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방인으로서의 추억은 함박눈으로부터 시작된다.
1998년 2월, 분당 미금동. 한국을 떠나는 그날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소극적이고 숫기 없는 조용조용한 성격이라 난 친구가 별로 없었다. 영국 가는 날 배웅해 준다고 나온 친구는 동네 친구 한명이 전부였다. 쇼트커트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땐 항상 붙어다니는 단짝 친구였다.
한국통신 연구원이셨던 아버지가 영국 통신회사에 2년 계약직으로 취직하셨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영국으로 이사하게 됐다.
그땐 영국행이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꿀 거란 생각까진 미처 하지 못한 채, 마냥 2개월 동안 떨어져 있던 우리 아빠 볼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시간은 왜 이리 느리게 가는지. 영국으로 가는 날짜까지 일주일 전부터 매일매일 카운트다운을 해가며 김포공항 갈 날만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시간은 더디게 가는 듯했다.
스마트폰은커녕 이메일도 상용화되지 않은 때였다. 내가 영국이란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스파이스 걸스', ‘셜록 홈스', 그리고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책에서 읽은 6명의 아내를 두었던 ‘헨리 8세' 왕.
우리보다 몇 개월 먼저 영국에 가 계셨던 아빤 영국에 대한 인상과 우리가 살게 될 집 등을 묘사한 장문의 편지를 손으로 써서 보내셨고, 난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지금 같은 시대야 핸드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내면 되지만 그땐 아빠의 글을 통해 영국이란 나라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방법밖엔 없었다. 집안에 계단이 있는 이층집에 살게 될 거란 생각에 마냥 들떴다.
한국을 떠나는 그날은 펑펑 흰 눈이 내렸다. 단짝과 난 그 함박눈을 맞으며 서로를 끌어안고 엉엉 소리내 울었다. 택시에 탄 엄마와 동생이 이제 공항 가야 한다며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부른 후에야 겨우 떨어졌다. 그래도 2년 뒤에 돌아올 거니까. 그렇게 위안 삼고 떠난 한국땅을 ‘우리 집'이라 불러본 건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매서운 한국 겨울에 비해 푸근한 겨울을 지닌 영국에선 함박눈을 보기 어렵다. 최근 몇 년 들어 이상기후 현상으로 겨울은 90년대보다 훨씬 더 따듯해진 덕분에 더욱더 그렇다. 어쩌다 아주 가끔, 영국에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떠오르곤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영국으로 건너온 지 벌써 26년이 넘었습니다. 모뎀으로 겨우 인터넷에 연결하고,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 불법으로 VHS 테이프에 녹화된 한국 드라마를 한인 슈퍼에서 빌려 보았고 민들레 줄기를 캐다가 김치를 해 먹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연재글 '이방인의 추억'은 어린이의 눈으로 본 영국 정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