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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Aug 28. 2023

2. 동명성왕을 꿈꾸는 아이들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요하강이 흐르는 고구려 서북 땅, 그곳을 안시성과 요동성 그리고 건안성이 지키고 있다. 

   그중 가장 넓은 산성인 건안성. 그 산성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금전산이 솟아있고, 그 산을 중심으로 붉은 기와를 얹은 집들이 거미줄처럼 넓게 퍼져 있다.

   금전산 근처에 고구려 남자아이들이 다니는 경당이 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글자를 익히고 역사로 정신을 수양하며, 말타기와 활쏘기 등 무예로 체력을 다졌다.

   경당 안에는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고구려 역사서인 『유기』를 소리 내어 읽고 있는데, 그중 두 명이 눈에 띄었다. 건안성 성주의 아들 송강찬과 이곳에 온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말갈소년 걸걸비우다. 강찬이는 책을 읽으면서도 연신 하품하며 졸린 눈을 비벼댔고, 걸걸비우는 다른 아이들처럼 입을 벙긋거렸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만.”

   스승님이 하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방금 읽은 것처럼 우리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 부인에게서 태어나신 분이시다.”

   스승님은 동명성왕 탄생과 성장 과정을 설명했다.

   “···특히 활을 잘 쏘셨다. 일곱 살 때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그렇게 뛰어나신 분이시기에 남들의 시기와 질투가 끊임없었다. 하루는 부여의 왕자 대소가···.”

   계속해서 스승님은 동명성왕이 부여에서 도망쳐 나와, 온갖 역경을 딛고 고구려를 세운 이야기를 전했다. 듣는 이들의 가슴속에서 고구려에 대한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특히 걸걸비우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나랑 비슷하잖아.’

   걸걸비우는 동명성왕처럼 고난을 당당하게 이겨내, 고구려 사람으로 인정받겠다고 다짐했다.

   스승님은 집중해서 듣는 걸걸비우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바로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는 강찬이를 보자 얼굴이 찌푸려졌다. 

   “송강찬!”

   강찬이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동맹 축제 때 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지 설명해 보아라.”

   스승님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동명성왕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신비로웠습니다. 하늘의 소식을 땅에 전해주는 새처럼 동명성왕은 알에서 태어나셨고요, 그 알은 태양처럼 빛이 났습니다.”

   강찬이가 막힘없이 술술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동명성왕은 고구려를 세우시고 다스리시다가 황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동명성왕의 은혜를 받는 우리 고구려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스승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송강찬은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깊어 아끼는 제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즘 들어 부쩍 수업 시간에 조는 제자를 그냥 눈감아 줄 수는 없었다. 마음에 드는 제자일수록 더욱 강하게 키워야 하는 법.

   “역시 막힘이 없구나. 허나, 네가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한들, 수업 시간에 조는 행동은 옳지 않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대체 밤마다 뭘 하기에 수업 시간마다 조는 게야!”

   스승님이 앞에 놓인 책상을 ‘탁’ 소리 나게 내리쳤다.

   “그게···. 책이 재미있어서 조금만 더 본다는 게, 읽다 보니 아침이 돼버렸습니다.”

   스승님 역정에 강찬이는 거짓말을 둘러댔다. 

   아침까지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책을 보다가 날을 샌 건 아니었다. 책은 아침에도 낮에도 틈틈이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찬이가 푹 빠진 것은 밤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별, 하늘의 기운이었다.


   어젯밤 강찬이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금전산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 있는 너럭바위에 누워 별들을 관찰하며 ‘천문 일지’를 작성했다.

   강찬이는 동명성왕이나 건안성 성주인 아버지처럼 활을 잘 쏘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무술 실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하늘의 별에는 자신 있었다. 하늘의 별을 관찰하고 하늘의 계시를 알아내서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멋진 성주가 되고 싶었다.

   강찬이는 가장 먼저 북극성을 찾았다. 그러고 나서 북극성 가까이 있는 자미궁과 자미원 별자리를 확인했다. 자미궁은 임금님이 사시는 궁궐이고, 자미원은 그 궁궐을 지키는 장군과 신하들의 별이다. 

   그다음에 관찰하는 별자리는 태미원이었다. 이곳은 임금과 대신들이 나랏일을 상의하며 일하는 곳인데, 왕이 앉는 의자인 오제좌가 영롱하게 빛났다.

   마지막으로 관찰하는 별자리는 하늘나라의 도시와 시장에 해당하는 천시원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이곳에서 살았다. 자고로 훌륭한 임금과 신하는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강찬이는 천시원 별자리를 관찰할 때 더욱 꼼꼼히 기록했다. 요즘 들어 돈 꾸러미처럼 생긴 관삭 별자리가 더욱더 빛이 났다. 오곡이 풍성한 가을, 백성들의 삶이 넉넉해져서 그런 것 같았다.

   ‘천문 일지’를 작성한 강찬이는 너럭바위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별똥별 하나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강찬이의 가슴을 두들겼다.

   곧이어 수십 개의 별똥별이 연달아 천시원 쪽으로 떨어졌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많은 별똥별은 처음이었다.

   ‘이건 하늘의 계시야! 백성들 사이에서 중요한 일 생길 모양인데···. 그게 뭘까?’

   집에 온 강찬이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늘의 비밀을 엿본 것 같아 온몸이 짜릿했다. 흥분된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아, 결국 한숨도 못 잤다.     

   그런데 특별한 일은커녕 스승님께 혼나고 거짓말까지 해버렸다. 

   강찬이는 자신의 입에서 그렇게 쉽게 거짓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당당하게 별을 관찰했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남들처럼 칼이나 활을 좋아했으면 경당 스승님들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찬이는 책과 별을 좋아하는 남다른 아이였다.

   스승님은 고개 숙인 강찬이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책을 가까이하는 건 좋다만 체력도 신경 써야지. 하늘에서 동명성왕이 보살핀다고 하더라도, 우리 고구려는 강한 힘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거란다. 송강찬, 앞으로 무술에 좀 더 힘쓰거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강찬이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스승님이 이번에는 걸걸비우를 보며 물었다. 

   “처음 맞이하는 동맹축제겠구나. 너는 동명성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 자랑스럽습니다. 득히 고구여를 만든 동멍성앙이 부여에서···.”

   걸걸비우가 대답을 하자마자, 아이들이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고구려 말이 서툰 걸걸비우는 얼굴이 빨개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스승님이 헛기침했다. 그제야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걸걸비우가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말에 서툴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너희들이 더 잘 보살펴줘야겠지.”

   스승님이 매서운 눈초리로 아이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동맹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동맹축제 때 사냥대회가 있는 거 다들 알고 있지? 그래서 내일은 활쏘기 시험을 보기로 했다. 다들 잘할 거라고 믿는다. 특히 걸걸비우.”

   스승님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걸걸비우를 바라보았다.

   “너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 동명성왕처럼 멋진 활 솜씨를 보여주렴. 그리고 너희들도 걸걸비우를 본받아서 무술에 더욱 매진하도록!”

   스승님은 아직도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걸걸비우를 위해 말했지만, 그 말은 경당 안에 있는 아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아이들은 서로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눈빛을 걸걸비우만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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