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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프코스(21km)를 10km만 뛴 참가자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들떴고 행복했고 만족스러웠다.

by 글쓰는 스칼렛



나는 잘 못 뛸지 알고 있었다.

4월 대구마라톤 이후, 달리기 연습이라고는 고작 러닝머신에서 4~5번 정도, 야외에서는 세 번 뛴 것이 전부였다. 왜 이렇게 무모했는지, 왜 이런 섣부른 선택을 했는지, 연습도 제대로 안 할 거면 왜 신청을 했냐고 누가 말을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한 가지 믿고 있는 것이라면 다른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주 2회 댄스, 주 2회 요가, 주 1회의 등산과 더불어 집에서 복근과 상체를 위한 운동도 틈틈이 하고 있었다.


자격증 공부와 대학교 저녁 수업, 학원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며 도저히 뛸 시간은 확보할 수가 없었다. 신청할 때만 해도 하프코스는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자만했었다. 그동안의 완주 경험을 토대로 막연한 희망을 꿈꿨다고나 할까? 하지만 생각은 생각인 거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느끼는 것과 깨달은 점은 있었다. 그것을 적어보려 한다.



1. 각각의 운동마다 강화시키는 부위가 다르다.


이번 대회의 최대의 문제는 '발목 통증'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무리하지 말자, 가볍게 천천히 뛰자.'


마음을 먹고 통통통 가볍게 뛰려 했다. 하지만 5km 지점에 이르니 발목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지고 욱신거렸다.





숨이 찬 게 아니고 발목과 종아리가 아팠다. 브런치 연재글을 위해 전날도 등산을 가서 높은 경사로 발을 움직였다. 쉬어감이 없는 근육의 뭉침이 요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발이 지면에 탁탁 닿으면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의 운동생활에서 발목을 강화시키는 루틴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등산은 허벅지와 엉덩이를 강화시키긴 했지만 심폐 영역에서 러닝보다 느렸고 주기가 길었다. 요가는 전신을 활용하지만 스트레칭이 가미된 긴 호흡의 명상 수련이었다. 댄스가 유산소 운동의 대체제가 되기에는 이번 선생님 춤 선별이 많이 느슨한 편이었다. 난 더 과격하고 격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과 거리면에서 다른 선생님을 찾아보는 게 쉽지 않았다. 버티지 못하고 고통의 신호를 보내는 발목을 느끼면서 마라톤을 도전하려면 러닝의 연습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운동을 안 한 것보다는 다른 운동들이 더 쉽게 점프할 수 있는 지지대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종목에서 효과를 보려면 결국 그 분야에서 집중적이고 규칙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그래도 마라톤 대회는 역동적이고 재미있었다.



비록 나는 중간중간 걷기도 했지만 잘 달리고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가는 길에 마주쳤던 선두그룹의 남자선수들. 어쩜 저렇게 다부진 근육으로 쭉쭉 뻗어가며 달릴 수 있는 건지... 내가 닿지 못하는 경지의 전문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예쁜 의상의 여자 선수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요소다. 잘록한 허리, 화려하고 적당히 짧은 의상, 탄탄한 근육의 건강한 아가씨들을 보는 것은 부럽기도 하지만 신선한 생동감도 전해준다.

옷을 맵시 있게 차려입고 온 모습을 보면 나의 다음 경기 복장도 구상해 보게 된다. 여러모로 긍정적인 자극을 시원한 바람처럼 건네주고 가는 것이다. 인구 고령화가 점점 짙어지는 대한민국에서 젊은 청춘들과 열정을 가득 실은 다양한 연령대의 선수들을 볼 수 있는 대회장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축제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3. 흐뭇한, 그래도 생각보다 잘 나온 기록




내가 얼마나 자주 걸었는지 표가 말해준다.

8분가량을 걸었음에도 불과하고 나는 10km를 1시간 4분에 들어왔다. 러닝 시간은 55분이었고 시계를 멈춘 적도 없는데 평균 페이스는 6분 30초대로 나왔다. 70%를 4 영역 이상에서 뛰었다는 기록도 기분이 좋았다.


연습이 부족하다고 아예 대회 출전을 포기했으면 10km를 뛰는 경험은 못 했을 것이다. 숨이 차기도 하고, 발목이 아프기도 했다. 다른 선수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몇 번을 인도에서 걸었고 선수들의 동영상과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서기도 했다.


5km 지점에서 찌릿찌릿한 발목을 아파하며 걷기 시작했을 때 출발점까지 가장 가까운 길을 안내원에게 물어볼까도 생각했었다. 극단적으로 부족한 연습량임에도 출전한 내가 너무 무모한 건 아니었는지 자기 비난이 고개를 들었다. 과거 일곱 번의 하프 출전이 한 번도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갑자기 신체기량이 줄어들었는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발목은 통증을 쏘아 올렸고 나의 뇌는 복잡한 심정과 앞다투어 싸워댔다.


하프 때도 걷지 않았는데 인도를 걸어 나갔다. 조금의 휴식을 취한 후, 조금만 더 뛰자며 도로의 선수들과 합류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파스도 뿌렸다. 뛰는 기쁨이 다시 느껴졌을 때 순간의 희열에 의의를 두자고 다독였다. '하프'에 도달하지 못하는 걱정보다 10km만 뛰더라도 즐기자고 토닥였다. 즐겁게 달렸고 아프면 다시 쉬기도 했다.


난 왔기에 달릴 수 있었다!

10km도 충분히 가치 있는 거리다!

달리기 연습을 못 했을 뿐 그나마 다른 운동을 꾸준히 했기에 이 정도라도 달릴 수 있었다!

멋진 선수들을 볼 수 있었고 대회장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덤으로 얻어갈 수 있었다!



아쉬운 감정보다 참가하기 잘했다는 흐뭇함이 내면에 남겨졌다. 마라톤 대회는 변함없는 축제의 장이었고 그곳에서 흘린 땀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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