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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Sep 03. 2023

9. 빗나간 화살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다음 날 강찬이가 경당 앞 골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곳에서 기다리던 남철이가 다가와 귓속말했다. 

   “너무 걱정 마. 내가 알아서 처리했어.”

   “뭘?”

   강찬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다.

   “걸걸비우 말이야, 오늘 함부로 나대지 않을 거야.”

   남철이가 으쓱대며 말했다.

   강찬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남철이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그만 좀 괴롭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남철이는 강찬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 일인데, 오히려 안 좋은 소리를 들어 당황했다.

   “아니, 나는 네가 좋아할 줄···. 그럼, 지금 가서 맘대로 쏘라고 할까?” 

   남철이가 강찬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잠깐만.”

   강찬이는 방금 전까지 걸걸비우한테 사실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나쁜 마음이 자라났다. 남철이 협박으로 걸걸비우가 활을 힘껏 쏘지 않는다면, 문제의 화살이 걸린다고 해도 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굳이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을까? 사실이 알려지면 스승님과 친구들은 강찬이를 비난할 것이다. 특히 강찬이는 자신에게 실망할 아버지를 볼 자신이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네 입장도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강찬이의 말에 남철이는 멋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술단련장에는 많은 아이들이 와 있었다. 모두 한 쪽 어깨에 활과 화살이 담긴 화살집을 메고 있었다. 듬직한 그 모습이 꼭 어린이 기마무사처럼 보였다.

   강찬이는 눈으로 걸걸비우를 찾았다. 걸걸비우는 다른 아이들과 멀찍이 떨어져 홀로 있었다. 어깨에 메고 있는 활과 화살집은 어제 본 것과 같았다. 

   강찬이는 한숨이 나왔다. 자신이 비겁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말하고 용서를 구할 용기조차 없다는 것에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이번 한 번만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는 열망이 더 강렬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시는 질투에 눈멀어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무술 스승님이 오시고, 활쏘기 시험이 시작되었다.

   “다들 열심히 연습했겠지. 너희들의 멋진 솜씨가 기대되는구나. 첫 번째로 실력을 보여 줄 사람은 강남철이다. 남철이 나오도록.”

   스승님 말씀에 남철이가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동안 배웠던 대로 활을 쏘았다. 화살이 탁, 탁, 탁 과녁에 꽂혔다. 일곱 번째 화살이 과녁 정중앙을 맞혔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스승님이 무서운 눈초리로 아이들에게 경고했다. 활을 쏠 때는 정신을 집중해야 하므로 함부로 소리를 내면 안 되었다.

   세 번째 차례는 송강찬이었다. 앞으로 나간 강찬이는 눈을 감고 머릿속을 비웠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활을 당겼다. 화살이 탁, 탁, 탁 과녁에 꽂혔다. 과녁 정중앙을 맞힌 화살은 하나도 없었지만 열 대 모두 두 번째 원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걸걸비우가 다음 차례다.

   ‘우리 말갈 사람은 피하지 않아. 온 힘을 다해 보여주겠어!’

   걸걸비우는 과녁을 향해 활을 쏘기 전, 뒤돌아 아이들을 차례차례 쏘아보았다. 강찬이와도 시선이 마주쳤다. 강찬이는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걸걸비우가 활을 높이 쳐들었다. 활시위를 평소보다 더 힘껏 잡아당겨 과녁을 향해 쏘았다.

   “명중!”

   스승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명중.” 

   “명중.”

   “명중.”

   명중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이들 얼굴은 험악하게 구겨져 갔다. 걸걸비우를 노려보며 잘못되기를 바랐다.

   반면 강찬이는 이번 한 번만 무사히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걸걸비우가 화살을 활에 메길 때마다 긴장돼서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러다가 화살이 무사히 활에서 떠나면 그제야 안도하며 숫자를 셌다.

   ‘아홉. 이제 한발만 남았어. 제발!’

   강찬이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걸걸비우를 바라보았다. 

   걸걸비우가 화살집에서 마지막 열 번째 화살을 꺼냈다. 

   ‘잘들 보라고! 누가 고구려 무사인지를!’

   걸걸비우가 활에 화살을 메겼다.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때 뿌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평소 걸걸비우라면 그런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이들한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서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에서 금이 간 화살이 바르르 떨렸다. 

   빠지직!

   화살이 두 조각으로 부서져 제멋대로 튕겨 나갔다. 날카롭게 부서진 화살 한 조각이 걸걸비우의 오른쪽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아! 으아!”

   걸걸비우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감싼 손에서 빨간 피가 새어 나왔다. 그걸 본 강찬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나마 다행히 부서진 화살은 걸걸비우의 눈을 피해 뺨을 스쳐 갔다. 스승님은 혹시 모른다며 의원한테 가서 치료를 받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보호자로 송강찬을 지목했다.

   걸걸비우의 상처를 본 의원은 실명 위험은 없으나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 다음 상처에 약을 바르고 무명천으로 얼굴을 칭칭 감싸주었다.

   그렇게 치료를 받은 후 그 둘은 경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걸비우는 성난 사람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아무래도 어젯밤 강찬이 행동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 없이 얘기를 꺼내면 스승님이나 아이들은 강찬이 편을 들 것이 뻔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지만 따질 수 없어서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두운 얼굴빛으로 걸걸비우를 뒤쫓아 가던 강찬이가 걸음을 멈췄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미···. 미···. 미안해. 미안해!”

   그 소리와 동시에 걸걸비우가 뒤돌아 강찬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강찬이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걸걸비우가 강찬이 몸 위로 올라탔다. 불끈 쥔 주먹으로 강찬이를 내리쳤다. 강찬이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걸걸비우는 강찬이가 가만히 맞고만 있자, 더는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 왜 내가 싫어? 도대체 왜?”

   “···활. 활을 잘 쏘잖아. 네가 온 후부터 아버지가 달라지셨어.”

   강찬이가 솔직히 고백했다.

   “뭐? 뭐라고?”

   걸걸비우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어이가 없었다. 강찬이 몸에서 내려오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강찬이가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났다. 

   “하기 싫은 무술 연습을 매일 해. 매일 지옥이야.”

   “그게 내 잘못이야?”

   “알아. 네가 아니라 내가 못났다는 거. 근데 어제 아버지가 널 보면서 웃는데, 그만 이성을 잃었나 봐. 나도 모르게 화살에 손을 댔더라고. 정신을 차리고 망가뜨린 화살을 화살통에서 꺼내려는데 네가 온 거야.”

   강찬이가 어젯밤 상황에 대해 차분하게 얘기했다.

   “아, 그때?”

   걸걸비우는 어젯밤에 강찬이가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이 생각났다.

   “맞아. 그때, 난 사실을 말할 기회를 놓쳤지. 오늘 아침에도 기회는 있었어. 근데 진실을 말한 다음···. 두려웠어. 사람들의 시선이. 특히 아버지가 실망하실 걸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결국 네가 다쳤지. 다 내가 잘못이야. 미안해.”

   걸걸비우는 가만히 강찬이의 말을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엄청 얄미워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자신과 비슷해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아이들 말에 상처받는 자신처럼 아버지 말에 상처받는 강찬이 모습이 그려졌다.

   “이젠 안 두려워?”

   “두려워. 하지만 내 잘못이잖아. 난 네가 여전히 미워. 그렇지만 나 때문에 누군가 다치는 건 싫어. 그게 너라도.”

   “좋아. 네 사과 받아주지. 대신 이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뭐? 왜?”

   강찬이가 놀라 되물었다.

   “나도 너 싫어. 하지만 성주님이 실망하는 건 더 싫어.”

   걸걸비우는 그렇게 말한 다음 뒤돌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천천히 걸었다. 그 옆으로 강찬이가 다가왔다. 둘은 말없이 나란히 경당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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