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겨울을 견디어내면 봄이 오듯이 건안성에서 끔찍한 첫날을 보낸 두비치나에게도 따뜻한 햇살이 비추었다.
아빠가 준 선물은 마술 단검이다. 아빠는 그걸 주면서 엄마한테 절대 들키면 안 된다며, 그땐 아빠도 더는 보호해줄 수 없다고 신신당부했다.
마술 단검은 일반 단검처럼 생겼지만, 칼날이 무디고 칼자루가 조금 더 두꺼웠다. 비밀이 칼자루에 있기 때문인데, 그 속에 구렁이가 나무를 휘감듯이 빙빙 돌려 감은 가느다란 철실이 여러 개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찌르면 단검이 칼자루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두비치나는 유랑놀이패가 공연을 위해 마을로 내려갔을 때 몰래 단검 마술 연습을 했다.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건안성에서는 괴물로 숨어 살아야 하기에 최선을 다했다.
유랑놀이패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두비치나가 마술 단검을 챙겨 금전산 중턱 너럭바위로 향했다. 내일 아이들 앞에서 마술하기 전에 강찬이한테 먼저 보일 생각이다. 함께 의논할 사람이 있어서 참 든든했다.
너럭바위에서 별자리를 관찰하던 강찬이는 발걸음 소리가 나자 재빨리 뒤돌아보았다. 두비치나를 향해 반갑게 아는 척했다.
“어서 와.”
“내일 큰일 난다는 하늘의 계시 없어?”
두비치나가 강찬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없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오늘 꼬맹이 녀석들이 ‘괴물 꺼져!’라고 소리치면서 돌멩이를 던지더라고.”
두비치나는 낮에 있던 일을 덤덤하게 꺼냈다.
“뭐? 누가 그랬어?”
강찬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서 이걸 사용할까 생각 중이야.”
두비치나가 품에서 마술 단검을 꺼냈다. 그걸 본 강찬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비치나, 그건 좀···. 아직 어린 애들이야. 누군지 말하면 내가 잘 타이르게.”
“누가 꼬맹이들한테 사용한대? 나한테 할 거야. 잘 봐.”
두비치나가 씨익 웃으며 마술 단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런 두비치나를 강찬이가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두비치나가 새로운 마술을 하는 거라고 짐작했지만, 그래도 손에 든 단검이 마음에 걸렸다.
“파란 하늘의 신이시여, 고구려 수호신 검은 삼족오시여, 당신들의 딸 두비치나가 말하노니 저를 죽음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두비치나가 마술 단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진짜 칼에 찔린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하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두 눈을 감았다.
“두비치나! 안 돼!”
강찬이가 놀라 소리쳤다. 쓰러진 두비치나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러자 두비치나가 두 눈을 뜨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때? 진짜 같지?”
“휴우~. 죽은 줄 알았잖아.”
강찬이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놀란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 강찬이를 위해 두비치나는 마술 단검을 보여주며 사용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더불어 내일 계획에 대해 알려주었다.
“내일은 피 주머니도 준비할 거야. 그럼 완전 감쪽같겠지.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해!”
각오를 다지는 두비치나의 두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강찬이는 며칠 전 걸걸비우가 다친 사건도 있어서 경당 친구들이 많이 놀랄 것 같아 걱정되었다. 그렇지만 두비치나의 아픔을 알기에 말릴 수도 없었다.
다음날 두비치나는 경당 앞 골목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무리 지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 속에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싼 걸걸비우가 눈에 들어왔다. 두비치나는 친구들과 웃으면서 얘기하는 걸걸비우 모습이 낯설었다. 그리고 조금 부러웠다.
두비치나를 발견한 아이들은 강찬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워했다. 누구 하나 괴물이라고 놀리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꺼림칙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두비치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차갑게 말을 뱉었다.
“보여줄 게 있어. 따라와.”
두비치나가 몸을 휙 돌려 아이들과 처음 만났던 금전산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그 뒤를 순순히 따랐다. 두비치나와 아이들은 처음 만났던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멈췄다. 두비치나가 매서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비웃는 눈동자, 짜증 난 눈동자, 심드렁한 눈동자. 첫마술 실패로 이번 마술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너희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어?”
두비치나는 아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생뚱맞은 그 말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에이, 말도 안 돼.”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나?”
“그래? 난 할 수 있어.”
두비치나가 허리춤에서 마술 단검을 꺼내 아이들한테 보여주며 말했다.
불길한 생각이 아이들 머리를 스쳤다. 아이들이 강찬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눈빛으로 물었다. 강찬이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릴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두비치나가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파란 하늘의 신이시여, 고구려 수호신 검은 삼족오시여, 당신들의 딸 두비치나가 말하노니 저를 죽음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두비치나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검을 가슴에 꽂았다. 새빨간 피가 흘렀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두비치나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후 고개가 힘없이 툭 떨어졌다.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에 아이들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았다.
“두···. 두비치나! 안 돼!”
강찬이가 어제 연습한대로 소리 지르며 두비치나한테 달려갔다.
잠시 후 두비치나가 두 눈을 떴다. 강찬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짜릿했다. 함께 하는 마술은 이런 걸까? 두비치나는 마술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에 꽂힌 것처럼 보이는 단검을 뽑았다.
“파란 하늘의 신이시여! 고구려 수호신 검은 삼족오시여! 감사하나이다. 당신들의 딸, 저를 죽음에서 구해주셨나이다. 이 죽음의 기운을 저를 괴롭히는 이에게 대신 내리소서. 파란 하늘의 신이시여! 검은 고구려 수호신 삼족오시여! 감사하나이다.”
두비치나가 하늘과 땅을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멀쩡한 두비치나 모습에 기겁했고, 두비치나가 내뱉은 죽음의 저주가 자신들에게 떨어질까 봐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