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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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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16. 2023

불혹 12. 명령

<부동산소재소설 1부>

              


         여주에 있는 골프클럽에 4명이 모였다. 박호영, 정태현, 그리고 대한지적공사의 오진명 국장과 LH의 노재호 사업본부장이다. 

         “여기 오진명 국장님은 저하고 박사과정에서 만났습니다. 박호영 부장하고는 어릴 적 친구입니다.”

         “반갑습니다. LH 노재호입니다. 저는 박 검사님 대학 후배입니다. 젊었을 때 같이 고시 공부하였습니다만, 공부하고 인연이 없어 LH에서 지금까지 밥 먹고 있습니다.”

         학번은 박호영이 노재호보다 한 학번 빨랐고, 나이는 2살이 어렸다. 대학 입학하면서부터 둘 다 사법시험을 준비하였고, 학생 운동에 관심이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힘들 때마다 순대볶음에 소주를 먹으면서 사는 이야기를 하였다.

         “재호야, 너나 나나, 검사 되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다. 너는 왜 검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지?”

         “형님, 저는 가진 게 없습니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입니다. 다행히도 공부를 잘해서, 중·고 때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죠, 제가 머리가 좋은 줄 알고 살았는데, 여기 법대에 입학하고서 우물 안 개구리인 것을 알았습니다.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한 놈들이 전국에서 모인 것을 알았죠, 그리고 제가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닌 것을···, 암기력이 조금 좋았다는 것, 머리 좋은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법대 선·후배, 동기들을 보고 알았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험은 머리하고 관계없이 그냥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진짜 머리 좋은 사람들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지.”

         “법대에 왔으니 사법시험 도전해봐야지요, 저는 재학 중에 합격해야 합니다. 등록금도 제가 알아서 준비해야 합니다. 남들처럼 집에서 지원해주고 뭐 그런 것 없습니다.”

         “과외 하나?”

         “네, 과외도 하고, 여기저기서 장학금도 받고, 졸업하면 바로 취업해야 합니다.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고시반에 와서 처박혀 사는 것입니다. 사법시험은 저에게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법시험 합격해서 부잣집 데릴사위 되는 것이, 제가 검사 되고자 하는 1차 목표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아직은 생각 안 해보았습니다.”

         “형님은 왜 검사하고자 하는 건데요?”

         “첫 번째는 아버지 소원이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생전에 검사된 아들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고, 두 번째는 내가 고민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법대를 입학한 것이야.”

         “성적이 좋아서 온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법을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네요”

         “그래, 법을 공부하고 싶었지. 중1 때 박정희가 총 맞아 죽었어. 그때 재판과정이 TV로 나왔는데 사춘기인 나에게 아주 흥미롭게 왔다. 반에서 아이들 괴롭히고 싸움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버지가 깡패라는 말도 있었던 친구지. 그 친구가 어느 날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 무렵에 삼국지를 읽었지, 그러면서 법과 권력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알게 되었지.”

         “중학생이 그런 것을 생각했다고요? 대단합니다.”

         “법대에 와서 수업을 듣고, 사법시험 준비하면서 점점 확신이 들어. 겉으로 보이는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이 아닌 거야. 인간에 대한 평가는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유무에서 나오는 거지.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이 대표적인 예이고, 홍범도, 이광수,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에 대한 평가가 계속 달라지는 이유이다.”

         “승자에 의한 역사의 평가와 기록이고, 승자는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이죠.”

         “고대 사회에는 인간을 재물로 취급하여 신에게 목숨을 바치고, 피 지배인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지배인 1인의 목표를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치는 시대였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사회는 다른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신이 만든 세상에서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신이 만든 십계명이 있다면, 인간의 세상에는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인간이 만든 법이 있는 것이다. 지금 너나 나나 그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 

         두 사람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 서로 빈 잔에 술을 따라준다. 호영이가 연거푸 술잔을 비우고 말을 한다. 재호는 선배의 빈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이야기를 듣는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검사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지. 거기에 인간의 권력이 집중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인가? 권력이 없는 피 지배인의 삶에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을까? 신의 노예로 산다면, 신이 인간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신의 노예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감상적인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는 무소불위 권력자로 사는 것이 그나마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전생은 모른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다. 종교에서만 전생을 이야기하고, 죽음 이후의 생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마음을 잡아먹지, 허구이고 사람을 유혹하는 거짓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현재 어떻게 살 것인지는 선택이다.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잡아야지, 내가 검사 노릇 해보고 싶은 이유이다.”

         그렇게 자기와 다른 이유, 삶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 법을 공부하는 선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민당의 윤희로 의원이 총학생회 회장으로 학생 운동을 이끌던 때, 맞장 공개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토론에서 전혀 기죽지 않았던 모습은 20살 노재호의 정신세계에 깊이 각인 되었다. 당연히 재학 중에 고시 합격하였고, 그런 선배와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자기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검찰청 내부의 핵으로 자리 잡아가는 검사 중의 한 명으로 소문이 났다.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선배 중에 1순위인 사람이다. 박호영이 부르면 만사를 제치고 간다. 골프를 치자는 말에 모든 일을 취소하고 오늘 라운딩을 온 것이다.

         “노 부장, 공무원이나, 공기업이나 뭐 거기서 거기지, 국민 세금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리고 오진명 국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박호영입니다.”

         “오진명입니다. 박 검사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진명은 일어나서 정중하게 90도로 인사를 한다. 호영이는 오진명의 인사를 받으면서 태현이가 이야기한 것이 기억났다. ‘잔머리가 빠르고,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전형적인 출세 지향 주의 인물’이라고 했다. 인사를 나누면서 까마득한 후배 검사한테 들어볼 만한 ‘영광입니다.’라는 말과 정중한 90도 인사는 예상 밖이었다. 그것도 나이가 3살이 많은 사람이다.

         “오늘 라운딩은 편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오늘 비용은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초동에서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 있어 돈이 오고 가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치면 재미가 없으니, 1,000원짜리 하시죠. 두 분은 보기플레이 하시고, 박 검사는 잘해야 100개이니, 핸디 조정하겠습니다.”

         “1,000원에 무슨 핸디, 그냥 치죠?” 노재호가 픽 웃으면 그냥 치자고 한다.

         “노 부장, 게임인데, 제대로 해야지요. 태현아, 핸디 많이 주라, 그리고 멀리건은 없습니다. 적당히 없습니다. 실수하면 또 치고 그러면 무슨 재미가 있나요?”

         “박 검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오진명이 호응을 한다. 

         “PGA 룰을 적용하여 치는 것입니다. 제가 공은 못 쳐도 게임을 즐길 줄은 압니다.” 

 라운딩이 시작되면서 태현이와 호영이는 낄낄거리며, ‘이 새끼 잘하네’ 하면서 말을 섞었다. 배판이라면서 1,000원짜리 하나 더 달라고 성내고, 아깝다고 성낸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은 절친이었다. 그 모습을 노재호와 오진명이 본다. 오진명은 정태현이 사귀어 두면 좋을 사람 있으니 같이 라운딩하자 해서 온 것이다. 노재호 본부장은 자기와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박호영이는 달랐다. 의외였다. 2년 전에 진보당 당 대표를 내란 음모 사건으로 기소하여 구속한 담당 검사였다. 그리고 최근에 S그룹의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람이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잠깐씩 언급되는 인물이다. 

         노재호는 정태현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박호영이 사업하는 친구가 있는데, 같이 라운딩하자고 해서 나온 것이다. ‘사업하는 사람이다. 같이 라운딩 하자.’는 말은 뭔가 부탁할 사람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알고 왔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비용을 댄다고 한다. 대부분 접대하는 사람들은 치사할 정도로 비굴한 저자세가 몸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다. 얼렁뚱땅하는 것 같지만 정확하게 타수를 읽고 OK를 쉽게 주지 않는다. 웬만하면 일파만파라고 첫 홀을 다 파로 처리할 터인데, 에누리 없이 정확하게 기록하라고 한다. 카트길에 떨어진 공을 대충 페어웨이에 던지니, 그건 아니라고 바로 지적한다. 접대하는 사람이 할 자세가 아니다. 

         그늘집이다.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어서 한잔 씩 한다. 

         “정태현 대표는 두 집 살림합니다. 큰 마누라, 작은 마누라 있지요. 저놈 제 말 한마디로 바로 집에서 쫓겨납니다. ” 박호영이가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요즘에 애인 없는 사람 어디 있나요?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뭐, 다들 만나시는 분들 있지 않나요? 호영이는 내가 알고 있으니 뭐”

         “박 선배, 여자 있어요?” 노재호가 놀라서 묻는다.

         “호영이는 여자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를 좋아하지요” 다들 웃는다.

         “여자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나요? 영웅호색 아닙니까? 전 여자들하고 한번 라운딩하면서 ‘오빠 나이스 샷’ 소리 들어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오진명이 웃으면서 끼어든다.

         라운딩이 끝나고 밥을 먹는다. 오진명은 박 검사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것이 티 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진명이 골프 접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첨 앞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무기력해지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아첨은 자기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는 것이다. 오진명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태현이는 라운딩 내내, 그리고 지금도 골프 이야기만 하고 있다. 돈은 세명 다 잃었다. 1,000원짜리인데 태현이가 78,000원을 땄다. 노재호는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태현에게 듣지 못했다. 뭔가 부탁할 게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이야기가 없다. 접대골프가 아닌가 싶었다. 

         “골프는 정말 이야기해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연습장에서는 딱딱 잘 맞는데, 여기만 오면 왜 안 맞는지, 똑바로 보고 친 것 같은데, 왜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건지, 땅에 돈 묻어둔 것도 아닌데, 뭐 먹을 게 있다고 뒤땅 파는지?” 태현이 말에 다들 웃는다. 

         “그게 골프 아니겠습니까?” 오진명이 호기심을 가지고 끼어든다.

         “맞습니다. 저는 골프를 배운지도 얼마 안 되고, 태현이가 라운딩하자고 하면 나오는 게 거의 다입니다. 따로 시간 내기도 힘들고, 그런데 골프의 재미는 압니다. 한 번이라는 것이죠, 연습장은 수백 번 휘두릅니다. 실수하면 고쳐서 다시 휘두르니 두 번째, 세 번째는 잘 맞을 수밖에, 그런데 필드는 그렇지 않죠, 한 번이라서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긴장도 하고, 설레고, 짜릿한 쾌감을 맛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노재호를 보고 물을 마시고 숟가락을 놓는다.

         “니체의 철학을 보면 ‘영원회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쓴 소설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입니다. 사람은 한번 사는 인생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말입니다. 인생(人生)은 일생(一生)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이라 중요할 수도 있고, 전혀 안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인생이 잘 산 인생인가? 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가벼운 인생을 살 것인지, 무거운 인생을 살 것인지, 그것에 대한 선택을 매 순간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재호가 숟가락을 놓는다. 그리고 호영이와 눈이 마주친다.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호영이가 시선을 피하고 오진명 국장을 본다.

         “두 번 살아보고, 세 번 살아보고 해야만 잘 살았는지 못살았는지 판단의 기준이 있는 건데, 한번 사는데 뭘 보고 판단하여야 할까요? 연습도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실전 필드에 뛰어듭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저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정태현 대표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입니다. 사는 게 지루한 삶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골프가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과 골프가 참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 검사님 말씀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라운딩 끝나고 뜨거운 물에 몸 담고 있으면, 그 시간이 참 편안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동반자들하고 같이 불알 내놓고 목욕한다는 것도 좋습니다. 남자들끼리 뭔가 공유하였다는 묘한 동질감을 그 순간에 가집니다.” 노재호를 다시 보고 말한다. 노재호도 호영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어릴 적에 ‘깐부’라는 것이 있지 않았습니까? 뭐 그런 느낌이 살짝 왔다 갑니다.”

         “다음에 한번, 정 대표와 라운딩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오진명이 은근히 다음의 만남을 기대하는 말을 하는데, 박호영은 무시하고 노재호를 쳐다본다.

         “그리고 재호야,” 

         호형 선배가 이름을 불렀다. 긴장감이 왔다.

         “LH 광교 신도시 택지에 미분양이 있다면서, 수의 계약한다고 하는데, 거기는 네가 결정권자지. 오늘 정 대표랑 얼굴 텄으니, 둘이 한번 이야기해봐, 가면 커피 따뜻하게 주고, 직원들 시키지 말고 네가 직접 타서 줘, 알았지···.” 

         순간적으로 노재호 본부장은 ‘이거였구나’ 싸한 느낌이 머릿속을 스치고 갔다. 박호영을 쳐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의 호영이가 보인다.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내린다.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빛이 노재호 얼굴에 비쳤다가 사라졌다. 그것을 태현이가 본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태현이 얼굴을 보면서 말한다. “정 대표님 저의 사무실에 한 번 오시지요, 미분양 난 것 해결해 주신다면 저희가 고맙죠. 화천 시에 출장 사무실이 있습니다.”

         “저··, 노 부장님, 본사에 안 계시고 현장으로 출근하십니까?, 저의 본사가 화천 시에 있지 않습니까?, 언제 한번 식사하시죠?”

         “오 국장님은 저하고 얼굴 텄으니,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정 대표 통해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직접은 못 도와드려도, 그래도 여기저기 줄 댈 곳은 알고 있습니다.”

         “자, 이제 밥도 먹었으니 집에 갑시다. 그러면 정산하겠습니다. 치사하게 돈 따서 그냥 가는 사람 아닙니다. 오늘 저한테 돈 잃으시었는데, 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관하고 있었으니 이자를 계산해서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태현이가 돈을 돌려준다. 1,000원 지폐를 2~30장씩 돌려받는다. 그 사이에 1백만 원에 해당하는 백화점상품권 1장씩을 챙겨 넣었다.     


         2     


         박호형 선배가 ‘직원들 시키지 말고 직접 커피 타주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면서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났다. 업무 특성상 일하다 보면 여기저기 압력이 오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그런 압력은 이권에 관계된 것이다. 노재호는 이런 압력을 일언지하 거절한다. 질질 끌거나 우물쭈물하는 순간에 힘깨나 쓰는 윗선의 줄을 탄 상대방은 집요하게 늘어진다. 한번 발목을 잡히면 헤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름 원칙을 가지고 살아왔다. 내부자료를 가지고 토지를 사고팔다가 들킨 동료 직원들이 사회 1면에 나올 때마다 자기를 위로하면서 직장을 다녔다. 그 원칙을 한방에 박호영 선배가 날린 것이다. 자기가 어떤 처세술로 사업단 본부장까지 왔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부탁하지 않고 명령을 하였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압력이 아니다. 해야 할 일···, 명령이다. 그렇게 박 선배는 한방에 정리하였다. ‘줄 서’라는 느낌이 왔다. 줄 서면 같이 인생을 살 것이고···, 안 서면 인연은 여기서 끝이다. 박 선배가 윤희로 의원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알고 있다. 색깔이 다른 사람이었는데, 박 선배가 줄을 선 것이 의외여서, 술자리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살다 보면 딱 느낌이 와, 그때 그 길을 가기로 했을 뿐이야.’ 박 선배는 ‘직접 커피 타라’고 말한 것은 ‘그 길을 가라’고 자기에게 지시한 것이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선택’ ‘인생은 일생’ ‘깐부’ 라는 말은 맛보기로 던진 말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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