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의미가 없는 이유
퇴사 후, 함께 일하자고 들어온 제의들은 내가 여태 몸담고 있던 직종과는 조금 다른 일들이었다. 그쪽 분야의 전문인이 전혀 아닌데도 나란 사람을 믿고 직을 맡긴다는 건, 이력서에 들어가는 경력 외에 다른 부분들을 (감사하게도) 높게 평가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나도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팀원 채용을 수차례 진행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이력서가 빵빵하다고 해서 무조건 채용하고픈 인력이 되는 건 아니다. 경력이 좋아 채용했는데 팀원들과 툭하면 문제를 일으켜 사기를 떨어뜨리고 에너지를 소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력은 아직 없지만 무슨 일을 맡겨도 금방 배우고 소통이 원활해 같이 일하면 시너지가 도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래서 채용을 할 때 본업에 대한 전문성을 테스트하는 질문의 비율은 30%, 나머지는 인성과 소통 스타일, 어려운 상황 대처 능력 등을 보는 질문의 비율을 70% 정도로 두고 사람을 뽑았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경력과는 무관하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경력으로부터 오는 노하우와 지식을 절대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직을 뛰어넘는, 더욱더 넓고 긴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 사람과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라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주어진다. 정해진 절차를 따른 '진급'과 '이직'에만 의존하지 않는, 훨씬 더 폭넓은 커리어 디자인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쌓아 올려야 할까? 두 개의 기둥을 쌓아야 한다. 당연히 일을 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함께 일을 같이 하고 싶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키워야 한다.
일 잘 함의 영역엔 책임감, 근면함, 성실함, 꼼꼼함 등이 있겠다. 직종을 불문하고 모두에 해당되는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런 자질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주어진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한다'는 신뢰를 심어준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공통된 자질은 '배려심'이다. 이들은 본인이 하는 일이 다른 팀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항상 인식하고 있고, 나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편할 수 있도록 본인이 하는 일을 조정해 나간다. 자주 소통을 하며 업무 상황을 업데이트해주며 주변인들의 피드백을 경청하고 반영한다. 일을 하다가 갈등이 생겨도 그들의 사려 깊은 대화법은 상황을 잘 마무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게 즐겁다.
경력은 덤일 뿐이다. 잘 다듬어진 이 두 기둥에 특수성을 더해 더 진가를 발휘하게 만들어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