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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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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25. 2023

불혹 14. 애인

<부동산소재소설 1부>

         1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조수석에는 어깨를 덮는 긴 생머리에 금테 안경을 쓴 홍보팀 박은정 차장이 곤 색 정장 투피스를 입고 앉아있다. 부산 신항과 연결되는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인해 사업장이 부산으로 이전을 하였다. 카풀로 다니는 박 차장을 수원에 내려주고 광교에 들려 정태현 사장을 만나기로 하였다. 지난달에 준공된 오피스텔을 구경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고, 오늘이 그 날인 것이다. 

         “본부장님, 직원들 사이에 은근히 인기 있는 것 아세요?”

         “뭐, 제가 인기 있다고요? 의외인데, 내가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직원은 거의 없는데, 그나마 박 차장이 유일합니다. 저와 비슷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업무를 보시는 분 같아서”

         “본부장님은 원칙주의자로 소문났어요, 고시 공부하다 오신 분이라서 법대로 규정대로만 한다고 하는데요, 다른 직원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본부장님의 그런 모습을 직원들이 좋아합니다.”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저 꼭 그렇게 규정대로만 하는 사람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하는 일이 민감하니 가능하면 조심할 뿐입니다. 참외밭은 지날 때는 신발 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튼 저를 좋아하여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수의계약 때 저를 불러 조용히 일을 맡기실 때, 의외였습니다.”

         미심쩍은 생각에 박 차장을 보고자 조수석으로 얼굴을 돌리자, 자기를 보고 있는 여자하고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남자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여자는 몰래 보고 있었다는 것을 들켰다는 당황스러움에 시선을 피하였다. 머리카락 전부를 오른쪽 어깨로 쓸어 넘긴 여자는 왼쪽 목선을 남자에게 다 보이고 있었다. 

         “아무튼 본부장님, 존경합니다.” 여자가 앞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남자는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에 묘한 감정이 들어왔다. 그리고 여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헷갈렸다.

         “박 차장 지금 나이가 몇이지요? 바깥분은 학교 CC로 만났다고 하시었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흔넷입니다. 네, 과 선배였습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여자는 앞에 가고 있는 차의 꽁무니를 멍하니 보고 있다.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저녁의 해는 기울고, 어두움이 조금씩 짙어진다.

         “부장님, 비 오네요, 천천히 가세요”

         “네, 그럽시다, 이야기나 하면서 천천히 올라가지요.” 라디오 음악방송을 튼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차분하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본부장님, 부장님은 사는 게 재미있으세요?” 자동차 전면 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여자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는가 싶더니 왼손 손가락으로 빗방울을 대어보면서 뜬금없이 사는 게 재미있는지 묻는다. 남자는 곁눈질로 여자의 하얀 손가락을 본다. 손톱에는 선홍색이 덮여 있다. 

         “20대는 인생이 뭔지 몰라 재미없이 살고, 30대는 일과 육아에 정신없어 재미없이 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흔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면 아이들도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일도 이제 손에 익고, 주머니에 돈도 쌓이고, 그래서 사는 재미가 있다고 하는데, 아닌가요?” 

         남자는 자기가 재미있게 살고 있었는지 생각을 하면서 아내를 떠 올린다. 라디오에서 ‘청춘’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했던 ‘응답하라 1988’이라는 연속극으로 인해 방송에서 자주 틀어준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부장님은 40대를 재미있게 보냈나요? 저는 그저 그런 제 모습이 보이는데요, 그리고 부장님 매일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재미가 있나요, 어제, 오늘, 내일이 늘 같잖아요, 제 모습은 10년이 지나도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데, 부장님은 지금 좋으세요?”

         박 과장은 이미 대화가 끊어진 부부이다.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남편은 매일 야근 아니면 술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 간섭하고 잔소리가 심하였다. 학교 다닐 때, 사귀자고 쫓아다녔다. 가볍게 영화 보고, 밥 먹는 사이였다. 그러다가 MT 가서 신체적 접촉이 있었고, 그것이 사랑인 줄 알고 결혼하였다. 각방을 쓰면서 사는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다. 3명의 식구가 다들 각각 자기 방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 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구슬픈 노래가 조용히 들린다. 

         노재호 부장은 흙수저인 법대생이었다. 금수저인 경제학과의 여학생을 만나서 연애하였다. 국토부 산하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아내는 경제학박사다. 처남이 둘이 있는데, 큰 처남은 대학교수이고, 작은 처남은 대학병원 의사이다. 장인도 위암 권위자로 의학계에서는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사법시험에 실패하였을 때, 장인은 결혼을 반대하였지만, 카톨릭 신자였던 아내는 첫 경험이란 수줍음을 알려준 가난한 남자를 버릴 수 없었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질수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청춘 남녀는 더욱더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였다. 슬픈 사랑이라는 자기 족쇄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결혼이란 목적을 이루었을 때 두 사람은 사랑의 승리에 도취 되었다. 하지만 너무 짧았다. 뜨거운 열정은 바로 사그라졌고 두 번 다시 피어나지 않았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처가 집에서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를 알았다. 서로가 공감하지 못하는 어릴 적 생활로 형성된 인생관은 신혼 시절부터 두 사람에게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서로가 좁힐 수 없는 그 차이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자기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밖의 일정에 집중하였다. 마흔 살이 되면서 섹스리스 부부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박 과장이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하였을 때, 자기를 인정해주는 듯한 소리를 어른 여자에게 들어본 것이다. 어렸을 때, 상장을 가지고 오면 엄마가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의 기분이었다. 침묵 속의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둘 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다. ‘날 두고 간 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 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 

         평범한 듯한 대화인데 묵직한 무엇이 음악에 실려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가 두 사람에게 생긴다. 침묵의 신비로움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고 있다. 

         운전석 옆, 조수석에 앉아있는 여자는 사는 것이 심심하고 재미가 없었다. ‘왜 사는 것이지’ 39살이 지나고 40살이 되면서 더더욱 그런 감정에 빠져들었다.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일탈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만, 마음뿐이다. 외롭다는 생각에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가 톡 쳐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그렇지만 누군가라고 해서 아무나하고 인연을 맺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40대를 보내고 있는 여자였다. 주말부부가 되어 너무나 좋았다. 매일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주말에도 집에 가기 싫지만, 대학에 입학한 아이 때문에 올라가야만 했다. 이미 오래전에 무늬만 부부인 것을 아이도 안다. 적당히 웃으면서 셋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굳건히 지키며 주말을 보낸다. 

         운전석에 앉아 묵묵히 운전하는 남자는 직급이 올라가고, 40대 후반이 되어가면서 가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의 전부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수의계약을 만들어 주면서 실타래 풀어주듯이 자기 삶의 또 다른 부분을 보았지만, 심연의 공허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남자의 내면에 있는 세계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가득하였다. 여자의 위로가 필요한 남자였을 뿐이었는데, 아무도 위로하는 사람이 없었다. 노래는 막바지로 가고 있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휴게실이 보인다. 휴게실로 차가 들어간다.

         “박 차장, 잠깐 쉬었다 갑시다.”

         “뭐 커피 드시겠어요? 제가 사겠습니다.” 

         “잠깐 차에 계세요, 우산이 있을 것입니다.” 

         차가 멈추고 남자는 트렁크로 가서 우산을 꺼낸다. 그리고 조수석으로 가서 문을 열고, 여자가 나올 때 우산을 씌어 준다. 하나의 우산에 둘이 같이 쓴다. 남자의 오른쪽 어깨는 비에 젖는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저 때문에 비 맞으셨네요, 죄송합니다.”

         “뭐 이정도야, 남자가 당연히 에스코트 해야지요”

         “부장님, 부장님 멋있는 것 아세요?”

         “진짜요?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박 차장이 멋있다고 하는 것은 저의 진짜가 아닐 것입니다. 저는 가짜 인생을 산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출근하면 흐트러진 모습 안 보이고, 그냥 원칙대로만 처리하고자 합니다. 괜찮은 모습으로 살아가려면 많은 가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가면을 벗고 싶은데 쉽지 않지요.”

         “가면을 벗어본 적은 없나요?”

         “최근에 처음으로 가면을 하나 벗었는데, 아주 짜릿했던 경험을 했습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왜 난 가면을 쓰고 살았을까? 원칙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차~ 싶어, 노재호는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두 번째로 충돌한다. 순간적으로 무언의 대화가 오고 갔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LH에서 계약 건은 일단 내부 규정상 홍보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그 업무를 박 차장에게 은밀하게 맡긴 것이었다. 서류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가지고 온 박 차장은 아무것도 묻지를 않았었다. 

         “부장님 생각,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페르소나 시대라고 하잖아요, SNS에 자기의 이런저런 모습을 올리고는 ‘나 행복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지요, 저도 그래요. 밖에서는 보는 저는 늘 행복해야 합니다. 제가 무슨 불평불만을 가지면 ‘복에 겨워하는 소리’입니다. 애 아빠도 은행에서 정년퇴직까지 보장될 것이고, 저도 그렇고, 아이도 잘 컸습니다. 그런데 저는 심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문뜩문뜩 합니다. 마흔 넘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최근에 부장님을 뵙고 저도 가면을 벗어보고 싶다 생각을 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실에 앉아, 떨어지는 빗물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앉아있는 두 남녀는 각각 아슬아슬한 생각과 말을 주고받는다.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남자와 손대면 톡 터질듯한 여자가 어두운 밤하늘에서 나누는 따뜻한 말은 서로의 마음을 무너지게 하고 있다. 우연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인연의 끈이 되어 남녀의 마음을 연결하고 있다. 마음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일어나 불씨가 튄다. 그 불씨는 여자와 남자 마음에 용기를 넣어주고 있다. 밤하늘에 불씨가 사라지기 전에 여자가 먼저 용기를 낸다.

         “제가 애인하자고 하면 하실래요?” 여자가 묻는다. 남자가 당황하는 듯한 눈빛을 보인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남자가 말을 한다.

         “진짜요?”

         “네” 여자가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마주 본다. 눈이 이쁘다는 생각이 든다.

         “박 차장, 눈이 이쁘네요”

         “진짜요?”라고 하면서 여자가 웃는다.

         “제가 애인하자고 하면 하실래요?” 남자가 묻는다. 먼저 묻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여자가 그 말의 의미를 알고 눈웃음을 보인다.

         “진짜요?” 

         “네, 합시다. 대신 서로가 딱 한 걸음만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딱 한 걸음만 떨어진 관계로 어때요?”

         “좋네요, 한 걸음,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그렇게 서로를 진지하게, 서로의 가정을 지켜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 애인입니다. 오늘부터 1일 차입니다.”

         둘은 말없이 앉아있다. 생로병사, 태어났으면 늙어가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이다. 불혹을 넘어서면서 살아온 날보다는 죽을 날이 가까워진 나이라는 것이 밤공기에 훅 들어온다. 빗줄기의 바람이 두 사람 어깨를 스친다. 우산을 같이 쓰고 차로 돌아간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 빗줄기로부터 보호한다. 차에 시동을 걸고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는다.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운전하는 남자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고마워요”


         2


         엘리베이터는 5층으로 올라갔다. 건물에는 아무도 없다. 노재호와 태현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건물에 모든 전등이 환하게 다 켜져 있다. 532호 앞에서 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공원이 보인다. 

         “저희 오피스텔에서 가장 뷰가 뛰어난 곳입니다. 분양가는 3억1천입니다. 노재호 국장님 것입니다. 명의는 누구 명의로 할까요?”

         조금 전까지 고속도로를 함께 달린 박 차장, 방금 헤어졌는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불꽃이 노재호 마음에 피어났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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