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아 Aug 28. 2023

1. 두비치나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고구려의 유명한 마술사가 된 두비치나가 무대에 오른다. 사람들이 두비치나의 색깔이 서로 다른 눈동자를 본다. 오른쪽 눈동자는 까맣고, 왼쪽은 파랗다. 힐끔거리는 눈초리, 비웃음 섞인 속삭임.

   그래도 두비치나는 당당하다. 왜냐하면 마술사이니까. 두비치나는 자신의 까맣고 파란 눈동자를 사람들과 같은 색으로 바꾸는 마술을 한다. 

   그 마술로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변한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게.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눈동자 색도 달라진다. 

   오직 두비치나만 그대로다. 

   화가 난 사람들이 두비치나한테 미친 듯이 달려든다. 자신을 괴물로 만들었다며 두비치나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 화형대에 매단다. 

   고구려 무사들이 불화살을 겨눈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수백 개의 불화살이 두비치나를 향해 날아온다.     

   “풀어! 이거 풀라고! 같아지고 싶었어. 그게 뭐, 죽을죄야?”

   두비치나가 몸부림치다 두 눈을 떴다. 

   가을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까맣고 파란 눈동자에서 빛났다. 두비치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돌려 양옆에 누워있는 엄마와 아빠를 확인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주변으로 유랑놀이패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두비치나가 속한 유랑놀이패는 고구려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내일이면 고구려 서북 끝자락에 있는 건안성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곳은 엄마와 친아빠가 만난 곳. 

   그래서 그런지 이번 악몽은 평소보다 더 끔찍했다. 

   “휴우~ 싫다! 진짜 싫어! 내 저주가 시작된 곳.”

   두비치나가 하늘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그때 별똥별이 떨어졌다. 수십 개의 별똥별이 꿈속 불화살처럼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두비치나는 별똥별을 보면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불행하게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불길해! 하필 건안성 가는 날 별똥별이라니!’

   두비치나는 눈을 감았다. 감은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여덟 살 때였다. 그날도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숨어서 울고 있었다. 엄마가    그런 두비치나를 발견하고 숨겨왔던 진실을 밝혔다.

   유랑놀이패 춤꾼인 엄마는 건안성에서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소그드 상인인 마니약을 만났다. 둘은 첫눈에 반해 뜨겁게 사랑했지만 서로 가는 길이 달라 헤어졌다. 그 후 사랑의 결과물인 까맣고 파란 두 색깔의 눈동자를 가진 두비치나가 태어났다.

   “뭐? 괴물? 아니, 자식이 엄마 아빨 닮지, 누굴 닮아? 내뱉는다고 다 말이 되는 줄 아나. 웃기고들 있어. 두비치나, 그런 잡소린 신경 쓰지 마. 그냥 재수 없다 퉤퉤! 침이나 뱉어버려!”

   엄마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우리 딸, 엄마랑 함께 춤출까? 넌 엄말 닮아 팔다리가 길잖아. 춤추면 엄청 예쁠 거야! 상상해봐. 네 춤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 그깟 눈 별거 아니야, 넌 춤만 잘 추면 돼!”

   두비치나는 물끄러미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검은 두 눈동자가 더 반짝거렸다.

   ‘파란 눈동자는 친아빠를 닮은 거라고! 그럼 내 아빠는? 지금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란 말이야? 거짓말!’

   두비치나는 엄마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라니! 그건 짝짝이 눈만큼이나 끔찍했다. 

   그런데 조금 마니약이 궁금했다. 보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두비치나는 파란 눈의 서역인을 보면 먼저 다가가 물었다.

   “마니약?”

   그럼 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두비치나의 친아빠가 아닐뿐더러 ‘마니약’ 이름을 가진 서역인 친구도 없다고 했다. 

   매번 같은 답변에 실망했지만 두비치나는 서역인을 볼 때마다 이름을 물어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친아빠를 찾아내기만 하면, 이 저주에서 풀려날 것 같았다. 왠지 모르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가 마술사 로제트를 만났다. 로제트는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카슈가르에서 태어났는데, 대륙의 끝이 궁금해서 마음이 맞는 동료 마술사들과 함께 둔황을 걸쳐 당나라를 통해 고구려로 들어왔다.

   두비치나의 놀이패와 로제트의 마술패는 함께 고구려 곳곳을 돌아다녔다. 일 년 넘게 두 유랑패가 어울려 다닐 때 두비치나는 로제트로부터 마술을 배웠다.

   두비치나는 그 마술로 파란 눈동자를 까맣게 바꾸진 못했지만,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의 입은 막을 순 있었다. 

   새로운 마을로 들어갔을 때 아이들과의 첫만남이 중요했다. 자신을 보고 비웃는 아이들 앞에서 ‘돌멩이 없애기’ 마술과 ‘사람 목간’ 마술을 펼치면, 아무도 ‘괴물’이라는 소리를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