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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Aug 28. 2023

3. 건안성에서 첫 마술-1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금전산으로 향했다. 그 무리에 강찬이와 걸걸비우가 끼어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사이좋은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은 일부러 걸걸비우를 툭툭 치면서 지나갔다. 특히 몸집이 큰 포목점 아들 남철이와 대장간 아들 덕수가 가장 심했다.

   “읔, 지린내! 너 또 오줌으로 세수했냐?”

   남철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코를 잡았다.

   유목 생활을 하는 말갈족은 물을 아껴 써야 하기도 하고, 겨울철 피부 보호를 위해 오줌으로 세수하는 풍습이 있다. 그걸 아는 아이들은 걸핏하면 냄새도 나지 않은 걸걸비우를 ‘지린내’라며 놀려댔다.

   “아니.”

   걸걸비우는 늘 그렇듯이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마음속으로는 ‘여긴 우물이 많잖아. 나도 너희처럼 똑같이 우물물로 세수해.’라고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발음이 신경 쓰여서 짧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괴롭히기로 작정한 아이들이라서 답변이 길든 짧든 상관없었다.

   “뭐? 뭐라구? 덕수야, 지린내가 한 말 들었어?”

   남철이가 소리 높여 말하자,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밖에 안 들렸는데. 멍멍. 이렇게 말이야.”

   덕수는 ‘멍멍’을 강조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야, 지린내, 넌 왜 멍멍거려? 니가 개야?”

   남철이가 걸걸비우 왼쪽 어깨를 손으로 툭툭 밀치면서 말했다.

   걸걸비우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럽기보다 화가 났다. 이곳에 오기 전 아버지는 고구려 사람은 마음이 넓고 용맹하다고 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자신과 다르다고 괴롭히는 쪼잔한 녀석들뿐이었다. 

   특히 기대했던 송강찬에 대한 실망이 컸다. 아버지는 건안성 성주의 아들 강찬이 칭찬을 자주 했다. 무술 실력은 형편없지만 지혜롭고 마음이 따뜻해 백성을 위하는 훌륭한 성주가 될 거라고 했다.

   ‘비열한 놈!’

   걸걸비우가 강찬이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강찬이는 일부러 더 크게 웃었다. 걸걸비우가 온 이후, 강찬이는 좋아하는 책과 별 대신 소질에도 없는 칼과 활을 억지로 잡아야 했다. 아버지로부터 매일 걸걸비우와 비교당하며 한심한 놈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짓이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상관없었다. 걸걸비우도 자신처럼 괴롭기만 한다면.

   건안성으로 들어온 유랑놀이패는 금전산 근처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비치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마술 도구를 챙겨 아이들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상수리나무 위에 올라가 상황을 지켜보았다. 

   ‘하여간 어디 가든 저런 애들 꼭 있더라.’

두비치나는 예전에 아이들한테 놀림 받던 자기 모습이 떠올랐다. 화가 났다. 그러나 그보다 상황이 꼬여 싸움이라도 나면 마술하기 곤란할 것 같아 불안했다.

   “잘들 논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한 명을 놀리니, 재밌니?”

   두비치나가 마술의 시작을 알렸다. 상수리나무에서 화려한 재주넘기로 바닥에 폴짝 뛰어내렸다.

   아이들은 또래 여자아이한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켜버려 멋쩍어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까맣고 파란 눈동자.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니 상상조차 해 본적 없던 존재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당황해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러나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힐끗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키득키득 속닥거렸다.

   ‘어휴~ 저 눈빛! 지들은 사람이고 난 괴물인가? 흥, 괴물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두비치나의 눈빛이 뾰족해졌다. 새로운 마을에 들어가면 매번 겪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기분이 더러웠다.

   “쟤 봐. 짝짝이야. 까맣고 파래.”

   “어떻게 사람 눈이 저래?.”

   “재수 없다. 저게 사람이냐? 괴물이지.”

   두비치나는 남철이와 덕수가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비슷하게 흉을 보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무리에서 두비치나가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는 바로 이 무리의 대장 남철이니까.

   “뭐? 괴물? 너 지금 나보고 한 소리야?”

   두비치나는 남철이를 매섭게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 그래, 너 괴물 같아. 고양이 눈도 네 눈처럼 이상하진 않아.”

   말을 더듬던 남철이가 아이들 시선을 의식해서 세게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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