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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Jun 28. 2024

탕수육 대신 자켓포테이토

영국이란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이 음식 저 음식 먹어보는데 바빴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영국이라는 유럽국가에 인도음식이 즐비하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2차대전이 끝나면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거 이주를 했으며, 1970년 대엔 아프리카에서 축출된 인도 난민들이 영국으로 몰려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역사 지식이 없었던 12살의 어린 소녀에겐, '백인 국가'에 이렇게나 많은 인도인들이 있다는 게 꽤나 신기했다.


즐비한 인도 식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페이스트리에 감자와 채소, 커리 등을 넣고 튀긴 삼각형 모양의 사모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커리향나는 이국적인 튀김만두가 참으로 특이하고 맛있었다. 식당에서 갓 구워낸 바삭한 사모사가 아닌 동네 가게에 하루종일 진열됐던 사모사는 기름에 절고 눅눅했지만 톡 쏘는 큐민으로 향을 낸 다진 고기와 감자의 조합이 그렇게도 중독적이었다.


또 다른 영국의 '이색 메뉴'는 자켓포테이토였다. 자켓이 양 옆으로 열리 듯 감자를 가른다고 해서 '자켓포테이토'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븐에 노릇하게 구운 통감자를 반으로 가른 후, 가운데 여러 가지 토핑을 얹어 먹는 자켓포테이토는 어딜 가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국 서민요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에 버터를 한 스푼 가득 넣고 포크로 감자와 섞어주면 고소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입맛을 자극했다. 여러 가지 토핑이 있지만 가장 흔하게 먹는 토핑은 체다 치즈와 베이크드빈, 또는 참치와 옥수수 토핑이었다. 자켓포테이토는 엄마가 그렇게도 좋아하셨는데, 뭔가에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먹는 우리 엄마 식성 때문에 한동안 자켓포테이토를 질리도록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엄만 영국에 오면 더 이상 못 먹을 거란 생각에 영국행을 하기 전 몇 개월 동안은 중국집에서 탕수육만 시켰던 그런 사람이다. 툭하면 탕수육을 먹어야 했던 난 그때를 계기로 한국 스타일 탕수육뿐 아니라 서양 중식당에서 주문할 수 있는 sweet and sour pork 요리까지 몇 년 동안 입에도 대지 않았다. '탕수육'하면 바로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한국에서 탕수육에 집착했던 우리 엄만 영국에 와선 자켓포테이토와 감자튀김에 꽂히셨다. 조리하기도 너무나 간단한 데다 영국 감자 자체가 유난히 맛있어서 우리 가족은 한동안 엄청난 양의 감자를 반강제로 먹어야 했다. 내가 몇 년 동안 자켓포테이토를 멀리한 이유가 여기 있다.


영국에서 먹어본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던 건 아니다. 케밥집에서 처음 먹어본 양고기는 겨드랑이 암내가 나 한입 이상 먹을 수가 없어 바로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베트남 쌀국수집에 풍성하게 얹어 주는 고수에선 덜 마른 행주 냄새가 났고 어떻게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파란색 과자봉지에 담긴 소금&식초 맛 과자는 짭짤한 과자를 예상하고 입에 넣었다가 충격적인 시큼한 맛에 욱 하도 도로 뱉어냈다. 초콜릿 스프레드인 줄 알고 토스트에 듬뿍 발랐던 갈색잼의 정체는 맥주 이스트를 농축한 아주 씁쓸한 맛의 마마이트였고,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밥을 설탕과 크림을 넣고 끓여 라이스푸딩이란 디저트를 만든다는 건 너무나도 이상했다.


물론, 영국에 도착한 지 26년이 지난 오늘날엔 이 모든 음식을 너무나 사랑하게 됐다.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마마이트는 버터를 바른 갓 구운 바삭한 토스트와 우유를 탄 홍차와 먹으면 금상첨화다(버터와 마마이트의 비율을 아주 잘 맞추어주는 게 관건이다! 2:1 비율로 버터는 조금 두껍게, 마마이트는 아주아주 얇게 발라주어야 짭쪼롬 고소한 마마이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고수는 집에서 직접 키울 정도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허브 중 하나이며 양고기 케밥 또한 자주 찾는 길거리 음식이다(특히 술 마시면 생각나는 음식이다). 자켓포테이토는 볼 때마다 엄마 생각나게 하는, 아련한 그런 음식이 되어버렸다.


#이민생활 #영국정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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