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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Sep 03. 2023

7. 송강찬 VS 아버지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강찬이는 저녁을 먹은 후 곧바로 뒷마당에 있는 무술 수련장으로 향했다. 기다란 평상을 지나, 무기고에서 활과 화살집을 챙겼다. 그리고 반대편 끝에 놓여 있는 커다란 과녁판을 보았다. 과녁판에는 동그란 원이 세 개 그려져 있는데, 강찬이는 한 번도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원을 맞혀 본 적이 없었다.

   강찬이는 경당 무술 스승님께 배운 대로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화살 하나를 꺼내 활에 메겼다. 활을 어깨높이보다 조금 더 높이 들어 올렸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 상태에서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조금 더 힘껏,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참으며 과녁에 집중했다. 

   하나, 둘, 셋. 이때다.

   강찬이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탁 놓았다. 경쾌한 ‘피용’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가 과녁에 꽂혔다. 

   강찬이는 한 발, 한 발 마지막 순간까지 과녁에 집중하며 화살을 쏘았다. 그 결과 총 열 대 중 9대의 화살이 두 번째 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화살 하나는 가장 큰 원에 꽂혔다. 가장 작은 원을 맞히지는 못했지만, 열 대 모두 과녁 안에 꽂혔다. 강찬이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퍼졌다.

   “마침 여기 있었구나.”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강찬이는 몸을 돌려 아버지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그런데 아버지 혼자가 아니었다. 아버지 뒤로 걸걸비우 아버지가 보였고 그 옆에 걸걸비우가 활과 화살집을 멘 채 서 있었다.

   “활 신동 걸걸비우 솜씨도 궁금하고 네가 그걸 봐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가 부탁했다.”

   아버지가 이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성주님. 그건 과장된 소문입니다.”

   걸걸비우 아버지가 손사래를 쳤다.

   “과장된 소문인지 진짜 활 신동인지 보면 알겠지. 걸걸비우, 솜씨를 보여다오. 강찬이는 옆에서 잘 배우고.”

   강찬이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걸걸비우 아버지와 함께 평상에 걸터앉았다. 

   걸걸비우는 강찬이한테 한발 한발 다가가면서 낮에 있던 일을 되새겼다. 눈동자 색깔이 다른 애가 피를 흘리자 강찬이가 나서서 도와줬고 친구들한테 외모로 놀리면 안 된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걸 보고 나니 강찬이가 차갑고 못되게 구는 것은 걸걸비우 자기한테만 그러는 것처럼 같았다. 더 화가 치밀었다.

   “멍멍”

   걸걸비우가 속삭였다.

   강찬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산에서 있었던 일은 옳지 않은 행동이었고, 조금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랫입술을 깨문 채 자리를 내주는 이 순간, 미안함은 질투로 불타 사라졌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잘못된 관계를 만든 걸걸비우가 사라지길 바랐다. 

   걸걸비우는 화살집에서 화살을 꺼내 활에 메기려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동안 아이들한테 무시당하던 장면들이 마구 떠올라 감정이 울컥했다.

   ‘니들이 날 무시해도, 난 고구려 기마무사가 될 거야!’

   걸걸비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다음 활을 높이 들어 올리고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과녁을 향해 쏘았다. 화살은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과녁 정중앙에 탁 꽂혔다.

   “명중이구나!”

   강찬이 아버지의 따스한 목소리가 무술 수련장에 울려 퍼졌다.

   마음이 놓인 걸걸비우가 씩 웃으며 거침없이 연속적으로 활을 쏘았다. 화살은 힘차게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 정중앙에 차곡차곡 꽂혔다. 그때마다 강찬이 아버지의 얼굴은 환해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강찬이의 가슴은 화살이 박힌 과녁판처럼 따끔거렸다.

   “신동의 귀한 솜씨를 봤으니, 답례해야겠지”

   강찬이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주님께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려고요?”

   걸걸비우 아버지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자네 아들의 멋진 솜씨를 봤는데, 내 어찌 가만히 있겠나.”

   강찬이 아버지가 무기고에 가서 활과 화살집을 챙겼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걸걸비우가 서 있던 곳으로 갔다.

   그 모습을 걸걸비우 아버지와 걸걸비우가 바른 자세로 서서 지켜보았다. 

   “거참, 민망하게 왜 그러나. 그냥 편히 앉게나.”

   강찬이 아버지가 쑥스럽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걸걸비우 아버지와 걸걸비우가 평상에 걸터앉았다. 걸걸비우는 잔뜩 긴장해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부릅뜬 두 눈으로 강찬이 아버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허참, 편하게 앉으라니까. 걸걸비우는 활과 화살집도 내려놓고. 자고로 무사는 집중할 때와 편히 쉴 때를 잘 구분해야 하는 법이다.”

   강찬이 아버지 말에 걸걸비우 아버지가 쑥스럽게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걸걸비우도 활과 화살집을 평상 위에 올려놓고 편히 앉았다. 강찬이만 바짝 긴장한 채 아버지 옆에 서 있었다.

   강찬이 아버지는 총 다섯 발을 쏘았다. 건안성 성주답게 모두 명중이었다. 걸걸비우가 강찬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우러러보았다. 그런 걸걸비우를 강찬이 아버지가 따뜻한 미소로 응답했다.

   강찬이는 이런 아버지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이제 강찬이, 네 솜씨 좀 볼까? 좋은 시범을 많이 봤으니 좀 달라졌겠지.”

   강찬이 아버지는 자신이 섰던 자리를 강찬이한테 내주었다. 활과 화살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걸걸비우 옆에 앉아 강찬이를 보았다.

   ‘정중앙을 맞춰야 해!’

   강찬이가 벌린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활을 어깨높이보다 조금 더 높이 들어 올렸다. 화살 하나를 꺼내 활에 메겼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채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조금 더 힘껏,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참으며 과녁에 집중했다. 

   하나, 둘, 정중앙? 아직 아니야. 넷, 다섯···.

   욕심이 많아진 강찬이는 쉽게 화살을 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찬이의 이마에서 진땀이 흘렀다.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힘에 겨워하던 강찬이가 그만 활시위를 놓쳤다. 화살이 하늘을 가로질러 과녁을 지나쳐버렸다. 

   순간 주위가 싸늘해졌다.

   강찬이는 다시 화살을 메겼다. 이번에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하지만 화살은 과녁 근처에서 땅으로 뚝 떨어졌다. 열 대의 화살 중에서 과녁에 꽂힌 것은 딱 3대뿐이었다. 그것도 가장 큰 원을 간신히 맞혔다.

   “으흠!”

   강찬이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버렸다. 걸걸비우 아버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둘러 따라나섰다. 걸걸비우는 고개 숙인 강찬이를 보았다. 걸걸비우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통쾌했다. 

   “걸걸비우.”

   걸걸비우 아버지가 작은 소리로 불렀다. 걸걸비우가 서둘러 따라 나갔다.

   무술 수련장에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강찬이만 남았다. 한숨을 깊게 내쉬던 강찬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버지가 나간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평상 위에 놓인 걸걸비우의 화살집을 발견했다. 강찬이는 그곳으로 다가가 화살집에서 화살 하나를 꺼냈다. 허리춤에 있는 단칼을 꺼내 그 화살의 가운데 부분을 칼로 그었다. 걸걸비우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쪽팔리지 않아?”

   갑자기 두비치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찬이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왜 그 애 목소리가 들렸지? 헉, 이게 뭐야?”

   강찬이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걸걸비우 화살을 보았다. 질투에 눈이 멀어 남의 화살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당황한 강찬이는 화살을 화살집에 넣고 뒤로 물러났다.

   ‘아참, 화살을 그 안에 두면 위험하지.’

   강찬이는 망가트린 화살을 꺼내려고 화살집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걸걸비우가 돌아와 화살집을 확 낚아챘다. 그리고 평상에 놓인 활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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