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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Nov 15. 2024

영국에서 일하면 카톡이 싫어지는 이유

지난 몇 주간 한국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메일로 주로 소통하는 영국과는 달리 한국 회사는 카톡으로 업무 대부분을 처리해 나갔는데 그 비효율성에 진절머리가 난다. 



단톡방이 너무 많다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 됐을 때 하나였던 단톡방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늘어갔다. 지역별로, 분담 업무별로, 소속 회사별로 등등 구분은 다양해졌고 세분화돼 갔다. 아무나 무턱대고 카톡방을 만들다 보니 방명 또한 정형화되지 않아 한눈에 어떤 목적으로 생성된 카톡방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프로젝트 이름으로 시작되는 방만 여러 개인 데다가 방명이 단순히 카톡방 참여자 아이디로 구성된 것도 있었다. 30초면 금방 소통하고 처리할 업무도 어떤 방에 올려야 하는지 카톡방 리스트를 훑어본 다음에 진행해야 했다. 내가 소통하려는 방안에 정보를 전달받아야 할 인원들이 다 모여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것도 일이었다. 


자료 검색이 어렵다

이렇게 많은 카톡방 안에선 업무와 관련된 모든 자료와 정보가 오고 갔다. 프로젝트 진행에 필요한 스케줄표나 PPT, 엑셀파일 등 핸드폰으로 보긴 힘든 자료들도 카톡방에 올라왔다. '업데이트본.ppt' 같이 정확히 어떤 자료인지 파일명에 제대로 명시돼있지 않은 자료들은 검색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일일이 그 많은 카톡방에 들어가 원하는 자료가 나올 때까지 스크롤해 수동으로 찾아봐야 했다. 


편집을 해야 하는 파일들은 컴퓨터에서 카톡을 열고 다운로드한 다음 작업을 해야 하는데, 파일 전송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컴퓨터에서 접속한 카톡창에선 파일을 비롯해 그와 관련해 나누었던 업무 내용이 뜨지 않아 핸드폰으로 다시 파일을 찾은 다음 메일로 보내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혼선이 생긴다

여러 명의 팀원들이 함께 작업해야 하는 파일 같은 경우,  동일한 이름의 파일이 여러 번 카톡방에서 오가기도 했다. 자료를 확인해 달라고 누군가 카톡방에 파일을 올리면 누군가 수정을 해서 다시 파일을 카톡방에 올려주는 식이다. 수정 과정을 거칠 수록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조금 다른 파일들이 수두룩해졌다. 도대체 어떤 파일이 최종본인지 헷갈려 카톡방에 물어보면 누군가가 다시 파일을 카톡으로 보내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분명히 한 사람이 수정본을 보냈는데 카톡 메세지를 보지 못해 옛날 파일을 사용하다가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건 비일비재했다. 구글 드라이브 등을 이용해 클라우드 시스템에 저장된 하나의 파일로 함께 작업하면 너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말이다. 


피로도가 높아진다. 

필요한 자료를 찾는 단순 업무도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니 힘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카톡! 카톡! 하는 핸드폰 알림음도 스트레스였다. 이메일은 내가 원하는 때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시간에 열어보면 되지만 카톡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지인들과의 소통과 일에 필요한 소통이 모두 카톡에 한꺼번에 모여버리니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선이 흐려졌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게 어려워졌다. 카톡방에 갑자기 많은 메세지가 떠 중요하고 급한 일인 줄 알고 들어가 보면, 굳이 내가 알고 있지 않아도 되는 내용들도 많았다. 


정보를 정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영국에선 보통 이메일로 필요한 사람들만 CC 걸어 내용을 공유하고 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발신인이 처음부터 해당 안건 논의에 필요한 사람들만 포함시킨 후 대화를 나누다가, 후에 필요하면 추가적으로 다른 사람을 메일 체인에 CC 하는 방식이다. 


메일함에 여러 폴더를 만들어 두고 관련된 메일을 옮겨두면 관련 업무에 대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찾아보기도 편리한데, 카톡방에 온갖 내용의 대화가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정보를 걸러내고 정리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화면을 무작정 스크롤해 가면서 다시 원하는 정보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큰 시간낭비인지.



카톡으로 일을 진행하는 걸 싫어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영국에서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팀원은 처음부터 '이메일로 소통해 달라'라고 하고 카톡은 아얘 보지도 않았고, 다른 팀원은 카톡방이 생기면 바로 퇴장해버리곤 했다. 난 카톡 알림음 자체를 무음으로 해두고 메세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줄임으로 피로도를 줄이고 있는 중이다. 


한때 들으면 반가웠던 카톡의 발랄한 알림음은, 노이로제 걸릴 것 같은 효과음으로 바뀌어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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