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단풍 시즌을 맞아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공룡능선을 타러 속초로 떠나게 되었다. 사실 이번 등산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일상이 빡빡하게 바쁘기도 했고 운동을 덜하니 체력도 줄어든 것 같아 긴 거리의 등반은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1년 전, 우연히 입주 박람회에서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된 동생으로부터 떠나기 몇 주 전 설악산 등반 제안이 왔다. 그동안 여러 번 산행 제안이 있었지만 나랑 시간이 안 맞아 번번이 무산되었던 것이 마음에 미안하게 남겨져 있는 터였다. 비 예보도 있고 확신이 서진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인생 신조가 있지 않았던가.
기회가 온다면, 마음이 움직인다면,
움찔거리지 말고 실행하라!
그렇게 긍정의 대답을 남기며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게 되었다.
원래는 화요일 새벽에 등반을 시작해서 소청 대비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수요일 저녁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끊이지 않는 비에 설악산 자체에서 '부분통제'를 실행했다. 말이 부분이었지 사실상 가능한 등산로 대부분의 통제였다. 대피소 취소문자가 왔다.
'대구에서 광명'으로 KTX를 타고 가서, 거기서 다른 일행을 만나 차로 속초에 도착했던 우리는 멘붕상태가 되었다. 쏟아지는 폭우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비를 맞으며 무거운 배낭을 메고 등반을 하는 것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고생만 오지게 하고 하나도 즐겁지 않을 등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교통비가 아깝기는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명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차로 광명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다시 광명으로 돌아오니 이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 같았다. 일기예보는 비는 오지만 흐림으로 다음날 기상 상태가 최악은 아니었다. 기다려 본다면 오후 늦게 '설악산 부분 통제'가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속초로 다시 이동해서 일단 밥을 먹고 시간을 두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맛집을 찾아 정한 생선구이 가게는 긴 줄이었지만 테이블이 많아 생각보다 대기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밥을 맛있게 먹고 차에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니 '통제가 풀렸다'는 희소식이 들렸다. 우리는 숙소를 부랴부랴 잡고 짐을 챙기며 내일의 등반을 준비했다.
십시일반 서로가 가져온 간식이다. 세 사람이 각자 가져온 간식을 서로 모았더니 풍성했다. 우리는 똑같이 나누어 개인가방에 꼼꼼히 챙겨넣었다. (물 두 개는 따로 챙겼다) 다행히 설악 등반동안 충분히 들고 다닐 수 있을만큼 무겁지 않았다. 그리고 끝난 후에도 간식은 남았다.
당일 아침은 냉동밥을 데워먹고 믹스 커피를 따뜻하게 한잔 마신 후, 우리는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새벽이지만 주차장은 서둘러 출발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벽 2시 40분쯤 등반을 시작했다. 비는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부슬부슬 아주 약하게 내렸다. 처음에는 우비를 쓸 필요도 없었다. '곰탕'이란 용어처럼 안개가 자욱했지만 멋진 풍경을 설악이 허락해 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랜턴을 착용하고 우리는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길 본격 진입로부터는 사람들이 몰려 차례를 지키며 천천히 걸어야 했다. 기온은 낮았지만 몸에서 나는 열기와 땀으로 옷이 짧아도 처음에는 춥지 않았다. 그런데 괜히 아침에 머리를 감았더니 축축한 머리카락과 함께 멈춰서 쉬는 구간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잠바를 입고 우비를 걸치며 몸에 보온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차츰 주위는 밝아지고 '소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한 우리는 어느새 '비선대'를 지나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가 오전 6시 30분가량이다. 이렇게 일찍 출발하는 코스를 2년 전, 마등령 삼거리를 점심쯤인 12시 30분에 도착했었다. 랜턴이나 보조 배터리도 없이 공룡능선을 지나겠다는 나를 지나던 할아버지가 말리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설악산이 혼자서 실행하는 국립공원 투어의 마지막 장소였는데 허무하게 끝날까봐 울상과 걱정이 한가득이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 운명처럼 '공룡 능선'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안내를 해 준 인생등반 멘토를 만났었다. 글을 적자니 그분의 고마움이 다시 한번 따뜻이 떠오른다.
해가 떴지만 마등령 삼거리부터는 곰탕이었다. 설악산의 비경은 구경할 수가 없었다. 아쉬운 데로 가까운 단풍과 바위를 구경하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이때부터 놀라운 경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2부에서 다시 적도록 하겠습니다)
-설악산 2부 글입니다 -
https://brunch.co.kr/@55864ebdcffb4f7/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