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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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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Oct 02. 2023

불혹 17. 죽음

<부동산소재소설 1부>

         1      


          자동차 급발진이 원인이 되어 추락사고가 발생하여 화천 시장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음 날, 저녁에 광화문포럼 사람들이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참치 집에서 모였다. 논문심사가 통과된 서수경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서 박사님, 마지막 심사에서 논문 통과 축합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이 하시었습니다.”

         “감정원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는데, 축하드립니다.”

         서수경은 계약직으로 한국부동산 감정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로 하였다. 강 교수는 대학 동기인 부원장에게 전화해서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보았고, 이번에 박사 받는 제자가 있으니 자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여 특별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서수경의 논문과 취업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화천 시장의 교통사고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어제 뉴스 보았습니까? 화천 시장 교통사고 난 것”

         “네, 급발진이 사고 원인이라고 하던데, 무서워요, 저도 운전 중에 그러면”

         “그 사람, 참 이미지가 좋았는데, 좋은 사람이 참, 안되었어요, 아직 60이 안되었죠?”

         “이번 정부에서 특별히 아끼던 사람 아닌가요?, 한국당에서 박 대통령 다음에 차기 대선 후보로”

         “저는 좀, 이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운전 중에 급발진이 걸리면 핸들이 제멋대로 돌아가나요? 핸들 조정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아~, 그러면 급발진이 아닐 수도 있는 건가요?”

         “모르죠, 단지 급발진이 원인이라고 한다면, 핸들을 중앙분리대가 있는 왼쪽으로 돌려서 측면 충돌을 일으키고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돌려서 낭떠러지로 떨어졌다는 것이, 운전 미숙으로 봐야 하나요?”

         “암튼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이, 갑자기 그렇게 돼서 안타깝습니다.”

         “그럼, 화천 시장으로 업무 본 지 1년도 안 지나서 그렇게 되었으니, 보궐선거해야죠, 아무래도 한국당 소속이었으니, 한국당이 유리하겠네요, 갑작스럽게 사고로 죽었으니, 그에 대한 동정표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병이 쌓여가고, 참치리필이 첫 번째로 이어졌다. 갑자기 핸드폰을 보던 김보경 박사가 소리 지른다.

         “이거~, 이거 봐요, 지금 특보 떴어요. 화천 시장 최 변호사에게 내연녀가 있고, 영국에 숨겨 놓은 딸이 있다고 합니다. 내연녀가 20년을 넘게 비서로 근무하였던 박은혜였다고 합니다. 어머나~, 섹스 동영상도 있다고 합니다.”

         다들 자기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면서 관련 뉴스를 찾아 읽는다.

         “헐···, 그러면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죠?”

         “화천시 시민장으로 장례식을 하고 있는데, 수많은 사회단체, 종교단체에서 조의를 표하고, 대통령 및 각 기관 대표들도 사고사에 대한 위로의 뜻을 발표하고, 조문하고, 언론에서는 영웅처럼 떠들었는데”

         “우리나라답네요. 코미디(comedy) 되었네요?”

         술자리의 대화는 화천 시장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고, 위선의 탈을 쓰고 세상을 속인 추악한 인간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인권변호사로 속이고 살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연녀는 강남에 아파트 3채에, 건물 임대료만 매월 1,500만 원이라고 하였다. 

         “음···, 경제적으로 신분을 상승하거나 부를 축적하겠다는 그런 욕구가 없는 사람 있나요?” 

         “인권변호사잖아요. 무료법률 상담하고 돈 없는 사람들, 소외된 계층들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부를 축적하고 인권변호사 흉내를 내면 위선 아닌가요?”

         “그러니깐요, 그렇게 무료로 하면, 최 변호사는 어떻게 밥 먹고 살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 등록금은 무엇으로 내냐는 것이지요?”

         “네~에?”

         “그 사람은 그럴 생각이 없었던 사람인데, 인권을 위해서 일을 하면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들 주위에서 인권변호사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이미지를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생각을 안 해보았네요, 정말, 인권변호사는 돈이 없어야 한다.”

         “광우병이라면서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하고 촛불 들면서 선동한 그런 사람들이 미국 소고기 먹는 것은 위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 변호사는 그런 위선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 목사들도 월급 받고, 절에 있는 스님들도 생활비를 받고, 신부들도 돈을 받아요, 어쨌든 이들도 후원금과 유사한 헌금이라는 돈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최 변호사는 스님도 아니고, 목사도 아닌데, 왜 돈 욕심을 내면 안 되는 것이죠? 절도 교회도 다들 돈 문제로 서로 쌈박질하는데, 후원금은 최 변호사 먹고살라고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준 것이잖아요, 그럼 뭐 문제가 있나요?”

         최 변호사의 죽음을 변호하고 있는 태현이다. 참치를 한점 들고 입에 넣는다. 그리고 술을 한잔 마시면서 말을 계속한다.     

         “저는 없다고 보는데,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내연녀인데, 그것은 남녀 문제이고 가정사이니, 제가 언급하기 그렇네요, 그런데 18살 된 딸이 있었다면 최 변호사 사모님이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만약에 그렇다면, 아내 되는 사람이 자기 남편의 다른 여자를 인정하였다면, 그것을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여기서 옳다 그르다 뭐라고 할 수 있나요? 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후원금을 그렇게 사용해도 되나요? 사기가 성립 안 되나요?”

         “안 될 것 같은데요”

         “도덕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 않나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

         “도덕이라고 하는 것이 있죠, 우리가 아는 도덕이 무엇이 있나요? ‘착하게 살자.’ ‘법을 지키고 살자.’ ‘부모님에게 효도하자’ 뭐 이런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들 착하게 살고, 법을 지키고 살고, 어른들 공경하고 사나요? 그렇게 살아왔나요? 저는 착하지도 않고, 법도 어기고, 효도 안 하고 사는데···, 도덕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며,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인간들에게 법이 있는 것인데, 최 변호사가 법을 어긴 것이 있나요?”

         “법을 어긴 것이 없나요?”

         “법으로만 보면 불법을 저지른 것이 없을 것 같네요”

         “우리가 ‘더러운 놈’ 또는 ‘나쁜 놈’하고 욕을 할 때는 선과 악이라고 하는 마음속 생각을 따라 내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판단의 기준이 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로 보면 더 하죠. 주일을 지키는 것이 기독교인에게 선이지만, 비 기독교인에게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개미를 죽이면 스님에게는 악이지만, 우리에게는 악도 선도 아닙니다. 법을 집행하는 판사는 법으로만 판단하는 것이죠. 도덕이 아니고, 도덕은 개인들이 판단하는 것인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서수경이 생각에 잠기면서 말을 듣는다. 허공을 바라보다가 말을 한다. 

         “정 선배님 말을 들으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 아닌 것도 같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최 변호사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것이 없네요. 무료로 변호했으니 사람들은 도움을 받았고, 후원금은 사람들이 경제적 지원을 자발적으로 한 것이니, 할 말 없고, 비서하고도 20여 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아이까지 있었다면 서로 사랑의 감정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고, 피해자라고 하면 사모님하고, 자제분들인데, 사모님이 알고 있었다면, 말하기 어렵네요. 근데 나쁜 놈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면 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죠.”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것,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냥 열심히 산 사람 아닐까요?”

         “법적으로 결혼, 또 다른 사실혼이 있다면 중혼으로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중혼이라면 법에 걸리는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인데”

         “중혼, 그러네요. 그런데 두 여자가 다 인정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죠?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최 변호사가 머리가 좋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박은혜 명의로 있는 부동산은 법적으로 배우자인 사모님이나, 자제분들하고 나눌까요?”

         “안 나눌 것 같은데요”

         “법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소송을 해봐야 하겠지만, 안 줘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최 변호사의 죽음으로 인한 추측성 이야기가 이어진다. 정태현이 화제를 바꾼다. 

         “오진명 박사님이 근무하는 회사가 화천 시에 있지 않나요? 이번 기회에 화천 시장 보궐선거 한번 출마해 보시지요?”

         오진명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다른 사람들은 의외의 화제에 놀라기도 하면서 좋은 일이라면서 호응을 한다.

         “어머~ 그렇네요, 오 선배님이면 도전해도 될 것 같은데,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자, 술 드세요. 화··천·· 시장, 오진명 박사님” 김보경 박사가 분위기 잡아 술잔을 든다. 다들 술을 들고 웃으면서 오진명을 본다. 

         “화천 시장이 되시면, 저 좀 어떻게 데리고 가시지요” 임동일 박사가 끼어든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화천 시장을···” 하면서 태현이가 뭐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제가 한번 자리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안 될 수도 있지만, 오 박사님이 한번 해보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다면, 제가 자리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은 윤희로 의원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런 이야기를 사전에 조율 없이 던지기는 어렵다. 그러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다. 그냥 툭 던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말이 오고 간 것이다. 

         “파이팅, 오 박사님”

         “선배님 해보시죠”

         본능적인 충동이 일어나고 있다. ‘잡고 싶다.’ 이 충동은 내면의 또 다른 나에게 따라가라고 재촉을 한다. 숨어 있던 나가 드러나면서 비판하고 의심할 수 있는 생각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나 정도면’이라는 환상이 얼굴을 뚫고 나온다. 잠자고 있던 오진명의 또 다른 모습, 어릴 적에 꿈꾸던 ‘개천의 용’을 깨운 것이다. 화천 시장 최 변호사의 죽음 곁으로 살아있는 오진명이 걸어가는 것이다.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호들갑스럽게 분위기를 이끈다. 살아있는 자의 춤사위이다. 시계를 보던 김보경 박사가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나고자 하였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는 끝이 났다. 악수하면서 헤어지고 카카오 택시와 대리를 부른다. 남은 사람은 오진명, 서수경, 그리고 태현이다. 대리기사가 온다.

         “정태현 박사님, 오늘 감사했습니다.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내일 출근해서 사표 쓰겠습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생각을 더 해보시고, 판단해도 됩니다. 아직 시간이 많습니다. 화천시장 해보겠다고 자민당에 줄 되는 사람이 꽤 될 것입니다. 하신다면 정말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압니다. 남은 인생 다 걸어야지요.”

         “알았습니다. 제가 바로 다시 자리 만들겠습니다. 오늘 잘 들어가시고”

         그렇게 오진명이 간다. 둘이 남았다.

         “저 한잔 더 하실 수 있어요?” 둘만 남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수경이 묻는다. 

         “그럽시다. 오늘 서수경 박사님 원하시는 것은 다 해 드려야지요, 공식적으로 박사 된 첫날인데.” 

         걷다가 보니 교보문고 뒷길을 걷는다. 

         “서 박사님, 참새 먹어보았어요?”

         “참새요? 아뇨~, 그걸 어떻게 먹어요? 징그럽게” 서수경은 정박사의 팔을 툭 치면서 혐오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린다.

         “참새는 알에서 부화하고 둥지에서 보통 열흘 정도 있습니다. 그때 어미에게서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힘을 키웁니다. 어미는 하루에 600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면서 둥지에 있는 5~6마리의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줍니다. 열심히 사는 새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날아가다가 그물에 걸려 죽어서 사람의 술안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물요? 참새를 그물로 잡아요? 물고기도 아닌데”

         “아~ 모르시겠군요. 그물로 잡습니다. 어릴 적에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초가집 지붕에 막대기 두 개를 양쪽에 꽂은 그물을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참새가 날아가다 걸리는 것입니다. 참새를 그렇게 잡아서 구이를 해 먹고 놀았던 적이 있네요” 

         “아~ 진짜요? 신기하네요”

         “해로운 곤충을 잡아먹어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참새는 열심히 살지만, 사람에게는 좋다 나쁘다 평가받는 것입니다. 아까 최 변호사의 죽음을 보면 우리 사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신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들입니다.”

         “오빠는 가끔 너무 엉뚱한 것 같아요, 사람들 없으니 오빠라고 할래요.”

         “그래 그렇게 해, 편하게 하세요, 서 박사님.”

         태현이가 정종을 파는 선술집으로 들어간다. 할머니 한 분이 장사하고 있다. 가게 분위기는 오래된 집처럼 노포 분위가 물씬 풍긴다. 아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술집이다.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는다. 

         “이 집이 참새구이 집으로 유명한 집이다.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참새 파는 집이 3곳이 있는데, 이 집이 그중에 하나다.”

          정종이 나오고, 참새구이가 온다. 머리와 몸통, 그리고 다리, 벌거벗은 작은 인형처럼 보인다. 여자가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찡그린다. 혹시 몰라서 은행구이도 하나 주문하였다. 참새 먹는 법을 알려준다. 소금 찍어 한입에 넣고 씹어 먹는다고 하였더니 놀란 눈을 한다. 구운 참새는 보기에 흉악스러웠다. 다리 부분을 뜯어 소금을 찍어서 먹어보라고 한다. 뼈가 약하니 그냥 씹으면 된다고 설명을 해준다. 여자가 살짝 맛을 본다. 그리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이 냄새가 뭐죠? 참새 냄새? 닭 냄새는 아닌데, 바짝 숯불구이 했을 때의 냄새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특이한데···, 맛은 없네요”

         “졸업 축하합니다. 서수경 박사님,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아닙니다. 남들도 다들 하는 건데, 그리고 사람들도 없는데, 편하게 하세요, 저도 학교 다닐 때처럼 편하게 할게요, 갑자기 박사님, 박사님 하면 부담스러워요”

         “그래, 그럴까? 그럼···, 수경아, 고생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태현 오빠, 고마워~”     


              


         “너, 지난번에 그거는 어떻게 되었어? 강 교수가 알아듣게 한 것이지?”

         “네~, 오빠가 예상한 대로, 또 강 교수가 치근덕거리더라고. 논문은 등재지에 발표된 거 3개를 모은 거라서 별로 수정할 것도 없는데, 통계를 한 번 더 돌려보고,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낮에 통계를 몇 번 돌려보고, 문장 몇 개 바꾸고 정리해서 드렸지. 말없이 읽어보고, 한 시간 뒤에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갔더니, 명동인지 충무로인지 장어 전문집으로 갔어. 꽤 유명한 집처럼 보이더라고, 예약해 놓았는지 방으로 안내받아 들어갔지.”

         “강 교수, 참~, 그리고 그 집, 나 알지, 장어로 유명한 집이다. 아마도 이름이 장추인가?”

         “네, 장추 맞아요. 영화제목처럼 좀 촌스럽더라. 아무튼 장어가 나왔는데, 한점 먹어보고 속으로 ‘와~ 맛있다’ 했다. 진짜 맛있더라, 먹어본 장어로는 최고였어. 그런데 강 교수가 복분자 술을 먹으면서 작업을 하더라.”

         “서 연구원, 이번에 꼭 논문 통과해야지”

         “네, 교수님, 이번에 꼭 통과되어야 합니다. 도와주세요, 자 술 한잔 받으세요.”

         “이거 복분자가 무슨 뜻인지 알아? 왜 장어 먹을 때 복분자 술을 먹는지 서 박사는 아나?”

         “알죠, 교수님, 제가 복분자 뜻 모를까요, 장어야 스테미너 음식이고, 부족한 제자 논문지도 하시느라 힘들었을 터인데, 자 한잔 드시고, 교수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먹으면 뭐 해, 다 늙어서 힘쓸 곳도 없고, 이제 몇 년 지나면 60줄에 들어가고, 마누라도 예전 같지 않아서 각방 쓰고 산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암튼 아까 논문 수정한 것 보니, 이제 그냥 통과해도 되겠어, 논문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주말마다 산에 다니시고, 헬스 가서 운동하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아직 팔팔한 청춘입니다. 논문 심사위원들 질의에 잘 디펜스(Defence) 하겠습니다. 교수님이 한마디 하시면, 심사위원 교수님들도 뭐~”

         “내가 무슨 힘이 있나? 논문심사에서 지도교수는 힘없는 것 알잖아. 심사위원들이 하는 것이지, 그리고 헬스장 가서 그렇게 운동하면 뭐 해”

         술을 벌써 두 병째 마시고 있다. 이야기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하듯이 넘어가고 있다. 

         “교수님,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벌써 논문 다 써 놓은 지 8개월째입니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보고서만 쓰고 있습니다.”

         “알지, 그러니 이번에는 꼭 통과해서 나가자고, 서 연구원은 남자 친구 없나?, 데이트한다고 하는 것을 못 들은 것 같아.”

         “전에 사귀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귈수록 대화가 좀~, 너무 철이 없다고 해야 하나, 대화 코드가 안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는, 별로 연애하고픈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상하게 또래보다 나이 차가 나는 남자들이 더 끌려서, 제가 존경할만한 그런 남자들이 더 매력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수님에게 많이 의지한 것도 솔직히 있습니다.”

         “그래, 그렇군”

         강 교수의 눈빛이 순간 흔들린다. 

         “나처럼 많이 외로웠겠는데”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본인이 외롭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지, 지금 외로운 거야”

         그러면서 강 교수는 술을 따라준다면서 술을 마시라고 한다. 술을 마시고 내려놓은 빈 잔에 다시 술을 따르고, 서수경의 손을 잡는다. 여자는 가만히 있었다. 당황하고 상기된 여제자의 얼굴을 안경 너머로 지긋이 노려보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었겠는데, 힘내시고, 연구실에서도 그렇지만, 늘 손이 이쁘다고 생각했다. 매력적인 여자야”

         “교수님, 이러시면~ 안될 것 같은데, 지난번 BAR에서도 농이 지나쳐서 제가 일찍 일어났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술 먹는 동안만, 남자와 여자로 잠깐 있다가 가면 안 될까? 너도 나도 서로 외로운 사람끼리, 집에 가도 빈집 같아서, 내가 어디 가서 놀 곳도 없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로 이야기 좀 하다가 나가자. 나갈 때 그때 마음이 어떤지 보고, 괜찮으면 오늘 밤 같이 있고, 아니다 싶으면, 어쨌든 이번에 논문을 통과시키자.”

         서수경은 태현이가 지시한 대로 모든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 교수를 보면서 ‘지금이다’ 싶어 말을 한다.

         “교수님, 저 박사 안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도 교수 생활 그만하시지요. 지금 대화 내용은 모두 녹음하고 있었습니다.”

         “뭐~ 뭐라고? 뭐 녹음을 해,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지금도 녹음되고 있습니다. 말조심하세요. 언어폭력, 성희롱입니다. 오해이든 아니든 저는 상관 안 합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박사 안 하고, 지금 녹음된 것 학교에 이야기하고, 저희 Lab의 여자 박사님들에게 다 공개하겠습니다. 더럽고··· 치사하네요. 안 할랍니다. 박사가 뭐 대수라고, 이거 안 해도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이 좀 있어서 밥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겁먹고 죽을 줄 알고 그러는가? 너 나 협박하는 것이다.”

         “네, 다 생각이 있었겠죠, 물증이 없으니, 녹음도 조작이라고 하세요, 제가 먼저 꼬리 쳤다고 하시겠죠? 저는 상관 안 합니다. 박사 안 하겠다고, 됐습니까? 교수와 제자의 관계는 없습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 교수님 집으로 가겠습니다. 사모님 전화번호는 제가 알고 있으니, 사모님 뵙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교수님은 경찰 부르셔서 같이 오시어도 됩니다. 협박받고 있다고 주장하시던지, 신변 보호를 요청하시던지”

         “·····” 

         부릅뜬 눈이 초점을 잃고 서수경을 쳐다본다.

         “알겠습니다. 저는 일어나겠습니다. 장어 많이 먹고, 술 많이 드시고, 다른 여자 불러서 오늘 뜨거운 밤 보내세요. 댁에서 뵙겠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데, 강 교수가 ‘미안합니다.’하고는 무릎을 꿇는다.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는 없던 일로 해 달라고 한다. 논문을 가지고 장난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연구원으로 갈 자리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오빠, 예상이 맞았다. 고마워”

         “고맙기는 네가 고생했지, 암튼 일부 양아치 교수들이 문제이다. 양아치라는 표현이 좀 심한가?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 교수가 무슨 대단한 권력이 되는 줄 알고, 학생들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책만 보고 공부만 한 사람들이라서 소심한 사람들이 많지, 책으로 세상을 배운 사람들, 책이 거짓일 수도 있는 것을 생각 안 해. 그래서 철없이 사는 사람들이지, 학교에 있을 때나 인정받는 것이지, 사회에 나오면 아무것도 아니지. 불쌍한 사람이기도 하다. 힘없는 학생들에게나 큰소리치는 것이지, 정작 강한 사람들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사람들, 교수라는 직업이···, 그래, 그리고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이 있다. 강 교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큰일 겪을 수도 있어.”

         “에고, 강 교수 걱정하네, 나쁜 사람이라고 맞장구칠 때는 언제이고. 그건 그거고, 오빠, 오빠는 아직도 내가 여자로 안 보이는 거야? 오빠는 내 이상형이라고 내가 자존심 상해가면서 이야기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나한테는 그냥 오빠만 되냐?”

         “너하고 나는 너무 차이가 나서 안 돼, 너무 다르지, 난 결혼도 했고, 넌 아니고, 난 나이도 많고, 넌 이제 40살이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 술친구는 해줄 터이니, 힘들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그리고 다 같은 오빠니? 내가? 큰오빠, 아주 큰~ 오빠다.”

         “별로 안 나거든요, 겨우 12살 띠동갑인데, 내가 뭐 같이 살자고 하니? 강 교수는 어떡하든 나하고 연애 한번 하자고 하는데, 난 젊은 애들 싫어, 난 어른스러운 남자, 아빠 같은 남자가 좋아, 아빠가 죽어서 그런가? 아빠 보고 싶다. 나 박사 되는 것 보고 죽었으면 정말 좋았을 터인데, 나 박사과정에 입학하자마자 아빠는 나한테 서 박사님~, 서 박사님 했다.”

         “지금이 좋다. 너하고 나하고는, 여기서 더 나가면, 너는 분명 욕심을 낼 것이야, 그리고 실망할 것이고, 화낼 것이고, 뭔가 초조해 할 것이고, 그러면 지금처럼 이런 만남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끝나는 거다.”

         “오빠 애인 있지?”

         “그런 것은, 묻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있든 말든 너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이고”

         “그러면 안되는 거야?”

         “응, 안돼, 너하고 나는 지금처럼 부동산 이야기하고, 인생 이야기하면서 오빠 동생처럼 지내는 것이 좋다. 됐다, 그만 청승 떨고, 내가 너 박사 된 것 많이 축하한다. 박사 선물로 뭐 해줄까?”

         “오빠, 여자는 블링블링이야”

         “그게 뭐야? 블링블링”

         “손에 끼고, 목에 걸고, 귀에 걸고”


         3     


         몇 년 뒤에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직접 드러내는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지자체 단체장들, 공무원, 대학교 등에서 교수들을 향한 미투가 유행처럼 발생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교수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몇몇 교수들은 스스로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강 교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어떤 교수는 ‘사실이 아니라고’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죽었고, 교수를 골탕 먹이고자 거짓으로 미투한 것이 들통나기도 하였다. 개죽음이었다. 작은 것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비난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이 휩쓸고 가면 사라지는 것들이다. 유행 같은 것이다. 부끄러움을 본능적으로 못 느끼는 사람들은 사회적 비난에 전혀 관심이 없다. 미투가 일어나도 대부분 사직서 던지고 새롭게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죽긴 왜 죽어’ 하는 것이다. 뻔뻔하고 당당하다. 진짜 힘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 준다. 정치인들에게 아무리 달걀을 던지고, 욕을 해도 웃는다. 불법을 저질러 재산을 축적한 어떤 사람들은 감옥생활을 즐기고 나온다. 약한 사람일수록 고통을 즐기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강 교수는 약한 사람이었다. 언제든지 무릎을 꿇는 사람이었다. 육체적 욕망을 다른 곳에서 돈 주고 풀었으면 되었을 것을, 아니면 남들처럼 애인을 만들던지···.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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