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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Aug 28. 2023

4. 건안성에서 첫 마술-2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두비치나가 씨익 웃었다. 바닥에서 돌멩이를 줍는 척하면서 그동안 매일 연습해서 한 몸처럼 느껴지는 회색 돌멩이를 남철이한테 보였다.

   “잘 봐봐. 너도 이 돌멩이처럼 될 수 있으니까.”

   두비치나가 천천히 손가락을 접어 돌멩이를 감추었다. 주머니에 있는 검은 손수건을 꺼내 오른손을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파란 하늘의 신이시여! 고구려를 지키는 까만 삼족오 신이시여! 당신들의 딸 두비치나가 말하노니 이 돌을 사라지게 하소서.”

   “뭐, 뭐야? 네, 네가 신녀라도 돼?”

   남철이가 말을 더듬거렸다.

   두비치나가 손수건을 치우고 주먹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새끼손가락부터 천천히 펼쳐 보였다. 가운뎃손가락을 폈을 때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사라졌나? 생긴 것부터 괴···.”

   “조심해. 신녀님처럼 주술을 부릴 수 있나 봐.”

   아이들은 두려운 시선으로 두비치나의 손에 집중했다. 두비치나가 마지막 손가락인 엄지손가락마저 펼쳤다. 없어졌다. 아이들이 봤던 회색 돌멩이는 두비치나 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내 이름은 두비치나야. 너, 아까 뭐라고 했지? 다시 말해 볼래?”

   두비치나가 남철이한테 한 발짝 다가갔다. 슬금슬금 뒷걸음치던 남철이가 놀라서 그만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괴물의 ‘괴’짜 소리만 나 봐. 그 순간 넌, 아까 그 돌멩이처럼 될 줄 알아! 그리고 좀 사이좋게 지내라. 쪽팔리게 우르르 이게 뭐냐?” 

   두비치나가 남철이를 한심하게 내려보았다. 그리고 겁에 질려 있는 아이들을 훑어보며 때를 기다렸다. 

   한 번의 마술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의심이 시작될 때 두 번째 마술로 의심의 싹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 그래야 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 놀림당하지 않고 조용하게 지낼 수 있다. 

   두비치나는 머릿속으로 두 번째 마술인 ‘사람 목간 마술’을 그려보았다.

   두비치나가 아이들한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사람 목간을 보여준다. 그다음 숯으로 사람 목간의 왼쪽 팔을 칼로 베듯이 긋는다. 아이들이 사람 목간에 집중할 때 두비치나가 왼손에 낀 반지를 움직여 옷소매를 감춘 피주머니의 끈을 푼다. 그럼 붉은 연지로 만든 빨간 피가 왼손에서 뚝뚝 떨어진다. 그걸 본 아이들은 감히 두비치나한테 대들지 못한다.

   “이상하지?”

   “그러긴 한데, 근데 생긴 것부터···.”

   아주 작은 목소리지만 의심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두비치나가 미소 지었다. 이제 사람 목간 마술을 할 차례다. 

   “하긴 너무 놀라워서 믿기 어렵겠지. 좋아. 한 번 더 보여줄게. 날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잘 봐 둬!”

   두비치나가 사람 목간과 숯 조각을 넣어둔 주머니를 찾아 허리춤을 뒤적거렸다. 없다. 분명 잘 챙겨 놨는데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아까 뛰어내렸을 때 떨어졌나?’

   두비치나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피, 저기 봐. 피야!”

   “으악! 피다!”

   아이들 비명에 두비치나는 몸이 굳어버렸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러 힐끔 왼쪽 소맷자락을 확인했다. 피주머니가 어떻게 풀렸는지 소맷자락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두비치나는 눈앞이 까매지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어젯밤 악몽이, 별똥별이 그리고 두비치나의 저주가 시작된 이곳 건안성이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숨통을 조여왔다.

   “뭐야, 쟤? 보여준다며?”

   “그러게 우린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지 혼자 벌 받았나 봐.”

   “푸하하하. 꼴좋다. 뭐? 날 어떻게 한다고? 네 피나 어떻게 해 봐!”

   상황이 뒤바뀌었다. 남철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두비치나 주변을 빙 둘러쌌다.

   “그만! 다들 그만해!”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강찬이가 나섰다.

   강찬이는 두비치나를 보자마자 어젯밤 엿본 하늘의 계시가 떠올랐다. 천시원에 떨어졌던 수많은 별똥별.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생긴 두 눈동자를 보니 불길한 존재의 등장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비치나를 저렇게 다루면 안 된다. 재앙을 섣불리 건들면 엄청나게 커질 수 있으니까. 

   강찬이는 아이들을 말리며 두비치나한테 다가섰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붉게 물든 왼쪽 팔을 살폈다.

   “괜찮니? 아참, 난 송강찬이야.”

   ‘얜 뭐지?’

   여태까지 두비치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딱 두 가지였다. 깔보거나 두려워할 뿐이지, 강찬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는 없었다. 처음이었다. 

   ‘말을 걸었어! 내게. 먼저 말을···. 놀리는 게 아니라 말을 걸었어!’

   두비치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강찬이를 보았다. 두 눈이 마주쳤다. 두비치나가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마술 실패로 예전의 겁쟁이 두비치나로 돌아갔다. 사람의 눈을 못 쳐다보는. 

   “우선 피를 멈춰야겠다. 아파도 참아.”

   강찬이는 두비치나의 왼쪽 팔을 묶어 주기 위해 자신의 허리끈을 풀었다. 두비치나쪽으로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왔다. 그러자 두비치나가 갑자기 몸을 홱 틀었다. 그리고 뛰었다. 도망쳤다. 

   두비치나는 이 상황이 너무 낯설었다.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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