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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숫집에 들어섰을 때 영인은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 양쪽 팔을 올리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의자를 당겨 앉는 나를 보더니, 혹시 배드민턴을 쳤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며, 까마귀 웃음소리를 냈다. 자신 역시 무심재 노인에게 붙들려 배드민턴을 치고 왔다면서. 그리곤 물병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아주머니를 불러 국수 두 그릇과 파전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그녀가 테이블에 올려놨던 핸드폰을 내게 밀었다. 쑥스러운 듯 웃으며 소녀처럼 양쪽 손바닥으로 뺨을 감쌌다. 핸드폰 안에는 한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금박의 테두리에 붉은 직인이 찍혔는데, 자원 순환 캠페인에 적극 참여한 우수 직원에게 수여한다는 내용을 담은 표창장이었다. 수상자란에 그녀 이름이 있었다.
영인은 우리 아파트뿐 아니라 그다음 주 내내 주변의 아파트란 아파트는 다 돌며 폐건전지를 모았다고 했다. 그녀가 모은 폐건전지는 무려 30kg에 달했는데, 이제야 그녀는 진정한 에코리더가 되었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한층 높아진 까마귀 웃음소리였다.
집 앞이었다. 번호 키를 눌렀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번호 키 누를 때 신호음도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1105, 딸의 생일이자, 비밀번호를 수없이 눌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 집이 아닌가, 고개를 들어 문의 호수를 확인했지만, 틀림없는 우리 집이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조바심이 났다. 문득 문손잡이에 띠처럼 붙어 있는 광고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열쇠 집 전화번호였다. 현관문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핸드폰의 숫자를 눌렀다.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받았다. 가게에서 가까운 아파트라 원래 석 장인데 이만 원에 해 주겠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이만 원이라는 말에 선뜻 대답을 못 하는데, 도어락 하단에서 빨간빛이 반짝거렸다. 건전지 교체 메시지였다. 전에 들었던 노랫소리가 그제야 생각났다. 언제부턴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마트에서 건전지를 새로 사 왔다. 현관 안쪽에서 도어락 커버를 엄지로 눌러 천천히 밀어 올렸다. 둥지 속 알처럼 건전지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건전지를 하나씩 꺼냈다. 차가울 거로 생각했는데, 막 꺼낸 건전지에서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