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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칼렛 Nov 08. 2023

달리기 시작 8개월 만에 처음 뛴 마라톤 풀코스

JTBC서울국제 마라톤 풀코스 (42.195km) 도전


 3일 전, 일요일  JTBC서울국제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하고 왔다. 올해 3월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달리기를 시작한 지 8개월이 안되어 '풀코스'를 도전한 것이었다.

 막연히 준비를 하며 대회를 기다릴 때는, 풀코스를 완주하면 정말 감격스럽고 보람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해냈다는 희열보다 준비가 부족했었다는 자책과 어쩌면 냉혹하리만큼 철두철미하게 교통통제를 해제하고 대회장을 철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부푼 기대와 이상적인 공상과는 달리, 현실의 냉정한 한 단면을 더 피부로 와닿게 되는 경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집으로 배달된 2023년 JTBC서울국제 마라톤 용품들

 이 용품들을 택배로 집에서 받아볼 때만 해도 정말 기분이 좋고 설레었었다.  


 '아, 나도 드디어 풀코스를 뛰어보는구나.'

 '설마, 내 성격에 중도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완주기록증과 메달을 받아보게 되겠지?'


 한 번에 30 km 이상을 뛰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누어서는 이미 달려본 훈련이 있었고, 하프코스(21km)도 무난하게 3번을 완주한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어쩌면 이렇게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무거움과 막강함을 쉽게 치부해 버린 나의 마음이 결정적인 실수가 되어 돌아왔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의 기록표다.

 첫 풀코스 도전인데 새벽부터 비가 왔다. 우리나라의 3대 마라톤 중 하나이기에 3만 명 이상 집결한 대회장은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북적했다. 세상에나, 달리기를 하고 풀코스를 도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남편말에 의하면 좀 달린다는 사람들은 이런 메이저 대회를 손꼽아 기다리기에 전국에서 모인 인파라고 했다. 나처럼 호기심이나 인생 경력에 한 줄 남기고픈 얄팍한 의도로 온 사람과는 급이 달라 보였다. 비장미가 느껴졌다. 이미 기존 풀코스 경력이 있는 엘리트나 A~C그룹과 달리, 나처럼 처음 풀코스를 도전하거나 3년 이내 기록이 없는 사람들은 D그룹으로 배정되어 풀코스 참가그룹 중에서 제일 늦게 출발했다. 이것이 능력에 따른 냉정한 스포츠의 세계라 하더라도 계급처럼 나누어진 분류에서 제일 꼴찌에 배정되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차츰차츰 능력을 끌어올려서 조금이나마 앞선 알파벳에 배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마라톤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마음속에서 꿈틀고 있었다.


 




 도로가 통제되어 뻥 뚫린 울 시내 한복판을 달리는 기분은 참 미묘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긴 다리를 건너며 한강을 바라보고, 양화대교를 건너고, 국회의사당, KBS본관, 굵직굵직한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기세등등한  위용의 건물들, 광화문 거리 등을 가로지르며 달릴 때는 정말 신기하고 행복한 기분까지 들었었다. 내가 한발한발 내딛으며 그 건물들을 바라보며 지나갈 때의 느낌은 차를 타며 바라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흥이었다. 내가 와보고 싶어 하고, 살아보고 싶은 그 세계가 온전히 내 것이 되어 함께 존재해 주는, 그런 미묘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분 좋음은 여기까지였다. 비가 살짝씩 내리는가 싶더니 운동화와 옷이 다 젖을 만큼 세차게 퍼부어댔다. 바람도 불었다. 첫 풀코스 도전인데 이 무슨 악재란 말인가.

 기온 하강을 막기 위해서라도 쉬거나 걸을 수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같이 달리는 선수들 중 누구 하나 비에 힘들어하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들을 유지시켜가고 있었다. 나도 열심히 달렸다. 어서 빨리 거리를 나타내는 안내 표지판들이 하나하나 나를 지나쳐 가주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풀코스는 풀코스였다. 호락호락하게 그 위용을 건네줄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나의 연습 시간들을 되짚어보면, 하루 중 시간을 누어 30km를 달려 봤을 뿐, 온전히 한 번에 이어 달려 본 경험은 하프 경기 때의 21km가 최장거리였다. 오늘의 레이스에서는 33km까지는 몸이 그런대로 잘 움직여줬는데 그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근육들이 굳어갔다. 종아리가 단단하게 뭉쳐지는가 싶더니 엉덩이 밑 허벅지들도 뻣뻣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물을 먹은 신발과 양말로 인해 발에 조이는 느낌이 강해져 오면서 끈도 서서히 풀어 발안의 공간을 넓혀줘야 했다. 올해 처음 마라톤을 시작하고 이번이 네 번째 대회인데 경기 중 스프레이 파스는 처음 뿌려봤다. 확실히 시원했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의 해결이었을 뿐, 다리는 점점 그 능력의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행여나 도움이 될까 스트레칭도 몇 번 시도하게 되었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36킬로미터쯤에서 다시 스트레칭을 시도했는데 인대나 힘줄에 뭔가 잘못된 자극이 가해졌는지 왼쪽 무릎 자체에 힘을 전혀 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같이 달려주던 남편이 주물러 주고 여러 응급처치를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나는 깨끔발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무리가 갈까 오히려 쉬라고 하며 심지어 택시호출까지 언급을 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려고 해왔던 연습들, 대구에서 풀코스를 완주해 보겠다고 서울까지 올라온 시간과 경비들이 생각났다. 블로그를 통해 이웃들에게 호언장담하던 여러 개의 글들도 떠올랐다. 오늘 경기로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하더라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완주를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는 없었다. 남편의 판단을 새겨들을 여유가 없었다. 무작정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여러 번 시도해 봐도 전혀 뛸 수 없는 무릎 상태가 확인되었지만 다행히 걸을 수는 있었다. 남편의 손을 지팡이 삼아 발을 뗐다. 나는 1분 1초가 급한데 남편은 오늘 경기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한 건지, 내 몸의 상태가 걱정된 건지 그렇게 빨리 걸어주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알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혼자서 걷기 시작했다. 눈물은 왜 흘렀던 것이었을까.





 남편은 내 걸음을 따라가지 못하겠다며 옆에서 천천히 뛰어줬다. 하지만 이미 교통 통제시간인 5시간은 지나갔고 우리는 차도가 아닌 인도로 움직여야 했다. 신호등의 신호도 3번이나 기다려야 했고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완주 대문마저 철거되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바리케이드 철문을 넘어 직원분께 다가가니 기계에 내 번호판이 인식되게 도와주셨다. 최종 기록마저 얻을 수 없었다면 그 속상한 마음이 오죽했으랴. 무료 음료 시음회도 끝났고 우리는 대회 기본 물품인 물과 메달, 대회 음식 보급품만 받아 쓸쓸히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보람과 기쁨보다 아쉬움이 많이 드는 '나의 첫 마라톤 풀코스'도전이었다. 연습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많이 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 셋 키우며 집안일하며 나의 상황 안에서는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내 인생에 새로운 도전과 결과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막상 대회장을 가보니 잘 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좀 더 체계적으로 더 단단하게 연습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세상에 쉽고 빠른 길은 없다는 교훈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2023 JTBC 마라톤 풀코스 도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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