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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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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Oct 01. 2023

불혹 16.설계

<부동산소재소설 1부>

              


         서초동에서 퇴근하면서 집으로 왔다. 아파트 지하에 주차하고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지하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온다. 자기의 차로 가는가 싶더니, 바로 옆에 검정 자가용에 올라탄다. 썬팅 농도가 심하게 되어 안이 하나도 안 보인다. 형기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세 시간 전부터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차를 살폈다. 이상하다 싶으면 내려오지 말라고 연락을 주었을 것이다. 아파트를 나온 차는 바로 장흥으로 이동한다. 장흥에 50여 채가 있는 ‘기린 타운하우스’가 목적지이다. 39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기산저수지 앞에서 우회전한다. 그리고 좌회전하고, 다시 우회전한다. 뒤따라오는 차가 있는지 확인한다. 따라오는 차가 있다면 이유를 묻지 않고 오늘 모임은 취소하기로 사전에 약속하였다. ‘기린 하우스’는 등록된 차량만 들어갈 수 있다. 출입구에는 경비원이 차량을 확인한다. 단지 내를 서행하면서 따라 들어온 차량이 있는지 또 확인한다.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주차장 셔터가 내려간다. 건물로 들어가서는 주차장 쪽에서 보이지 않는 문으로 나와 옆 건물로 들어간다. 옆 건물의 거실 커튼 뒤에서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태현이가 보고 있었다. 잠시 뒤 형기와 호영이가 들어온다. 주방에서 미희가 음식을 준비하다가 이들을 반긴다. 

         “저녁 안 먹었지? 밥들 먹자. 된장찌개 했으니, 다들 식탁으로 와라”

         “생각보다 시간 안 걸리네, 40분 안 걸렸지, 형기야”

         “아닙니다. 3시간 40분 걸렸네요, 너 기준으로 하지 말고, 내 기준으로”

         “아~, 미안합니다.” 다들 웃는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 넷이 모여 앉는다. 

         “너희 둘이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

         “넌 어떻게 생각해?” 태현이가 호영이에게 묻는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생색, 우리 네 명은 한 운명이다. 오만함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더 낫다는 오만함이 있으면 함께하는 마음에 의심이 들어올 수 있다. 그 작은 틈이 서로를 불신하게 할 것이다. 비밀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지만, 모른다는 이유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동반자라면 그렇게 가야 한다. 숨기고 감추고 할 것 없다. 너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것을 미희하고 형기가 볼 수도 있다. 설사 없다고 해도 두 사람의 존재만으로 같이 이야기 들어야 한다.”

         “그럼 내가 먼저 이야기하마” 세 사람을 둘러본다.

         “·······”

         “·······”

         “·······”

         “화천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금강 신도시, 거기서 총알을 만들 것이다. 아파트 32평을 기준으로 보통 한 채가 6억 정도 한다. 아파트 개발사업을 하면, 1,000가구를 한다고 하면 6천억, 3,000가구이면 1조8천억, 5,000가구를 개발하면 3조 사업이다. 5,000가구라고 가정해서 최소 10% 수익이면 3천억이다. 이것은 아파트 분양만 생각한 사업수익이고, 아파트 공사에 따른 건설이윤은 별도이다. 만약에 7억에 분양해서 채당 1억을 먹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면 5,000억 원이라는 추가 수입이 생긴다. 기타 수입 등등 해서 최소 1조 원을 벌어보고자 한다.”

         미희는 대충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지만, 형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자기는 설계 능력도 없다. 저놈들하고는 친구 관계를 떠나서 설계자에 대한 믿음으로 가야만 한다. 무엇이 되었든 설계한 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관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지만,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뿐이다. 자기 가슴에 있는 삼족오가 생각났다. 천상에 있는 신과 인간세계를 연결하는 신성한 새이면서 태양을 상징한다. ‘저승사자’처럼 무서운 놈이 되겠다는 의지와 태양처럼 뜨겁게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 주먹을 휘두르고 다니면서, 목숨이 아슬아슬한 싸움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기가 병신으로 만든 사람들도 많고, 자기를 따르다가 병신이 되어 힘들게 사는 동생들도 있다. 태현이와 일하면서 돈은 의미가 없어졌다. 형편이 어려운 동생들에게 용돈을 줄 수 있는 자기가 자랑스러웠다. 예전에는 자다가 깨다가 깊은 잠을 자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돈은 숫자이니, 돈벌라고 살지 말고 재미있게 살자는 의미를 알았다. 저승사자로는 살아보았으니, 태양으로 살 때가 된 것이다. 

         “이렇게 버는 돈은 전부 정치자금으로 쓸 거야, 그 용도는 호영이가 알아서 하는 걸로, 우리는 돈을 벌고, 쓰는 거는 호영이가,”

         “그 돈은 대선자금으로 쓸 거다. 윤희로 의원을 청와대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 내 목표야, 다음 대선이 안되면 다다음 대선에는 무조건 청와대에 넣으려 한다.”

         “다다음이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 너무 늦을 것 같은데, 무조건 다음으로 목표를 잡자. 그리고 안되면 네 말대로 다다음 전략으로, 그래서 그런 것인데, 지금 화천 시장을 작업할 수 있을까? 최순원 화천 시장이 인권변호사 출신이라서 한국당에서 미는 사람이다. 그리고 차기 대선 후보로 가끔 언론에 흘러나오기도 한다. 한국당에서는 이용 가치가 많은 사람이지만 우리는 쳐내야 할 사람이다. 그 사람도 언론을 잘 이용한다. 변호사 개업하였을 때 마누라가 사준 선물이라고 하면서 20년 된 낡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고 있다. 화천 시장 선거할 때, 선거공약이 금강 신도시 개발이었다. 그것을 우리가 가지고 와야 한다. 안 그러면 1조가 그들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다.”

         “시장 되고서 화천시 관통하는 수원천 자전거 길에 각종 설치미술을 해 놓았잖아. 돌, 철,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 놓은 예술작품이라고 해서 보았는데 어이가 없더라. 거기에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미희가 과일을 가져다주면서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인권변호사 하면서 같이 활동하던 단체에 돈을 합법적으로 밀어준 것이다.”

         “너도 그렇겠지만, 나도 사람의 겉모습을 안 믿는다. 겉으로 깨끗한 척, 도덕적인 척하는 사람들이 더 추하다는 것이, 검사 생활하면서 수도 없이 보았다. 교회에 장로라고 하는 사람들, 불교 신도 모임의 회장님들,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여의도에 있는 사람치고, 종교 안 가진 사람들 없다. 화천 시장도 그 범주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네가 디테일 설계해라, 움직이는 것은 형기가 하고···,”

         “그래, 뭐든지 할 것이니, 지시만 해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움직이마, 어차피 너희 두 사람의 팔이 되기로 하였느니···, 너희는 피 묻히지 마, 내 손에 묻으면 된다.”

         “오진명 국장 알지?, 그 친구가 화천시 공무원들하고 업무 관계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오진명 말에 의하면 박은혜라는 비서하고 사적으로 친한 것 같다는 소문이 시청 내에서 돌고 있단다. 회천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무직으로 데리고 온 비서란다. 변호사 개업하던 시절부터 비서였다고 하니, 한 20년 가까이 된 듯하다.”

         “뭐? 그럼 다 끝났네,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은, 둘의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는 반드시 먹을 것이 있다. OK, 내가 알아서 정리하마,”

         “그래서 그 친구가 정리되면, 화천 시장이 되어서 우리 ‘말’이 되어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윤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네가 그림을 그렸다면,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뭔데···?”

         “잘은 모르지만, 정치는 이슈를 선점하는 쪽이 이기는 것 같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정치는 아마추어이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 우리가 지금 하는 이것은 뭐야? 뒤에서 조정하는 것이고, 뭔가 나랏일을··· 공정한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닌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더군다나 자격도 없는 사람이, 이것이 공개적으로 세상에 알려지면, 공작정치 하는 비열한 사람, 권력의 하수인이 될 것이다. 공작정치를 우리만 하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우리가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호영이는 커피를 마시면서 태현이 말을 듣는다. 태현이는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말한다.

         “박 대통령 근처에도 너나 나처럼 숨어서 설계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숨어 있는 그들을 못 찾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여자 대통령이고 배우자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야만 한다. 분명히 누군가와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는 지인이 있을 것이다. 그자를 찾아서 작업해야만 된다. 원래 남자 대통령이면 베갯머리 송사가 무서운 것이고, 재임하는 동안 마누라가 권력자 행세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마누라가 실세고, 겉으로 본 권력자는 허수아비이지, 아무튼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없으면 비슷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것도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선점하면, 윤희로 의원이 청와대 들어가고, 네가 숨어 있는 실세라 하여도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우리를 공격 못 한다. 따라하기가 되어 명분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청와대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렇다면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 정권 말기에, 그쯤이 좋을 듯하다. 그것을 여론전으로 해서 대선까지 끌고 가면 승산 있는 게임이다. 화천 시에서 네가 설계한 대로 총알 만드는 시간하고 얼추 맞을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리고 영화사를 하나 섭외하였으면 좋겠다. 지난번에 윤희로 의원이 ‘정치는 연설’ ‘주관적 도덕’이란 말을 했었다. 두 가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전두환 때 3S 정책이 있었다고 한다. 경제성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을 반대하는 쪽에서 그렇게 만든 말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영화(Screen), 스포츠(Sport), 섹스(Sex)이다. 스포츠는 거의 모든 종목에서 프로선수들이 있고, 섹스도 젊은이들 사이에는 놀이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영화이다. 그때와 지금은 다른 세상이다. 책을 통해서 지식을 배우는 시대는 끝이 나고 있다. 영화로 역사를 공부하고, 세상을 배우는 시대이다. 생각하고 토론하고 이성적인 대화를 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식인이 사라지는 시대지. 즉흥적이고 단독적이고 감성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관종을 즐기는 사람들이 지식인 흉내를 낸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나와 생각이 다르면 죽여야 하는 것이 정의로 아는 세상이다. 어쩌면 돌멩이 던지고, 화염병 던지는 것을 민주주의로 알고, 군중들이 모여서 떼를 쓰면 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인형을 만들어 화형식 하거나, 추하고 역겨운 모습으로 그림 그려서 사람을 경멸하는 것이 예술 문화로 둔갑한 세상이다. 그렇다면 대중들 생각에 파고들기 아주 좋은 도구는 영화이다. 진짜를 가짜처럼·· 가짜를 진짜처럼·· 섞어 놓으면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형기는 두 귀를 막고 싶었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안 듣는 것이 좋았을 뻔했다. 도대체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는 것인지 스케일이 너무 크다. ‘무섭고 똑똑한 새끼들’ 속으로 생각하면서 온몸에 흐르는 긴장감에 기분이 좋았다. 호영이가 말하는 것을 계속 듣는다.

         “네 편 내 편 나누기 아주 좋다. 저쪽을 증오하면서 내 편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일제시대 민족의 반역자’ ‘남과 북의 갈등’은 영화로 만들기 아주 좋다. 친일파, 인권유린, 진실규명, 종북세력, 공정사회, 민주주의 등등 키워드가, 너무 많다. 가짜를 진짜처럼 영화를 쏟아내야 한다. 1,000만 관객이 넘어가면 그들이 내 편이 되는 것이다. 영화로 인생을 배우는 시대···, 연속극으로 삶을 이해하는 시대···, 관종을 즐기는 허영으로 가득 찬 사람이 사회지도자가 되는 그런 시대이다. 연설로 대중을 선동하는 시대가 끝나고 있다. 이제는, 미디어로 대중을 네 편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일을 꾸준히 해줄 기획사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권력자들이 정보를 독점하고자 하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독점한 그 정보를 장사치들처럼 가공하고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보를 언론에 뿌려야 하고, 뿌려진 언론 자료를 벌떼처럼 퍼 나르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선거 때만 그런 전략을 짤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런 조직이 움직여야 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집단을 편애하면서 산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이렇게 누군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살 것인지’ 그것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섞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영화는 픽션이라 생각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진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경주마 눈가리개’라는 것이 있다. 사람이 유도하는 대로 말을 통제하기 위한 것인데, 구속받는 ‘경주마’ 입장에서는 아주 편안하게 앞만 본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병역 비리 또는 광우병 파동처럼 어떤 이슈가 생기면···, 그 이슈를 파고드는 뭔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확인되지 않는 ‘설’을 진짜처럼 언론에서 먼저 움직이고, 다큐멘터리로 찍어서 영상 제작하고, 나중에 영화까지 나오면 사람들에게 진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자금’ ‘음모’ ‘통치자금’ 이런 것을 언론에 흘리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마일스톤을 설계해야 한다. 어떤 상황을 만들고 어떠한 전략을 짤 것인지.”

         미희가 커피를 다시 내려준다. 

         “두 분, 밤새 국정을 논하느라 피곤하시겠네요.” 농담처럼 한마디 던진다. 그 말을 듣고 형기가 받아넘긴다. 

         “국정을 논하는 게 아니고, 국정농단인데···”

         “야!, 국정농단이라니,” 다들 웃는다.

         “아니다. 국정농단, 단어 좋다.”

         “지금 자민당에서 윤희로 의원하고 다음 대선 후보로 맞짱 뜰 사람이 역시 홍장표 의원인가?”

         “홍장표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진 사람이잖아, 이제 떨어지는 낙엽이다. 문준식 의원이 떠오르고 있다.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다. 은근히 세력을 넓히고 있다.”


              


         사전 연락도 없이 출근을 안 하고 있다. 최원순 시장은 무슨 일이지 궁금하여 연락해도 전화기가 꺼져있다. 띠동갑인 박은혜는 비서지만 사실 내연관계에 있다. 20년 전 변호사를 개업하였을 때, 변호 일이 없어서 등기업무를 하면서 사무실 임대료를 지불하곤 하던 때이다. 정체성이 없이 막연하게 하루하루 변호사로 폼잡고 살 때 만났다. 상고 출신으로 똑똑한 여자였다. 중학교 연합고사를 만점에서 두 개 틀리고 국내 최고의 여상을 입학하였다. 같이 일 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당돌하게 최원순 변호사에게 이야기하였다.

         “변호사님 전문분야는 뭐예요?”

         “뭐라고?”

         “전문분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병원에 가면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등으로 전문의사가 있잖아요, 변호사들도 그런 것이 있어야 하잖아요,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 이혼전문, 형사전문, 민사전문 등등, 뭐가 있을 것 같은데, 변호사님은 그게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일이 없는데, 수임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이지, 네가 뭘 안다고.”

         “변호사님, 변호사들이 돈 잘 버는 직업 중의 하나로 알고 있는데, 왜 돈을 못 버세요? 등기업무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변호사님은 무엇을 변호해서 돈을 벌 것인지 정하세요. 짧게 보지 마시고 길게 보시기 바랍니다.” 변호사 얼굴을 보면서 말한다. 당당하다. 

         “등기업무로 사무실 임대료와 제 월급 정도는 제가 만들 수 있습니다. 변호사님이 제대로 되어야 제가 변호사 사무실에 일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거는 아니네요. 제가 오기 전에 있던 직원들도 오래 못 버틴 이유는, 대부분 이거 때문인 것은 아시나요?”

         7~8명의 여직원이 일한다고 왔지만 오래 있는 직원은 없었다. 월급도 많지 않았지만, 일도 없어 종일 앉아있다가 퇴근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2~3개월 지나고 다들 그만두었다. 박은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아파트 짓는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명함을 돌리고 일을 만들어왔다. 당돌함이 좋았다. 나이가 한참 어린 여자의 말을 듣고, 인권변호사로 방향을 잡았다. 남들하고 다른 길을 가야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단순하게 하였다. 인권변호사로 알려지면서 방송에 몇 번 나갔다. 소외된 사회, 인권의 사각지대를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고생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감정을 억누르며 ‘이 아이를 버려야 합니까?’라는 말과 눈물 그렁그렁한 그런 모습이 방송 화면에 Close -up 되었다. 그날 후원계좌로 5천8백만 원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그날 환호를 하였고, 둘만의 파티를 열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돈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을 박은혜는 알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최 변호사는 무릎을 쳤다. 방송을 보고 후원한 사람들이 만 원씩 1만 명이면 1억 원이고, 천 원씩 10만 명이면 1억이다. 한 달에 천 원씩 10만 명 후원계좌를 만들면 한 달에 1억씩 생기는 것이다. 돈의 이치를 알자, 집중하여야 할 것에 대해 역할 분담을 하여야 하였다. 무료 변호가 쌓일수록, 후원금은 늘어났고,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렇게 쌓인 경험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대외적으로 무료 봉사지만 실질적으로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는 변호사가 되었다.

         후원금이 쌓여나가자 모인 돈으로 박은혜는 서울의 재건축과 뉴타운 동네로 계속 거주지를 옮겨 다녔다. 가격이 오르면 되팔고 다시 이사하고, 그렇게 20년 동안 13번을 이사 다녔다. 지금은 잠실에 사는 아파트 1채와 서초동에 전세를 주고 있는 아파트가 2채 있다. 그리고 삼성역에 5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시가로 약 120억 정도 되었다. 이러한 모든 부동산의 명의는 박은혜로 단독으로 되어있다. 최 변호사와 같이 결정한 것이다. 최 변호사는 대외적으로 전세를 살고 있다. 

         처음에 인권변호사로 포장하고 무료변론 준비하면서 일이 많아졌다. 야근하고 어떨 때는 밤을 새운 적이 있었다. 재건축 현장을 다니면서 일거리를 가지고 온 박은혜도 바빴다. 서로가 상대방을 신뢰하고 믿음 이상의 동반자 같은 의리가 생기었다. 긴밀한 유대관계이다. 그때는 광화문 뒷골목 15평짜리 일자형 사무실에서 책상 2개를 ㄱ자로 붙여 놓았고, 그 앞에 상담을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소파를 놓았다. 안쪽에 있는 최 변호사 책상 뒤에 책장이 있다. 책장 뒤에 간이침대가 하나 숨겨 놓았고, 피곤할 때 가끔 눈을 붙이곤 하였다. 책장과 벽 사이에 틈이 있고, 그 틈새는 옷걸이로 막았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박은혜가 책장 뒤로 가서 잠시 눈을 붙였고, 외근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 들어온 최 변호사는 책장 뒤로 갔다가 누워서 잠을 자는 박은혜를 보았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것이 아니지만, 그날은 최 변호사에게 유혹으로 다가왔다. 직장 동료로 만나다가, 어느 순간에 남자와 여자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그 감정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경험으로 사랑으로 포장될 수 있는 것이다. 결혼이란 울타리에서 종족 보존을 위한 관계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었다. 덮은 담요를 밀치고 나온 종아리에 손이 닿았다. 손이 닿는 순간에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박은혜가 잠을 깬 것이다. 일어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있는 박은혜를 보고 용기가 생기었다. 손이 허벅지로 가면서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성폭력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은혜가 눈을 뜨고, 당황하는 남자의 얼굴을 노려본다. 허벅지에 있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잠시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남자 손은 치마 속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더 들어갔다. 밤샘 작업은 사무실이 아니라, 명동에 있는 관광호텔에서 이루어졌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업무를 보다가도 누군가가 손을 잡고 끌고 가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책장 뒤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인권변호사로 강의 및 대외 활동이 많아지자, 등기업무에서 손을 떼었다. 사무실을 강남으로 옮겼다. 변호사가 아니라 강연회를 다니는 것이 업무가 되었다. 무료법률 상담 및 변호사 업무는 재단에서 관리하는 변호사들에게 할당되었다. 변호사가 아니라 강사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권변호사, 최 변호사로 기억하였다. 아침부터 연락이 없더니 저녁이 되었을 때, 박은혜에게 문자가 왔다.

         '언니가 전부 알았어요, 좀 전까지 있다가 헤어졌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어요, 다 알고 와서, 제가 뭐라 할 수 없었어요, 수연이 사진도 가지고 있어요. 지금 잠실에 있어요.'

         문자를 보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번 화천 시장 임기 마치면, 은퇴 선언하고, 황혼이혼을 하려고 하였다. 영국에 유학 중인 수연이는 박은혜 호적으로 올라가 있다. 수연이는 자신이 숨겨진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춘기 때는 일시적인 반항도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운명을 받아들인 아이였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달랐다. 아버지의 삶과 자기의 삶을 구분하였다. 서로 삶을 인정하고 잘 지내고 있다. ‘집에서 알면 어떡할까?’ 혹시나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가끔 집에서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부부로 산 게 25년이 넘었는데, 일을 핑계로 수없이 외박하고, 어떨 때는 전화 없이 외박한 적도 있다. 모르고 있을까?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였다. 화천 시장에 당선되면서 미안한 마음에 부자들만 차고 다닌다는 피아제 시계를 선물하였다. 핸드폰에 알림이 울린다. 집사람에게서 문자가 2개 왔다.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문자로 보내. 예상은 하고 있었어. 여자가 있다면 박은혜겠지 생각했어.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사람이라, 나만 참자 했어. 그리고 박은혜가 마누라인 나보다 옆에서 잘 보필한 것도 알고 있고. 박은혜가 뭐 잘못이 있을까? 그게 걔와 나의 운명인 것을, 그런데 화가 난다. 18살 된 딸이 있다고?’ 

         또 다른 문자이다.

         ‘아이가 있을 줄은 몰랐어. 당신이나 은혜나 아이는 만들지 말았어야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니? 수진이와 민준이에게 배다른 형제가 있었다고 어떻게 이야기해?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을 했을 거 아냐? 어떻게 할 거야?’

         손가락에 뻗어있는 말초신경이 제멋대로 반응한다. 언젠가 마누라가 알 수도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알려지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냉장고에 있는 생수병을 꺼내서 벌컥벌컥 물을 마신다. 두 손으로 머리를 잡는다. 순간적으로 주변이 빙빙 돈다. 화천 시장을 끝으로 박수를 받으면서 은퇴할 날이 코앞에 있었다. 아주 미세한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데, 실패 한 것이다. 발바닥에서부터 냉기가 타고 올라와 등줄기로 온다. 춥다는 느낌이다. 

         언론과 방송에서 욕을 해 될 것이다. 인간 이하 취급을 받을 것이다. 상관없다. 얼굴에 철판 깔고 살 자신은 있다. 세상 사람들 욕은 무섭지 않았다. 욕을 하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 민준이와 딸 수진이 얼굴을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아이들 모르게 마무리하고 싶었고,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아이들은 나에 대한 배신감을 분노로 쏟아 낼 것이다. 자신들의 운명을 수연이와는 다르게 가혹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아이들의 삶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생각이 깊어진다. 

         지금까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 잡고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고, 박수와 환호를 받는 인생이 좋았다. 자기애와 다른 관심병이 있다는 것을 40살 넘어서 알았다. 앞으로는 그런 재미는 없을 것이다. 이혼하게 될 것이다. 철저한 혼자가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하고의 소통은 죽는 날까지 없다. 산속에 외딴집에서 속세와 연을 끊은 스님처럼 살아야 한다. 남은 인생은 죽은 놈처럼 사는 것이다. 박은혜는 딸이 있는 영국으로 갈 것이다. 내 인생에서 도망을 가야만 할 때가 되었다.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다. 그냥 때가 된 것이다. 인생이 몰고 온 수많은 경험은 거짓이 아니라 진짜였다. 재미있게 살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재미가 없는 인생이 될 것이다.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이다. 5분 정도 통화를 한다. 최 변호사는 차를 몰고 운전한다. 시속을 최대한 올린다. 고속도로를 탄다. 아무도 없는 도로를 최대한 속도를 올린다. 7km 앞에 150m 높이의 다리 고속도로가 있다. 엄청난 속도와 공기를 가르는 압력으로 난간을 뚫고 차가 밤하늘을 나른다. ‘너를 사랑했다’ 최 시장의 눈에 박은혜가 보인다. 잠시 뒤 반대 방향에서 썬팅이 짙은 차량이 한 대 나타난다. 떨어진 부분에서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달린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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