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리기보다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갈 거야.
갑상선 저하증을 겪기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항상 병원을 나오기 전
"혹시 약을 줄일 여지는 없을까요?"
라고 묻고 싶지만 요즘은
"수치 조절 잘 되고 있네. 이만하면 괜찮아."
라고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난 의사 선생님의 말을 꽤 듣지 않는 불량 환자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약 복용량에 비해 갑상선을 포함한 몸의 상태가 좋지 않게 나올 때가 있다. 삼 개월이 검진 주기라 한 번 정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사 선생님도 지켜보자 하시며 크게 염려하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검진 때마다 연달아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결과가 나타나면 이제 혼날 준비까지 하며 말을 들어야 한다.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제? 잘 쉬어야 한다고.
요즘 뭐 하고 다니노?"
"아니. 그게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안 하고 살면 더 병이 날 것 같은데 어떡합니까?"
"너 몸만 상하지 뭐.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지.
이러면 이제 약을 더 늘릴 수밖에 없다."
"조심해서 잘 관리해 볼게요."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의 마음도 답답하다.
'왜 수치가 이렇게 나쁘게 나오지? 내가 느끼는 컨디션이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바꿔야 하는 걸까?'
속상한데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묵직한 돌을 얹어 놓은 것 같다. 어느 정도로 얌전히,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렇듯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반강제적으로 삶의 패턴이나 생활 습관에 제약이 가해지는 상황은 불편하면서도 내면의 잠재적 욕구를 억압하는 또 다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난 이런 훈계를 들었다고 찍소리 안 하고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환자가 아니다. 심장을 뛰게 하고, 기대감으로 흥분되는 설렘을 아직은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단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되,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수치가 들쑥날쑥 적정 경계선을 넘어가면 운동의 기준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이 적정하다고 했는데 횟수가 좀 많았나? 강도를 줄여야 하나?'
'유튜브에서는 매일 조금씩 하는 운동이 좋다고 했는데
어떡해야 하지?'
수면도 걱정이 된다.
'일단 다른 일들은 뒤로 미워두고 잠을 최우선으로 자야 하나?'
머리로는 갈등을 하기 시작하지만 평소 내가 해오던 생활 패턴에 심리적 불협화음을 만들며 꾸역꾸역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얕은 잔꾀를 하나 부린다면 검진 날짜가 다가오면 잘 자고 푹 쉬었다 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검진 결과가 위태로워도 그냥 달리고 풀마라톤 도전을 했었다. 잠을 좀 덜 자도 새벽 4~5시에 일어나 가고 싶었던 새벽 등산을 가고 오후에 일하러 갔다. 세 아이들과 옥신각신 하루를 보내지만 고요히 만끽할 수 있는 밤의 공기가 좋아 밤늦게 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했었다. 잠이 부족하면 잠시 쪽잠을 자기도 했지만 평소 좋아했던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순간의 도파민에 기대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이나 가슴을 뛰게 하는 기회가 오면 포기하거나 미루기보다 도전하고 성취하는 길로 몸을 움직였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되, 운동은 규칙적으로 하자는 마인드를 가졌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책이든, 영상물이든, 사람이든, 자연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나를 기분 좋게 해 줄 수 있다면 끌어당겨 행복을 보태는 쪽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과부하가 걸리면 푹 쉬어주는 브레이크 거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이렇게 생활하니 어느 순간 신기하게 수치가 안정적이 되어 있었다. 약을 줄이는 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죄의식을 갖지 않고 의사 선생님과 밝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수치가 좋지 않으면 남편에게도 괜스레 미안한데 환한 목소리로 결과를 들려줄 수도 있게 되었다.
최근에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서 피곤한 상태가 더 길어지곤 했다. 하지만 며칠 전 병원 진료에서는 다행히 수치가 나쁘지 않았다. 다른 것보다 규칙적으로 하는 운동과 소식의 도움이 큰 듯했다. 잠은 줄여서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등산을 가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 강좌를 수강신청해 놓았기에 당분간은 더 빡빡한 생활을 해야 한다. 꽤 괜찮은 일자리가 생기면 추가해서 일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잠이 더 부족해지더라도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밤이든, 새벽이든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다. 하지만 생활이 타이트해져도 운동 루틴은 그대로 지켜나갈 생각이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멋진 도전과 여행을 제안받을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년이 다 되어가니 '갑상선 저하증'이라는 꼬리표는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다. 하지만 나를 내려 앉히는 불편함이 아닌 몸 상태를 체크해 주는 건강 지킴이로 여기기로 했다. 그러야 천방지축 기질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게 살아도 마치 호랑이 선생님처럼 나를 제자리에 가만히 앉혀 줄 것 같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난 왈가닥 불량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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