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행위이든 어쩔 수 없이 수동으로 이끌려 가는 것보다 목적이 있으면 몰입도와 집중도에서 차이가 난다. 3년 전, 처음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무슨 동작인지 모르고 따라가기도 바빴다. 워낙 뻐덩뻐덩한 몸뚱이라 앞으로 몸을 숙여도 손이 발끝에 닿지 않았고, 나이 많은 언니들도 버텨 주었던 팔근육에 비해, 나의 여리한 막대기 팔은 시간을 잴 틈도 없이 폭삭 주저앉기 일쑤였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은 양다리가 덜덜 떨려서 뒤에 앉은 최고참 언니가
"저 다리 떠는 것 좀 보래이~~
참 열심히 한다~"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지금은 인정해 주신다.
"아이고, 많이 늘었네~~ 이제 쑥쑥 힘주고 후딱 잘 들어 올리네!"
삼 년이 지나니, 부들부들 떨던 신참 수강생에서 이제 선생님 바로 옆에서 제법 동작들을 소화시키는 선임 격이 되어 있다.
못하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감은 확장되었고 어느새 나는 산에서도 요가를 찍는 낯 두꺼운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인스타의 팔로우 중 80%는 요가 강사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틈틈이 완벽한 유연성과 기술들을 탐색한다. 닿지 않을 것 같은 손가락이 발끝까지 뻗쳐 결국 교점을 이루었듯이, 어떻게 저런 동작이 가능한지 구경만 하던 위로 향한 활자세 (우르드바 다누라사나)가 어느 순간 되었듯이, 언젠가 나에게 성취감을 안겨줄 새로운 동작들을 끊임없이 꿈꾼다.
헬스장, 근력 운동은 재미없고 내키지 않는다며 밀어냈었다. 그런 내가 틈틈이 홈트를 통해 복근과 상체운동을 강화시키는 것은 모두 요가를 위해서다. 유연성에 있어서는 나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남편인데 튼튼한 팔근육으로 인해 한번에 두루미 자세(바카아사나)를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중급이상의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복근과 상체의 힘이 받쳐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알고 있는 나다. 내키지 않지만, 귀찮을 때도 많지만 샤워를 하기 전에 웬만하면 10분 이내라도 짧은 홈트를 하려고 노력한다. 10분이 짧다고? 그게 무슨 운동이 되겠냐고? 10분을 무시하지 마시라~~ 플랭크 몇 분에 복근 운동 몇 세트만 잠깐 해도 온몸에 열기가 돌고 땀이 난다. 생각 없던 물도 벌컥벌컥 들이킨다. (물을 잘 안 드시는 분들은 짧은 홈트 여러 번을 추천한다. 정말 물이 저절로 마셔지기 때문이다.)
요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유연성도 필수적이다. 그래서 평일 주 5일은 매번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다리를 벌리는 스트레칭을 시켜준다. 마음 같아서는 다리를 앞뒤로 맵기있게 쭉쭉 째고 싶지만 아직은 180도에서 한참 모자란, 택도 없는 각도에서 낑낑거리고 있다. 다리는 평지가 아닌 산을 이룬 각도에서 이제 여기가 한계라며 당기고 찢어지는 고통을 발산시킨다. 딱 10초만 견디자며 부리나케 숫자를 세어들어간다. 남들이 보면 정말 웃긴 자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미세한 전진은 요가 수업때 다른 동작들을 통해 보상을 가져다 준다. 누워서 한쪽 다리를 뻗어 한손으로 잡는 동작도 예전에는 반대편 골반이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골반이 바닥에 붙어 있고 선생님이 다리를 더 높이 올려주시면 신기하게 조금씩 더 올려진다.
'나는 해도 안돼.'
'이건 나랑 적성이 안 맞나봐.'
살면서 수도없이 가졌던 생각이다. 수학과 통계에 약하고 경제용어, 컴퓨터 용어도 책을 펼치면 암흑 투성이다. 외계어가 따로 없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남편이 이 분야에 전문가니 오히려 자꾸 숟가락만 얹지며 무임승차만 하려고 한다. 한입 베어 무는 시도를 겨우 하고나면 소화시키는 것도 세월아 네월아 한 세월이 걸린다.
그런데 요가는 나의 타고난 신체가 적합하지 않을지언정 시도하게 만든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꿈을 꾸게 만든다. 다른 사람보다 덜 휘어지더라도, 닿지 않는 짧은 공간의 거리에서 낑낑거리며 안달복달하더라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묘한 중독성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확실한 목표도 나의 도전을 독려한다. 공중에서 일자로 시원스레 펼쳐지는 다리... 너무 하고 싶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할 수 있다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는 최강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 줄 것 같다.
산에서 요가찍기에 재미를 들렸으니 등산도 나설 때마다 동작을 구상해야 한다. 그런데 실내가 아니라 누울 수도 없고 땅에 배를 닿는 것도 쉽지 않아 제한이 많다. 소화하지 못하는 고난도 동작들도 많은데 할 줄 아는 선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려니 머리를 쥐어짜며 배웠던 동작들을 복기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수업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고 특별하다
어느 순간부터 요가 수업이 끝나면 당일이나 며칠 이내에 동영상을 찍으며 배운 내용을 복습해 본다. 모두 기억나지는 않더라도 시도해 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수동적으로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다가 막상 혼자 하려고 들면 헷갈리고 우왕좌왕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사진으로 남겨 언제든 꺼내볼 수도 있고 (선생님께서 경력도 많으셔서 요가 책에 없는 동작도 많이 가르쳐 주신다) 활용할 수 있는 동작의 가용성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미래의 청사진에서 요가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아마 요가가 유연성의 끝판왕인 데다가 근력 운동을 겸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꼭 시도하고 싶은 폴댄스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도 있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댄스에 활용되어 파워 있는 유연성으로 화려함을 뽐내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산에서 요가 찍는 독특한 캐릭터를 더 강화시켜 줄 수도 있고 아니면 강사자격증을 획득하여 모임과 활동을 통해 사회적,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시켜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다리를 일자로 째지 못한다. 머리서기도 못하고 후굴로 땅에 손을 짚었다가 일어서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못한다고 주눅 들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3년 동안의 꾸준한 노력이 모여 전굴이 되는 짜릿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또 3년을 시도하면 되지 않겠는가? 허리는 서서히 더 뒤로 젖혀지고 있고 양다리는 더 넓은 각도로 벌어지고 있다. 40년 넘게 꼬장꼬장하게 버티던 몸인데 갑자기 늘어지고 구부려지라고 말을 잘 듣겠는가?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 보채지 말아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부상 없이 오래 즐겁게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살 달래 가며 할 것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며 칭찬하며 갈 것이다. 아름다운 할머니로 이어지는 세월의 긴 여정에 요가는 빠질 수 없는 즐거운 동반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