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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나 Aug 21. 2023

에코리더

8

   딸의 방문은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기도 두려웠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온갖 물건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책꽂이에서 방바닥을 향해 무너진 책 더미, 열린 옷장이 뱉어 낸 옷가지들, 엎어진 서랍들이 포개져 있었다. 유서를 찾겠다며, 혹시 모를 단서가 있을 수 있다며, 형사들이 방 뒤지고 난 그대로였다.

   딸의 방이 원래 어떤 모습인지 알았지만,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깔끔한 딸은 자신의 물건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걸 몹시 싫어했다. 방향만 틀어 놔도 짜증을 냈다.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방은 직접 치우고 정리하곤 했다. 그런 딸이 언제부턴가 퇴근하면, 옷도 갈아입지 않고 불 꺼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방 안을 하나하나 치우면서 오래도록 딸을 느꼈다. 침대 밑에 딸의 재킷이 구겨진 채 처박혀 있는 게 보였다. 첫 출근을 기념해 사 준 옷이었다. 그걸 보자, 딸의 고통과 한숨을 다시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의사는 약의 처방을 바꿔 주면서 자조 모임을 권했다. 자식을 자살로 잃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뭘 어쩌자는 건가, 생각했지만 처음으로 참석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 없이 참석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들은 서로 눈인사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이미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는 듯 그들은 자연스러웠고 차분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술 냄새가 진동하는 중년 여자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여자는 비어 있는 의자를 거칠게 끌어당겨 앉더니, 아예 반말지거리로 소리쳤다. 

   “자식새끼 죽은 마당에 점잖은 척들 하긴. 

   중년의 여자는 악을 썼다. 

   “내 죽어서 이 년을 만나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리고 꼭 물어볼 거야. 도대체 왜 그랬냐고…”

   결혼 날짜를 받아 놓은 딸이 아무 이유도 없이 약을 먹었다고 했다. 여자는 아예 바닥에 아이처럼 두 발을 뻗고 앉아 통곡했다. 탈 만큼 타야 잦아드는 불꽃처럼 그녀의 울음은 모든 걸 모두 소진하고 나서야 긴 흐느낌으로 마무리되었다. 달라질 건 없었다. 그것으로 자조 모임은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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