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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Sep 03. 2023

8. 함께 별을 보다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시간이 흘렀다. 까만 밤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강찬이는 침상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망가트린 걸걸비우의 화살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짓을 저지른 자신이 한심했고, 그 화살로 걸걸비우가 다칠까 걱정되었다. 그러다가도 걸걸비우를 보던 아버지의 다정한 눈빛이 떠오르면, 차라리 걸걸비우가 다쳤으면 좋겠다는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결국 강찬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문일지’를 챙겨 금전산으로 향했다. 산 중턱 너럭바위에 발을 내디디고 드넓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별들이 말을 건넸다. 어둡던 가슴에 환한 별빛이 켜졌다.

   “휴우, 이제야 살겠네!”

   강찬이는 양팔을 활짝 펼치고 온몸으로 별빛을 받았다.

   너럭바위에서 깜박 잠든 두비치나는 낯선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스럭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찬이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라 들고 있던 책을 떨어트렸다. 두비치나가 그 책을 본능적으로 잡았다. 당황한 그들은 서로 말없이 멀뚱히 바라보았다. 

   ‘왜 별똥별이 여기에? 얜 정말 불길한 징조인가?’

   ‘앗! 또 그 애다!’

   두비치나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이 상황이 민망해서 ‘천문 일지’를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어젯밤에 봤던 별똥별 그림을 보았다.

   “어, 이거 어제 그 별똥별이잖아.”

   두비치나의 혼잣말에 강찬이는 정신이 들었다. 꼭꼭 숨기고 있는 자신의 비밀이 두비치나의 손에 있었다. 강찬이는 거칠게 책을 뺏었다.

   “아, 진짜! 오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강찬이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무도 모르는데···. 에휴~, 두비치나, 말···. 말할 거니?”

   조심스럽게 두비치나를 보는 강찬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두비치나는 강찬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릴 적 친구들한테 외면당할까 봐 불안했던 자기 모습이 떠올랐다. 평범한 아이도 불안해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별걱정을 다 하네. 너도 알다시피 난 말할 친구가 없잖아.”

   두비치나는 양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한심하지? 아빠는 성주인데 난···. 휴우~. 무술은 형편없고 별 관찰이라니···. 휴우~.”

   강찬이가 얼굴을 구기며 계속 한숨을 내뱉었다.

   두비치나가 너럭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으로 옆자리를 톡톡 치며 강찬이를 올려다보았다. 강찬이가 쭈뼛거리며 그 옆에 앉았다.

   “그 기분 알지. 내가 아주 잘 알아. 우리 엄마는 춤꾼이야. 춤을 아주 잘 춰. 특히 엄마가 호선무를 추면 사람들이 넋 놓고 본다고. 엄만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래. 하지만 난 그렇게 될 수 없는걸. 이 두 눈으로 춤춰봤자 놀림거리만 될 뿐이잖아.”

   “······.”

   강찬이는 위로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불쌍하게 보지 마. 그래도 내겐 마술이 있어. 난 마술이 좋아. 엄마는 눈속임이라며 싫어하지만, 로제트가 그랬어. 마술은 ‘순간의 행복’이라고. 아, 로제트는 내게 마술을 알려준 서양인이야.”

   좋아하는 마술 이야기에 두비치나는 저절로 흥이 올랐다.

   “로제트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보여줘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마술이래. 그 순간의 행복이 어떤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하지만 난 아니야! 내게 있어 마술은, 내가 원하는 걸 갖게 만드는 힘이지.”

   “마술 좋은 거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강찬이 질문에 두비치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자기도 모르게 말하면 안 되는 중요한 비밀을 말해버렸다.

   “몰라. 몰라.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두비치나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비밀이구나. 더 캐묻진 않을게. 근데 내 비밀 꼭 지켜줘. 아버지 귀에 들어가는 순간, 난 더는 별을 볼 수 없거든. 부탁해.”

   강찬이는 뭔가 숨기는 두비치나의 불안한 마음이 이해되는 동시에, 지금처럼 말실수해서 강찬이의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에이, 모르겠다. 낮에 봤던 돌멩이 없앤 거, 사실 가짜야. 재빨리 다른 곳으로 숨겼지. 그게 마술이야. 진짜처럼 믿게 만들기 위해 엄청 연습했어. 너도 내 비밀 꼭 지켜!”

   두비치나는 비밀을 털어놓는데도 이상하게 불안과 걱정보다는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강찬이의 비밀을 쥐고 있어서 안심되는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 또래의 아이한테 자신의 속내를 꺼내 보이는 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누군가와 비밀을 함께해서 덜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당연하지.”

   강찬이 얼굴에 처음으로 엷은 미소가 번졌다.

   “아참, 아까 낮에 고마웠어.”

   “아, 다친 것은 괜찮니?”

   “하하하. 그거 가짜 피야. 마술 성공해야 했었는데···. 그래야 얘들이 날 놀리지 못하는데···. 에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다. 걱정.”

   “너무 걱정 마. 내가 얘들한테 잘 얘기해 놓았어.”

   “왜? 왜 내게 잘 해줘? 내가 불쌍해서?”

   “···어? 그게···.”

   강찬이는 두비치나의 눈길을 피했다.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난 내 힘으로 이겨낼 거야. 다시 마술로 아무도 날 못 건들게 할 거야!”

   두비치나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파랗고 까만 눈이 별처럼 빛났다.

   강찬이는 운명과 맞서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두비치나가 멋져 보였다. 이런 아이가 건안성에 비극을 몰고 올 불길한 존재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밤하늘 별빛 아래서 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마술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별똥별이었다. 두비치나는 별똥별의 저주로 마술을 망쳤다고 투덜거렸다. 어쩌면 당나라가 조만간에 쳐들어올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두비치나, 별똥별이 모두 저주는 아니야. 별똥별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려주기도 해. 분명한 것은 별똥별은 하늘의 계시고, 뭔가 특별한 일이 이곳 건안성에서 벌어질 것 같아. 그게 뭔지 모르지만, 전쟁은 확실히 아니야. 저기 활처럼 생긴 별자리 보이니?”

   “글쎄, 잘 모르겠는데.”

   두비치나는 강찬이가 가리키는 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내 손이 가리키는 별을 잘 봐봐. 이렇게, 이렇게 별들을 연결하면 시위를 당기는 활처럼 보이지 않아?”

   “와, 진짜 활이다.”

   “그렇지? 저 별자리 이름이 호시야.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면 저 별자리에 이상한 조짐이 생겨. 살펴보니 당분간 전쟁은 없겠다. 고로 불길한 일은 없을 거야.”

   “다행이다.”

   강찬이와 두비치나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이번에 두비치나가 자신이 아는 별자리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하나 알려줄게. 이것도 로제트가 알려줬는데, 네가 말한 호시 있잖아. 그 별들을 이렇게, 이렇게 연결하면 커다란 개가 된다. 잘 봐. 여기 다리도 있고 꼬리도 있지?”

   “오, 정말 그렇게 보인다!”

   “옛날에 굶주린 여우가 나타나서 가축과 사람들을 마구 잡아먹었대. 그런데 이 여우가 매우 빠른 거야. 사냥꾼의 화살로도 잡을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커다란 개를 풀어놓았지. 그 개 이름이 뭐더라? 암튼 그 개가 몇 달이나 쫓아가서 여우를 잡았어. 그 일로 개는 저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대. 서양에서는 영웅들이나···.”

   두비치나가 자신이 아는 별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강찬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삐죽 새어 나왔다. 별자리 얘기를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좋아하는 별 이야기를 마음껏 해서 그런가, 문득 강찬이는 걸걸비우한테 화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졌다. 

   강찬이의 어두운 마음에서도 별들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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