 떫고 셔서 먹을 수 없었다. 제철이 되면 수많은 사과가 땅에 떨어져 썩는 바람에 이걸 치우는 것도 참 귀찮은 일이었다)
마당 가운데 있던 높은 나무엔 청설모가 왔다 갔다 했고, 나무 위엔 딱따구리가 둥지를 터 매일 뚜다다다다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렸다. 몇 달 후 아빤 마당에 있는 다른 나무에 나무 그네를 설치해 주셨는데, 앉기엔 많이 불편하고 흔들리는 각도도 작아 타는 재미는 별로 없었지만 우리 집 마당에 그네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로맨틱한 것 같아 괜히 혼자 분위기 잡고 자주 그네에 앉아 책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