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갔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운동 클럽에 합류하게 되었다. 간식이 있는 것도 좋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내가 이렇게 대화에 고픈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다. 아니면 제일 어린 나이에다가 잘 뛰고 있다는 격려 조의 칭찬을 받아 좋아서일까? 아니면 은퇴에 가까운 할아버지라는 명칭이 붙어도 자연스러울 나이에 철인 3종이라는 운동을 과감히 해내는 그들이 멋있어서일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일요일 아침에 함께 달리고, 밥 먹고, 차 마시는 루틴에 나는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갔다.
(그래도 여전히 달릴 때는 혼자 달린다. 달리는 속도와 패턴에 구애받지 않는 것도 좋고 듣고 싶은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요즘따라 달리는 것이 참 좋다.
경치도 좋지만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적당히 차가운 바람의 상쾌함도 한몫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다리가 덜 풀려 발목이 아픈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리는데 크게 지장이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몸은무거워질지언정 뻐근해져 오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느낌을 즐기게 된다. 왠지 근육들이 씰룩거리며 자신들의 크기를 미세하게나마 늘리고 있다는 상상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도 달리다 보니 20km를 달렸다. 스스로도 뿌듯했다.
하지만 제일 좋았던 것은 달리면서 생각들이 차곡차곡 정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여백이 생긴 곳에는 새로운 생각들이 밝은 기운으로 들어섰다. 어제의 기분이 쓸쓸하고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오늘의 기분은 화사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분 좋게 터트려지고 있었다. 내가 놓아줘야 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아직은, 지금은, 나의 능력이, 위치가, 변변치 못하다고 해도, 앞으로 맞이할 그곳에서는 당당하고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설 수 있게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에 매진해야 하는지도 떠올랐다.
물론 한순간에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고 하여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 주중의 일상이 시작되면 원래의 느낌과 습관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마른 땅을 정처 없이 방황할 때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삶의 의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칠흑처럼 어두운 길을 풀과 나뭇가지를 헤쳐가며 지나갈 때는 한줄기 빛이 나의 세상을 구한 듯 죽어가던 의욕을 되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위의 표현처럼 극적인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오늘의 달리기는 나를 새로운 기운으로 정화시키기에 충분한 역할을 해 주었다.
달리면서 나의 상실을, 미안함을 보듬어 줄 수 있었다. 현재의 상황을 똑바로 마주하게도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의 따뜻한 기운과 에너지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이만하면 달리기는 정말 멋진 운동이 아닐까?
기분이 좋아서인지 20km를 달렸는데 평균 속도가 5분대로 나왔다. 그리고 최대 페이스는 4분 44초가 나왔다.
내 생애 처음 있는 기록인 듯하다.
처음보다 중간과 끝 지점에서 잘 뛰어졌다는 것이 더 기분 좋게 기록을 바라보게 했다.
처음에는 몸이 덜 풀렸다.
화장실도 갔다.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일정하게 기록이 나와줘서 고마웠다. 이렇게 쭉 부상 없이 계속 연습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